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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시작해서 시저의 암살로 끝나는 부분입니다. 도시국가 로마가 제국 로마로 태어나는 시기에 해당합니다.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가 너무 일방적으로 시저를 찬양하는 듯한 느낌도 있지만, 시저가 가진 "보고 싶지 않은 면도 볼 줄 아는 능력"에는 무척 주목이 갑니다.
대략 6년 전 이야깁니다. 회사 선배가 있고, 내가 있고, 후배가 있었습니다. 선배는 남을 놀리고 씹는 재미가 인생의 큰 부분 중 하나입니다. 원래 성격이 좀 그렇습니다만,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옆에서 적당히 브레이크를 걸면 그 브레이크의 의미도 잘 아는 그런 선배입니다. 처음에는 나 자신이 그 놀림의 대상이었는데, 좀 직설적으로 몇 번 쏘아붙이니까 더 이상 내게 심하게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입이 심심했던지 이번에는 후배가 그 대상이 되었습니다. 참 집요하게도 놀려댔습니다. 그런데 성격 좋은 후배는 그저 허허 웃어넘겼고, 나는 선배 옆에서 적당히 브레이크를 걸려고 애썼습니다. 화제를 딴 데로 돌린다거나, 아니면 선배에게 되쏘아 버리거나.
얼마 뒤, 아내로부터 충격적 얘기를 들었습니다. 후배의 부인과 알게 된 나의 아내. 내게 와서 잔소리를 합니다. "후배 좀 그만 놀려라."고 합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아내는 자초지종을 들려줍니다.
후배가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후배의 아내 역시 속이 많이 상했다. 후배를 놀리는 주체는 선배고, "나"는 그 선배 못지 않게 옆에서 부채질해댔다. 등등..
갑자기 생각난 속담 하나가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린다..
나중에 후배를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는" 그리고, "있지도 않은 것을 자기의 기준에 각색해서 보는"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착한 친구입니다. 마음이 여린 친구입니다. 하지만, 객관을 너무 주관적으로 보는데다, 그 주관에 각색마저 가끔 들어가길래 점점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면, 결국 이르게 되는 종착역이 없었던 것도 있었던 사실처럼 자신의 잠재 의식이 꾸미게 되는 지경입니다. 그러고도 자기 자신은 모릅니다. 가장 불쌍한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명상 중에 본 석가모니는 허깨비요, 꿈 속에서 본 예수는 개꿈임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내게 주먹질을 한다면, 그가 왜 내게 주먹질을 하게 되었는지 한번 돌이켜 봐야 합니다. 그러고도 드는 결론이, "나는 부당하게 맞았다."라면 그때는 과감히 주먹을 되돌려줘도 됩니다.
그러나 살아온 길을 가만히 되돌아보면, 내가 오른뺨 맞았으니 저 녀석 양쪽 뺨 다 때려야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오른뺨 뿐만 아니라 왼뺨도 덤으로 더 맞을 짓을 하고 다녔구나라는 자책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략 6년 전 이야깁니다. 회사 선배가 있고, 내가 있고, 후배가 있었습니다. 선배는 남을 놀리고 씹는 재미가 인생의 큰 부분 중 하나입니다. 원래 성격이 좀 그렇습니다만,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옆에서 적당히 브레이크를 걸면 그 브레이크의 의미도 잘 아는 그런 선배입니다. 처음에는 나 자신이 그 놀림의 대상이었는데, 좀 직설적으로 몇 번 쏘아붙이니까 더 이상 내게 심하게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입이 심심했던지 이번에는 후배가 그 대상이 되었습니다. 참 집요하게도 놀려댔습니다. 그런데 성격 좋은 후배는 그저 허허 웃어넘겼고, 나는 선배 옆에서 적당히 브레이크를 걸려고 애썼습니다. 화제를 딴 데로 돌린다거나, 아니면 선배에게 되쏘아 버리거나.
얼마 뒤, 아내로부터 충격적 얘기를 들었습니다. 후배의 부인과 알게 된 나의 아내. 내게 와서 잔소리를 합니다. "후배 좀 그만 놀려라."고 합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집니다. 아내는 자초지종을 들려줍니다.
후배가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후배의 아내 역시 속이 많이 상했다. 후배를 놀리는 주체는 선배고, "나"는 그 선배 못지 않게 옆에서 부채질해댔다. 등등..
갑자기 생각난 속담 하나가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린다..
나중에 후배를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는" 그리고, "있지도 않은 것을 자기의 기준에 각색해서 보는" 그런 성격이었습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착한 친구입니다. 마음이 여린 친구입니다. 하지만, 객관을 너무 주관적으로 보는데다, 그 주관에 각색마저 가끔 들어가길래 점점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면, 결국 이르게 되는 종착역이 없었던 것도 있었던 사실처럼 자신의 잠재 의식이 꾸미게 되는 지경입니다. 그러고도 자기 자신은 모릅니다. 가장 불쌍한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명상 중에 본 석가모니는 허깨비요, 꿈 속에서 본 예수는 개꿈임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 내게 주먹질을 한다면, 그가 왜 내게 주먹질을 하게 되었는지 한번 돌이켜 봐야 합니다. 그러고도 드는 결론이, "나는 부당하게 맞았다."라면 그때는 과감히 주먹을 되돌려줘도 됩니다.
그러나 살아온 길을 가만히 되돌아보면, 내가 오른뺨 맞았으니 저 녀석 양쪽 뺨 다 때려야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오른뺨 뿐만 아니라 왼뺨도 덤으로 더 맞을 짓을 하고 다녔구나라는 자책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