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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청 `재테크` 비밀드러나
[이데일리] 2006년 09월 19일(화) 오후 04:05가 가|이메일|프린트
- 교황령 토지→금과 국채→호텔운영→바이오벤처 투자
- 시대·정치 상황의 급변 속에서도 꾸준한 수익 올려
[이데일리 강남규기자]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 있던 로마 교황청의 재테크 한 자락이 드러났다.
로마 교황청은 연차 보고서도 발표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프라이빗 뱅킹을 통해 자산을 운용해오고 있다. 그런데, 바티칸이 제약회사인 화이자가 분리매각하는 `네르비아노 메디칼 시스템스`(NMS)를 사들인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18일(현지시간) 전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풍문으로 바티칸이 엄청난 자금을 굴린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바이오 벤처까지 인수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쯤 되자, 자연스럽게 교황청의 재테크 내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얼마나 많은 돈을 어디에 굴려왔는지가 금융시장 참여자의 관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 교리이나 투자이론에 비춰볼 때 파격적인 투자
바티칸이 인수한 NMS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본사를 둔 전형적인 바이오 벤처이다. 유전공학 기법을 활용해 종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2002년 화이자에 인수된 이후 흑자를 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수익성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교황청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제약회사인 IDI보다 더 위험한 바이오 벤처로 꼽히고 있다.
이 회사는 연구인력을 포함해 직원이 무려 650여명에 달해 유럽 최대 바이오 벤처로 꼽히고 있지만, 자산운용 차원에서 본다면 아주 위험한 회사라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전하고 있다. 더욱이 화이자가 이 벤처를 청산하려고 했으나 교황청 쪽이 인수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NMS의 대표인 움베르토 로사마저도 “순이익은 기대하기 힘들고 잘해야 본전”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이와 함께 NMS의 종양 치료제 개발 기법이 가톨릭 교리와 충돌할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이 회사는 가톨릭 교회가 ‘하나님의 영역’이라고 설정한 유전자 지식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NMS는 유전공학 기술을 활용해 종양 세포만을 공격하는 ‘미사일 치료제’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바티칸 재테크
금융 역사가들은 교황청의 재테크 경험이 1000년 이상이라고 말한다. 중세에는 단연 토지와 금이었다. 20세기 들어와서는 금과 선진국 국채가 주요 자산이었다. 이 밖에도 호텔을 운영하기도 했다.
현대 로마 교황청의 기본자산은 이탈리아 반도 각지에 흩어져 있던 ‘교황령’이었다. 그런데 이탈리아 통일 국가가 수립된 이후 이 교황령은 세속의 정권인 이탈리아 정부에 귀속됐다.
이는 이탈리아 정부와 로마 교황청의 오랜 갈등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1930년대 정권을 장악한 베니토 뭇솔리니가 파시스트 정권에 대한 교황청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이탈리아 국채로 교황령 땅값을 보상해주었다.
바티칸은 미국의 JP모간과 영국의 모간 그렌펠, 프랑스의 모간 하예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의 은행을 통해 뭇솔리니가 넘겨준 이탈리아 국채를 달러와 파운드 표시 국채와 금으로 바꿨다.
◇ 1온스당 30달러 선에 매입한 금이...
교황청은 이탈리아 국채 가운데 일부를 팔아 마련한 현금으로 2차대전이 발생한 1939년까지 근 10년 동안 1온스당 30달러 선에 금을 매집했다. 이 금은 애초 프랑스 중앙은행 금고에 보관됐다.
그러나 나치가 프랑스를 침공한 순간 미국과 영국의 도움을 받아 그 금을 미국 뉴욕 연방은행 지하금고(녹스기지)로 수송했다. 1979년에 취임한 연준 의장인 폴 볼커가 보관 확인서를 교황에게 보낸 것으로 봐서 그 금은 1980년대까지 녹스기지에 보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 금 가격은 1970년 이후 급등해 교황청이 현금화하기 시작한 1980년대에는 500~600달러 선에 이른다. 가장 안전한 자산인 금을 굴려 10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올린 셈이다.
금과 국채를 중심으로 재테크를 하던 바티칸은 1960년대 들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다. ‘로마 부동산(Immobiliare Romma)’이라는 회사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 부동산 회사가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호텔을 건설했다. 이곳이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의 무대이다.
바티칸은 이 밖에도 투자은행의 지분을 인수하기도 했고, 1980년대 이후에는 인수합병(M&A) 열풍을 활용해 돈을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교황청의 유구한 재테크 역사는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자산의 총액이 얼마인지는 ‘하느님만이 아는 사실’로 유지되고 있다.
강남규(기자) dis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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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청 `재테크` 비밀드러나
[이데일리] 2006년 09월 19일(화) 오후 04:05가 가|이메일|프린트
- 교황령 토지→금과 국채→호텔운영→바이오벤처 투자
- 시대·정치 상황의 급변 속에서도 꾸준한 수익 올려
[이데일리 강남규기자]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 있던 로마 교황청의 재테크 한 자락이 드러났다.
로마 교황청은 연차 보고서도 발표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프라이빗 뱅킹을 통해 자산을 운용해오고 있다. 그런데, 바티칸이 제약회사인 화이자가 분리매각하는 `네르비아노 메디칼 시스템스`(NMS)를 사들인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18일(현지시간) 전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풍문으로 바티칸이 엄청난 자금을 굴린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바이오 벤처까지 인수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쯤 되자, 자연스럽게 교황청의 재테크 내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얼마나 많은 돈을 어디에 굴려왔는지가 금융시장 참여자의 관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 교리이나 투자이론에 비춰볼 때 파격적인 투자
바티칸이 인수한 NMS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본사를 둔 전형적인 바이오 벤처이다. 유전공학 기법을 활용해 종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2002년 화이자에 인수된 이후 흑자를 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수익성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교황청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제약회사인 IDI보다 더 위험한 바이오 벤처로 꼽히고 있다.
이 회사는 연구인력을 포함해 직원이 무려 650여명에 달해 유럽 최대 바이오 벤처로 꼽히고 있지만, 자산운용 차원에서 본다면 아주 위험한 회사라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전하고 있다. 더욱이 화이자가 이 벤처를 청산하려고 했으나 교황청 쪽이 인수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NMS의 대표인 움베르토 로사마저도 “순이익은 기대하기 힘들고 잘해야 본전”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이와 함께 NMS의 종양 치료제 개발 기법이 가톨릭 교리와 충돌할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이 회사는 가톨릭 교회가 ‘하나님의 영역’이라고 설정한 유전자 지식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NMS는 유전공학 기술을 활용해 종양 세포만을 공격하는 ‘미사일 치료제’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바티칸 재테크
금융 역사가들은 교황청의 재테크 경험이 1000년 이상이라고 말한다. 중세에는 단연 토지와 금이었다. 20세기 들어와서는 금과 선진국 국채가 주요 자산이었다. 이 밖에도 호텔을 운영하기도 했다.
현대 로마 교황청의 기본자산은 이탈리아 반도 각지에 흩어져 있던 ‘교황령’이었다. 그런데 이탈리아 통일 국가가 수립된 이후 이 교황령은 세속의 정권인 이탈리아 정부에 귀속됐다.
이는 이탈리아 정부와 로마 교황청의 오랜 갈등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1930년대 정권을 장악한 베니토 뭇솔리니가 파시스트 정권에 대한 교황청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이탈리아 국채로 교황령 땅값을 보상해주었다.
바티칸은 미국의 JP모간과 영국의 모간 그렌펠, 프랑스의 모간 하예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의 은행을 통해 뭇솔리니가 넘겨준 이탈리아 국채를 달러와 파운드 표시 국채와 금으로 바꿨다.
◇ 1온스당 30달러 선에 매입한 금이...
교황청은 이탈리아 국채 가운데 일부를 팔아 마련한 현금으로 2차대전이 발생한 1939년까지 근 10년 동안 1온스당 30달러 선에 금을 매집했다. 이 금은 애초 프랑스 중앙은행 금고에 보관됐다.
그러나 나치가 프랑스를 침공한 순간 미국과 영국의 도움을 받아 그 금을 미국 뉴욕 연방은행 지하금고(녹스기지)로 수송했다. 1979년에 취임한 연준 의장인 폴 볼커가 보관 확인서를 교황에게 보낸 것으로 봐서 그 금은 1980년대까지 녹스기지에 보관된 것으로 보인다.
이 금 가격은 1970년 이후 급등해 교황청이 현금화하기 시작한 1980년대에는 500~600달러 선에 이른다. 가장 안전한 자산인 금을 굴려 10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올린 셈이다.
금과 국채를 중심으로 재테크를 하던 바티칸은 1960년대 들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다. ‘로마 부동산(Immobiliare Romma)’이라는 회사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 부동산 회사가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호텔을 건설했다. 이곳이 바로 워터게이트 사건의 무대이다.
바티칸은 이 밖에도 투자은행의 지분을 인수하기도 했고, 1980년대 이후에는 인수합병(M&A) 열풍을 활용해 돈을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교황청의 유구한 재테크 역사는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자산의 총액이 얼마인지는 ‘하느님만이 아는 사실’로 유지되고 있다.
강남규(기자) dism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