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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제 141편. 대중 전도의 시작
3. 아마투스에서 머무르다
주와 사도들은 거의 3주 동안 아마투스 가까이 남아 있었다. 사도들은 날마다 두 차례 군중에게 계속 설교했고, 예수는 토요일 오후마다 설교했다. 수요일의 노는 시간을 계속하기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안드레는 한 주 6일의 각 요일마다 두 사도가 쉬어야 한다고 정했고, 한편 모두가 토요일 예배에 근무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대중 설교의 대부분을 맡았다. 빌립과 나다니엘과 토마스와 시몬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일했고, 특별한 집단의 질문자들을 위하여 학급을 운영했다. 쌍둥이는 일반 치안 감독을 계속했고, 한편 안드레와 마태와 유다는 세 사람으로 구성된 일반 관리 위원회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 셋은 또한 각자 종교적인 일을 상당히 했다.
안드레는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의 새 제자들 사이에, 항상 되풀이해서 생기는 오해와 의견 차이를 좁히는 일에 많이 분주했다. 며칠마다 심각한 상황이 터지곤 했지만, 동료 사도들의 도움을 받아서 안드레는 다투는 편들을 그럭저럭, 적어도 일시나마, 어떤 종류의 협정에 이르도록 유도했다. 예수는 이 회담 중 어디에도 참여하려 하지 않았다. 이 난관을 적절히 조정하는 데 아무 조언도 주려 하지 않았고, 한 번도 사도들이 이 난처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제안하지도 않았다. 안드레가 이 문제들을 가지고 왔을 때, 예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주인이 손님의 집안 문제에 끼어 드는 것이 지혜롭지 않으니라. 슬기로운 부모는 아이들의 사소한 싸움에서 결코 편을 들지 않느니라."
주는 사도들과 모든 제자를 다루는 온갖 일에 큰 지혜를 보이고 완전히 공평함을 보였다. 예수는 참으로 사람들을 통달했고, 성격의 통합된 매력과 힘 때문에 동료 인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거칠고 방랑하며 집 없이 사는 생활에는 미묘하게 위엄 있는 힘이 있었다. 권위 있는 교육 방법, 맑은 논리, 추리력, 지혜로운 통찰력, 총명한 지성, 비할 데 없이 차분한 태도, 더할 나위 없는 관용(寬容)에는 지적 매력과 영적 인력(引力)이 있었다. 그는 단순하고, 남자답고 정직하며, 두려움이 없었다. 주의 풍채에 나타난 이 모든 신체적,지적 영향과 함께, 인격과 관련하여, 존재의 모든 영적 매력이 있었다ㅡ참을성 있고 싹싹하고, 온유하고 부드럽고 겸허했다.
나사렛 예수는 정말로 튼튼하고 힘찬 성격이었다. 지적인 힘이요 영적 요새였다. 그의 인격은 추종들 가운데 영적 생각을 가진 여자들 뿐 아니라, 교육받고 지적인 니고데모, 강건한 로마인 군인에게도 매력이 있었으니, 십자가에서 머무르면서 지키던 지휘관은 주가 돌아가시는 것을 끝까지 보고 나서 말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원기 있고 거친 갈릴리 어부들은 그를 주라고 불렀다.
예수의 초상화들은 아주 보기 민망했다. 이 그리스도의 그림들은 청년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쳐 왔다. 그가 너희 미술가들이 보통 묘사한 그런 사람이었다면, 성전(聖殿) 상인들은 예수 앞에서 도저히 도망(逃亡)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위엄있는 어른이었고, 선했어도 자연스러웠다. 예수는 연약하고 다정하고 부드럽고 친절한 신비주의자의 태도가 없었다. 그의 가르침은 가슴이 떨리도록 힘에 넘쳤다. 그는 좋은 의도를 가졌을 뿐 아니라, 실제로 착한 일을 하며 다녔다.
주는 결코 "게으르고 꿈꾸는 너희는 다 내게로 오라" 말씀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번 일렀다:
"수고하는 너희는 다 내게로 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휴식ㅡ영적 힘ㅡ을 주리라." 주의 멍에는 가볍지만, 그렇다 해도 결코 그 멍에를 강제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자기의 자유 의지대로 이 멍에를 메어야 한다.
예수는 희생으로, 즉 자만과 이기심을 희생하여, 승리함을 보여 주었다. 자비를 보여서 모든 불만 불평 노여움, 이기적 권력과 복수를 몹시 찾는 태도로부터 영적으로 구원받음을 보여 주려고 뜻하였다. "악에 저항하지 말라" 하였을 때, 죄를 묵인(默認)하거나 불의와 사귀려고 조언함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나중에 설명했다. 용서를 더욱 가르치고, "사람의 인격을 악하게 대우하는 데, 인격의 위엄에 대하여 가진 느낌을 악한 방법으로 상처 입히는 데 저항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3. 아마투스에서 머무르다
주와 사도들은 거의 3주 동안 아마투스 가까이 남아 있었다. 사도들은 날마다 두 차례 군중에게 계속 설교했고, 예수는 토요일 오후마다 설교했다. 수요일의 노는 시간을 계속하기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안드레는 한 주 6일의 각 요일마다 두 사도가 쉬어야 한다고 정했고, 한편 모두가 토요일 예배에 근무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대중 설교의 대부분을 맡았다. 빌립과 나다니엘과 토마스와 시몬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일했고, 특별한 집단의 질문자들을 위하여 학급을 운영했다. 쌍둥이는 일반 치안 감독을 계속했고, 한편 안드레와 마태와 유다는 세 사람으로 구성된 일반 관리 위원회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 셋은 또한 각자 종교적인 일을 상당히 했다.
안드레는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의 새 제자들 사이에, 항상 되풀이해서 생기는 오해와 의견 차이를 좁히는 일에 많이 분주했다. 며칠마다 심각한 상황이 터지곤 했지만, 동료 사도들의 도움을 받아서 안드레는 다투는 편들을 그럭저럭, 적어도 일시나마, 어떤 종류의 협정에 이르도록 유도했다. 예수는 이 회담 중 어디에도 참여하려 하지 않았다. 이 난관을 적절히 조정하는 데 아무 조언도 주려 하지 않았고, 한 번도 사도들이 이 난처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제안하지도 않았다. 안드레가 이 문제들을 가지고 왔을 때, 예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주인이 손님의 집안 문제에 끼어 드는 것이 지혜롭지 않으니라. 슬기로운 부모는 아이들의 사소한 싸움에서 결코 편을 들지 않느니라."
주는 사도들과 모든 제자를 다루는 온갖 일에 큰 지혜를 보이고 완전히 공평함을 보였다. 예수는 참으로 사람들을 통달했고, 성격의 통합된 매력과 힘 때문에 동료 인간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거칠고 방랑하며 집 없이 사는 생활에는 미묘하게 위엄 있는 힘이 있었다. 권위 있는 교육 방법, 맑은 논리, 추리력, 지혜로운 통찰력, 총명한 지성, 비할 데 없이 차분한 태도, 더할 나위 없는 관용(寬容)에는 지적 매력과 영적 인력(引力)이 있었다. 그는 단순하고, 남자답고 정직하며, 두려움이 없었다. 주의 풍채에 나타난 이 모든 신체적,지적 영향과 함께, 인격과 관련하여, 존재의 모든 영적 매력이 있었다ㅡ참을성 있고 싹싹하고, 온유하고 부드럽고 겸허했다.
나사렛 예수는 정말로 튼튼하고 힘찬 성격이었다. 지적인 힘이요 영적 요새였다. 그의 인격은 추종들 가운데 영적 생각을 가진 여자들 뿐 아니라, 교육받고 지적인 니고데모, 강건한 로마인 군인에게도 매력이 있었으니, 십자가에서 머무르면서 지키던 지휘관은 주가 돌아가시는 것을 끝까지 보고 나서 말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원기 있고 거친 갈릴리 어부들은 그를 주라고 불렀다.
예수의 초상화들은 아주 보기 민망했다. 이 그리스도의 그림들은 청년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쳐 왔다. 그가 너희 미술가들이 보통 묘사한 그런 사람이었다면, 성전(聖殿) 상인들은 예수 앞에서 도저히 도망(逃亡)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위엄있는 어른이었고, 선했어도 자연스러웠다. 예수는 연약하고 다정하고 부드럽고 친절한 신비주의자의 태도가 없었다. 그의 가르침은 가슴이 떨리도록 힘에 넘쳤다. 그는 좋은 의도를 가졌을 뿐 아니라, 실제로 착한 일을 하며 다녔다.
주는 결코 "게으르고 꿈꾸는 너희는 다 내게로 오라" 말씀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번 일렀다:
"수고하는 너희는 다 내게로 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휴식ㅡ영적 힘ㅡ을 주리라." 주의 멍에는 가볍지만, 그렇다 해도 결코 그 멍에를 강제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자기의 자유 의지대로 이 멍에를 메어야 한다.
예수는 희생으로, 즉 자만과 이기심을 희생하여, 승리함을 보여 주었다. 자비를 보여서 모든 불만 불평 노여움, 이기적 권력과 복수를 몹시 찾는 태도로부터 영적으로 구원받음을 보여 주려고 뜻하였다. "악에 저항하지 말라" 하였을 때, 죄를 묵인(默認)하거나 불의와 사귀려고 조언함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나중에 설명했다. 용서를 더욱 가르치고, "사람의 인격을 악하게 대우하는 데, 인격의 위엄에 대하여 가진 느낌을 악한 방법으로 상처 입히는 데 저항하지 말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