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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피에르라는 스물다섯의 한 청년이 노스트라다므스를
찾아와 자문을 구했읍니다
그는 아름다운 아를 공의 막내딸 퐁텐양과 사랑에 빠져
아를 공의 저택을 찾아가 혼인 신청을 했지만
이미 가론의 기사인 베르나르라는 강력한 구혼자가 있었읍니다.
베르나르는 뛰어난 기사로 몸집이 생피에르보다 크고
용기나 무술 지혜도 뛰어났읍니다.
아를 공과 퐁텐 양은 매우 난처해져졌고 결국 아를의 옛 방식을
따라 결정하기로 낙착되었읍니다.
그리하여 창시합을 벌여 이긴 쪽이 퐁텐 양과 결혼 하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누가 이길 것인지 세계제일의 예언가인
노스트라다므스에게 예지해 줄것을 청했던 것입니다
노스트라다므스는 일 주일 뒤에 벌어지게될 창 시합을 예견하며
이렇게 말했읍니다.
그 행복한 승리자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희망을 갖지 말라
기대도 하지 말라,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죽어야 하므로
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처녀는 생피에르 씨에게 더 기울어져 있읍니다.
그러나 생피에르 씨는 그러한 처녀의 사랑이나 그 아름다운 육체
시합의 승리 따위에 대해서도 일절 희망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모든 기대를 버리고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면서 싸워야 합니다.
이리하여 생피에르는 비관적이 예언을 듣고서 돌아왔읍니다.
그러나 기사가 되어 싸움을 피할수는 없는일!
기사가 결투에서 도망치게 되면 비겁자라고 조롱당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불에 달군 인두로 이마에 낙인을 찍혀 신분을 박탈당하고
영원히 기사단에서 추방되는 규약이 중세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남프랑스의 기사 사회에는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싸움은 피할 수 없다 노스트라다므스 선생이 그렇게 말한 이상
내가 이겨서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만에 하나도 없다 오직 부끄럽지
않게 패하여 죽는 길밖에 도리가 없다
생피에르는 이렇게 생각하며 시합에 임했읍니다.
그리고 결투 당일에는 죽을 때 입는 흰 색 하의와 상의 위에
흰 갑옷을 걸치고 역시 흰 투구를 썼읍니다.
말도 그 당시 일대일 결투에는 불길하다고 하는 백마를 골라 타고
비장한 각오로 시합장을 향했읍니다
그러나 생피에르의 흰옷과 투구로 인한 햇빛의 반사광으로
찰라의 실수로 베르나르는 생피에르의 창에 심장을 찔리고
결과는 뜻밖에 생피에르의 승리가 되고
퐁텐양을 얻는 기쁨과 행운을 얻게 되었읍니다
생피에르는 이로부터 두주일 후에 다시 노스트라다므스를 찾아가
따지기로 했읍니다.
노스트라다므스씨 당신은 그때 내게 희망을 갖지 말라 승리하기를
기대하지 말라 인간은 주구나 죽는다 각오하라 이렇게 말했지요?
그렇읍니다.
나는 당신의 그 말을 확신했었소. 반드시 죽는다고 생각하면서
싸웠단 말이오 그런데 나는 베르나르를 이기고 이렇게 살아 있소
처녀의 몸도 영지도 황금도 내것이 되었소
당신의 예언은 전혀 맞지가 않았단 말이오
그런가요 노스트라다므스는 웃음지으며 이렇게 말했읍니다.
그렇지만 생피에르 씨 내가 만일 그때 당신이 이긴다
베르나르는 당신에게 찔려 피를 토하고 죽는다 하고 말했다면
정작 당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도 당신은 죽음을 각오하고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베르나르와 싸웠을까요?
또 자신이 이길 텐데도 수의를 뜻하는 흰 갑옷을 입고 결투장에
나갔을까요
내가 그때 본 것은 생피에르 씨가 정말로 패배해서 죽는다고 하는
최악의 운명이었읍니다.
상대인 베르나르는 그럴 만큼 충분히 강했고 생피에르 씨보다
무예가 한수 위였읍니다.
성격적으로도 생피에르 씨보다 훨씬 강했고 자신에 차 있었읍니다.
게다가 운세상으로도 최고의 시기에 있었읍니다.
그에 비해 생피에르 씨는 기술이 미숙할 뿐만 아니라 성격적으로도
그보다 섬세하고 시기적으로도 적당한 때가 아니었읍니다.
따라서 싸우면 비참하게 죽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읍니다.
그러나 그처럼 최악의 절망적인 상황을 막바지에서 역전시키는
법칙이 한 가지 있읍니다.
우리 노스트라다므스 가에 대대로 전해오는 옛 유태의
카발라 전통 속에 그것이 있읍니다.
그것은 철저히 절망하는 것입니다. 일체의 희망과 기대와 잡념을 버리고
죽은 사람과 같이 완전히 무심의 경지가 되는 것
그 완전한 무심함만을 지니고 운명의 길에 서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생피에르씨에게 사용해보았읍니다.
생피에르 씨에게 호의를 느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최악의 죽음이라고 하는 흉운조차도 그 마지막에 가서 최대의
행운으로 변할 수 있다고 하는 비법의 효력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피에르씨라면 희망을 완전히 버리고 무심의 상태에서
운명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대로이지 않읍니까 생피에르씨?
당신은 승리에 대한 바람도 살고자 하는 희망도 여인에 대한 애욕도
일체의 기대와 욕망과 잡녑도 버리고 결투장에 갔읍니다.
그러나 오직 부끄럽지 않게 싸우리라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죽기전에
무사답게 공격이라도 한 번 하고 죽으리라 하는 기사본연의 기질
- 이것이 중요하지만 - 도 갖고 있었읍니다.
거기에 물과 같은 무심함이 어우러져 생피에르 씨의 몸과 마음이
유연자재하게 움직였읍니다.
그리하여 최대한도 이상의 힘이 발휘되면서
무의식중의 일격에 모든 힘이 집중된 것입니다.
이것은 창시합에만 한정되지 않읍니다.
인생의 모든 일에 이 법칙이 적용될수 있읍니다.
무슨 일이든 커다란 위기가 닥쳐올 때 철저히 절망하여 최대의 힘을
발휘한다고 하는 이법칙을 따르면 반드시 이번 결투에서의 생피에르씨와
같이 승리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노스트라다므스의 몇 안 되는 전기에 단편적으로
기재된 것들을 필자(고토벤)가 끌어모아 재구성한 이야기 임
운명의 초법칙 정신세계
ㅡ생각하는데로 되기 때문에 여기서 이야기 한데로 절망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곤란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이처럼 정해진 것은 아니고 또한 정해져있다해도
슬기와 노력으로 극복하고 전환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읍니다.
예언의 진정한 목적은 그것을 알고 바꾸기 위함입니다.
예언이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언으로 인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한다는데 진정한 의미가
있는것입니다
어느 채널링에서 예언에 대해
예수님은 직물속의 직물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 나는 예언가가 아니로다.
*일은 되어보아야 아느니라
ㅡ My friend 증 산
찾아와 자문을 구했읍니다
그는 아름다운 아를 공의 막내딸 퐁텐양과 사랑에 빠져
아를 공의 저택을 찾아가 혼인 신청을 했지만
이미 가론의 기사인 베르나르라는 강력한 구혼자가 있었읍니다.
베르나르는 뛰어난 기사로 몸집이 생피에르보다 크고
용기나 무술 지혜도 뛰어났읍니다.
아를 공과 퐁텐 양은 매우 난처해져졌고 결국 아를의 옛 방식을
따라 결정하기로 낙착되었읍니다.
그리하여 창시합을 벌여 이긴 쪽이 퐁텐 양과 결혼 하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누가 이길 것인지 세계제일의 예언가인
노스트라다므스에게 예지해 줄것을 청했던 것입니다
노스트라다므스는 일 주일 뒤에 벌어지게될 창 시합을 예견하며
이렇게 말했읍니다.
그 행복한 승리자가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희망을 갖지 말라
기대도 하지 말라,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죽어야 하므로
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처녀는 생피에르 씨에게 더 기울어져 있읍니다.
그러나 생피에르 씨는 그러한 처녀의 사랑이나 그 아름다운 육체
시합의 승리 따위에 대해서도 일절 희망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모든 기대를 버리고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면서 싸워야 합니다.
이리하여 생피에르는 비관적이 예언을 듣고서 돌아왔읍니다.
그러나 기사가 되어 싸움을 피할수는 없는일!
기사가 결투에서 도망치게 되면 비겁자라고 조롱당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불에 달군 인두로 이마에 낙인을 찍혀 신분을 박탈당하고
영원히 기사단에서 추방되는 규약이 중세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남프랑스의 기사 사회에는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싸움은 피할 수 없다 노스트라다므스 선생이 그렇게 말한 이상
내가 이겨서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만에 하나도 없다 오직 부끄럽지
않게 패하여 죽는 길밖에 도리가 없다
생피에르는 이렇게 생각하며 시합에 임했읍니다.
그리고 결투 당일에는 죽을 때 입는 흰 색 하의와 상의 위에
흰 갑옷을 걸치고 역시 흰 투구를 썼읍니다.
말도 그 당시 일대일 결투에는 불길하다고 하는 백마를 골라 타고
비장한 각오로 시합장을 향했읍니다
그러나 생피에르의 흰옷과 투구로 인한 햇빛의 반사광으로
찰라의 실수로 베르나르는 생피에르의 창에 심장을 찔리고
결과는 뜻밖에 생피에르의 승리가 되고
퐁텐양을 얻는 기쁨과 행운을 얻게 되었읍니다
생피에르는 이로부터 두주일 후에 다시 노스트라다므스를 찾아가
따지기로 했읍니다.
노스트라다므스씨 당신은 그때 내게 희망을 갖지 말라 승리하기를
기대하지 말라 인간은 주구나 죽는다 각오하라 이렇게 말했지요?
그렇읍니다.
나는 당신의 그 말을 확신했었소. 반드시 죽는다고 생각하면서
싸웠단 말이오 그런데 나는 베르나르를 이기고 이렇게 살아 있소
처녀의 몸도 영지도 황금도 내것이 되었소
당신의 예언은 전혀 맞지가 않았단 말이오
그런가요 노스트라다므스는 웃음지으며 이렇게 말했읍니다.
그렇지만 생피에르 씨 내가 만일 그때 당신이 이긴다
베르나르는 당신에게 찔려 피를 토하고 죽는다 하고 말했다면
정작 당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도 당신은 죽음을 각오하고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베르나르와 싸웠을까요?
또 자신이 이길 텐데도 수의를 뜻하는 흰 갑옷을 입고 결투장에
나갔을까요
내가 그때 본 것은 생피에르 씨가 정말로 패배해서 죽는다고 하는
최악의 운명이었읍니다.
상대인 베르나르는 그럴 만큼 충분히 강했고 생피에르 씨보다
무예가 한수 위였읍니다.
성격적으로도 생피에르 씨보다 훨씬 강했고 자신에 차 있었읍니다.
게다가 운세상으로도 최고의 시기에 있었읍니다.
그에 비해 생피에르 씨는 기술이 미숙할 뿐만 아니라 성격적으로도
그보다 섬세하고 시기적으로도 적당한 때가 아니었읍니다.
따라서 싸우면 비참하게 죽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읍니다.
그러나 그처럼 최악의 절망적인 상황을 막바지에서 역전시키는
법칙이 한 가지 있읍니다.
우리 노스트라다므스 가에 대대로 전해오는 옛 유태의
카발라 전통 속에 그것이 있읍니다.
그것은 철저히 절망하는 것입니다. 일체의 희망과 기대와 잡념을 버리고
죽은 사람과 같이 완전히 무심의 경지가 되는 것
그 완전한 무심함만을 지니고 운명의 길에 서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생피에르씨에게 사용해보았읍니다.
생피에르 씨에게 호의를 느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최악의 죽음이라고 하는 흉운조차도 그 마지막에 가서 최대의
행운으로 변할 수 있다고 하는 비법의 효력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피에르씨라면 희망을 완전히 버리고 무심의 상태에서
운명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대로이지 않읍니까 생피에르씨?
당신은 승리에 대한 바람도 살고자 하는 희망도 여인에 대한 애욕도
일체의 기대와 욕망과 잡녑도 버리고 결투장에 갔읍니다.
그러나 오직 부끄럽지 않게 싸우리라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죽기전에
무사답게 공격이라도 한 번 하고 죽으리라 하는 기사본연의 기질
- 이것이 중요하지만 - 도 갖고 있었읍니다.
거기에 물과 같은 무심함이 어우러져 생피에르 씨의 몸과 마음이
유연자재하게 움직였읍니다.
그리하여 최대한도 이상의 힘이 발휘되면서
무의식중의 일격에 모든 힘이 집중된 것입니다.
이것은 창시합에만 한정되지 않읍니다.
인생의 모든 일에 이 법칙이 적용될수 있읍니다.
무슨 일이든 커다란 위기가 닥쳐올 때 철저히 절망하여 최대의 힘을
발휘한다고 하는 이법칙을 따르면 반드시 이번 결투에서의 생피에르씨와
같이 승리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노스트라다므스의 몇 안 되는 전기에 단편적으로
기재된 것들을 필자(고토벤)가 끌어모아 재구성한 이야기 임
운명의 초법칙 정신세계
ㅡ생각하는데로 되기 때문에 여기서 이야기 한데로 절망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곤란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이처럼 정해진 것은 아니고 또한 정해져있다해도
슬기와 노력으로 극복하고 전환할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읍니다.
예언의 진정한 목적은 그것을 알고 바꾸기 위함입니다.
예언이란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언으로 인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한다는데 진정한 의미가
있는것입니다
어느 채널링에서 예언에 대해
예수님은 직물속의 직물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 나는 예언가가 아니로다.
*일은 되어보아야 아느니라
ㅡ My friend 증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