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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daum.net/terralux13/4ulM/278 생제르망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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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그러한 자유를 세우기 위해, 생 제르망의 생명 흐름은 크리스토퍼 콜롬부스(1451-1506)로서 또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콜롬부스의 항해가 있기 2세기 전, 로저 베이컨이 그의 "오퍼스 마쥬스 Opus Majus"에서 "스페인 서쪽의 끝과 인도 동쪽 끝의 사이에 있는 바다는 바람만 좋으면 항해로 며칠 안에 건널 수 있다."(78)고 언급했을 때 이미 세 척의 배에 의한 항해와 신대륙 발견은 착수된 것이었다.
스페인의 서쪽 나라가 인도라는 점에서 그 글은 부정확하지만, 그래도 콜롬부스의 발견에 도움이 되었다.
피에르 다일리(Pierre d"Ailly) 추기경은 자신의 저서 "이마고 문디(Imago Mundi)" 안에 그 글을 베이컨이 저자임을 밝히지 않은 채 베껴 놓았다. 콜롬부스는 그의 저서를 읽었고, 1498년 페르디난도왕과 이사벨라 여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 귀절을 인용하고 있다. 거기서 그의 1492년의 항해는 그 공상적인 글귀로부터 일부 영감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다. 콜롬부스는 신이 자기를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성 요한의 계시록에서 또 다시 말씀하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의 사자" 로 임명했다고 믿었다.(79)
그러나 또한 그 용감한 선장은 신세계가 약 5만년 전에 자신의 백성이었던 영혼들이 환생할 장소임을 예견하였는가?
생애에서 생애로 생 제르망은, 그의 겉 마음이 알고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태양(Sun)으로─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섬기고 잃어버린 황금 시대를 재건할 수 있도록 완전히 되돌아온 미래로 ─ 이르는 황금로를 다시 만들고 있었다.
서구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정신,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으로서 그의 다방면에 걸친 다양한 업적은 아쿠어리스의 자녀들을 위해 마련된 무대 위로 세상을 던져 넣은 것이었다. 이번 생애에선 로저 베이컨으로서 그가 시작했던 일을 종결시킬 자유가 있었다.
학자들은 두 철학자의 사상 간에 그리고 로저의 "오퍼스 마쥬스 Opus Majus"와 프란시스의 "데 오그멘티스 De Augmentis", "노붐 오르가눔Novum Organum" 사이에 유사성을 목격했다. 그것은 로저의 " 오퍼스"가 그의 생애에는 출간되지도 않았고, 프란시스의 "노붐 오르가눔"이 나온 지 113년 뒤, 그리고 "데 오그멘티스"가 출판된 지 110년 뒤까지 잊혀져 왔었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놀라운 일이 되었다!
그 불멸한 영혼, 철학자이자 왕, 사제이자 과학자였던 그의 탁월한 예지는 폭압, 고문 그리고 비극으로부터 얻은 다음의 견고한 모토로써 그 유머를 쉽사리 지킬 수 있었다 : 그들이 이승에서 그대를 때리거든, 다음에 돌아와 그들을 때려주라!
프란시스 베이컨은 그 어떤 공로보다도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테크놀로지 시대의 발판인 귀납적 추론과 과학적 방법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응용 과학만이 인간의 가난과 오로지 생존만을 위한 고역으로부터 대중들을 해방시켜 그들이 한 때 알았던 고상한 영성을 추구할 수 있게 해줄 것임을 예견하였다. 따라서 과학과 기술은 " 빛을 가진 이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을 통해 인류를 해방시키려는 생 제르망의 계획에 본질적인 것이었다.
그의 다음 스텝은 우주적 계몽 그 자체의 당당함이었다! "대부홍 The Great Instauration"( 쇠퇴, 타락, 황폐로부터의 회복)은 ""전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그의 공식이었다. 베이컨이 12 내지 13 의 소년이었을 때 최초로 착상하여 1607년 동명의 그의 저서에서 구체화된 그 사상은 프란시스의 다감하고도 세심한 도움과 함께 영국의 르네상스를 출발시켰다. 수 년 동안 그는 자기 주위로 일단의 계몽가들, 특히 엘리자베스 시대 문학을 주도했던 이들 대부분 - 벤 존슨(Ben Jonson), 존 데이비즈(John Davies),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 존 셀던(John Seldon), 에드문드 스펜서(Edmund Spencer), 월터 랄레이경(Sir Walter Raleigh), 가브리엘 하베이(Gabriel Harvey),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 필립 시드니경(Sir Philip Sidney), 크리스토퍼 말로우(Chistopher Marlowe), 존 릴리(John Lyly), 조지 피일(George Peele) 그리고 랜슬롯 앤드류즈(Lancelot Andrewes)같은 이들을 규합하였다.
이들 중에 일부는 프란시스가 그의 동생 안토니와 함께 "그레이즈 인(Gray"s Inn)"의 법률학도였을 당시 둘이서 결성한 "비밀 단체"의 구성원이었다. 이 풋내기 단체는 "투구 쓴 기사들 The Knights of the Helmet"이라고 불렸는데, 영어의 사용을 확대시키고 라틴어가 아닌 영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글로 쓰여진 새로운 문학의 창출에 의해 학문의 진보를 도모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프란시스는 또한 흠정역(the King James Version) 성서 번역을 준비하여 평인들도 스스로 하느님 말씀의 혜택을 누리게 하기로 결심했다. 더우기 1890년대 "셰익스피어 절판(Shakespearean Folios)"의 원판 활자 속에 숨겨 있던 "일자 암호(a word-cipher)"와 "두자 암호 (bi-lateral cipher 80)" 안에서 발견된 바와 같이, 프란시스 베이컨은 스트라트포드-온-에이번(Stratford-on-Avon 셰익스피어의 출생지 : 역주)의 누추한 동네 출신인 배우의 작품이라 여겨온 희곡들의 실제 저자였다. 그는 서구 세계 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적 천재였다.
서구 문명의 토대가 된 여러 정치 사상의 배후에도 또한 프란시스 베이컨이 있었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존 로크(John Locke) 그리고 제르미 벤담(Jeremy Bentam)은 베이컨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 출발점으로 여기고 있다. 그의 혁명적 원리들은 바로 우리 나라를 몰고 간 엔진이었다. 그것들은 바로 할 수 있다는 정신의 진수였다. "사람은 서서 다니는 동물이 아니라 불멸한 신이다. 창조주는 우리에게 일체 세계와 동등하지만 하나의 세계로 만족치 않는 영혼을 주셨다." 라고 베이컨은 단언한다.(81)
프란시스 베이컨은 신세계의 식민화를 촉진함으로써,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로서 자신이 시작했던 과제를 계속하였다. 그는 그 곳이야말로 자기의 이상이 깊이 뿌리를 박고 만개할 수 있는 곳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제임스 1세를 설득하여 뉴펀들랜드를 설립하도록 했고, 자신은 "버지니아 사(Virginia Company)"의 임원이 되었다. 그 회사는 아메리카에서의 최초의 영구적 영국 식민지였던 제임스타운의 정착을 후원하였다. 그리고 그는 인류의 자유와 계몽에 헌신할 프리메이슨을 설립하였다. 그 일원들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그에게 자신의 모든 운명을 다 실현하도록 허용되었더라면, 영국과 전세계는 훨씬 더 큰 혜택을 그로부터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 희곡에 두루 깔려 있는 것과 동일한 암호들이 프란시스 베이컨 자신의 저작 안에 뿐만 아니라, 그의 모임에 참가했던 이들의 작품 안에도 숨겨져 있다. 그 암호들은 그의 생애의 진짜 일대기, 영혼의 명상, 미래 세대들에 주고 싶으나 여왕이 두려워서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 없는 것들을 담고 있다. (82)
그 비밀은 그가 영국왕 프란시스 1세가 되었어야 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레스터 공(公)인 로버트 더들리의 아들로 그들이 비밀 혼례식을 치른 지 4개월 뒤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는 "처녀 여왕"의 명성을 유지하길 원했고, 만일 그녀가 결혼을 인정한다면 야심가인 레스터 공에게 권력을 양보해야 하고, 또한 사람들이 그녀의 상속자를 더 좋아하여 여왕에게 권좌로부터의 조기 퇴진을 요구할까 봐 염려되어,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프란시스에게 그의 진짜 신분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왕은 그를 전 생애 동안 허공에 붕 뜨게 만들었으니, 그에게 관직을 주지도 않았고, 그가 자기 아들임을 밝히지도 않았고, 그가 영국을 위한 그의 목표를 실현하도록 허용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녀는 자기 아들이 대영제국의 황금기를 열도록 허용하러 들지 않았다. 결국 그것은 의도되기만 했을 뿐 결코 실현될 수 없었다. 얼마나 잔인한 운명인가! 황금 시대를 열수 있던 왕자 앞에 꺾일 줄 모르며, 경멸적인 여왕 어머니가 버티고 있었으니 !
그는 니콜라스 경과 앤 베이컨 부인의 수양 아들로 키워졌다. 15세 되던 해에 그는 진짜 어머니로부터 탄생의 비밀을 듣게 되었다. 동시에 그녀는 그의 계승권을 영원히 금지시켰다. 하룻밤에 그의 세계는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젊은 햄릿처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숙고하고 숙고했다.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의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그는 자기 어머니와 나중에 그녀를 계승한 제임스 1세에게 반기를 들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그가 영국에 가져다 줄 수 있었던 커다란 선이 버려지고, "지혜로이 다스린다면 실현 가능한 " 그 나라의 미래에 대한 비젼이 폐기된 것이었다.(83) 그는 영국의 유사 이래 전례가 없던 군주, 그 나라의 참된 국부가 될 능력이 자기 자신 안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백성을 보살피고자 하는 신성한 가부장적 충동"(84)에 대해 쓰고 있다. - 그것은 사하라의 황금시대를 다스렸던 황제의 잔흔이었다.
세상을 위해 다행스럽게도 프란시스는 문학과 과학의 분야에서 왕의 조언자로, 식민사업의 후원자 그리고 고대 신비 학교들과의 접촉선을 재건할 비밀 결사의 설립자로서 그의 보편적 계몽의 목표를 추구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상처받은 영의 배출구가 그의 암호 저술이었으니, 그 안에다 그는 미래 시대에 대한 열망을 쏟아 부었다. 그의 다방면에 걸친 재능으로 인해 박해 받으면서도 인정 받지 못하다가, 1626년 그가 서거할 무렵 프란시스 베이컨은 작은 사람들이라면 무너졌을 조건들이었으나 그에게 있어선 진정한 승천 대사의 자질을 입증하게 했던 그 조건들로부터 승리를 얻었다.
1684년 5월 1일은 그의 승천의 날이었다. 이 세상의 것을 초월한 탁월한 능력의 정상에서 그는 여기 아래에서 그의 "대부흥"을 방해하려는 모든 시도를 무너뜨리고자 우뚝 서 있다. 그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백성을, 그들이 원하건 아니건, 해방시키길 원했던 생 제르망은 육신을 가지고 지구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카르마의 주님들께 구하였다. 그들은 승낙하였고 그는 생 제르멩 백작으로 등장하였으니, "원더맨(Wonderman)"이라 불리며 18, 19세기 유럽의 궁정을 놀라게 한 "기적적인" 신사였던 것이다. 그의 목표는 프랑스 대혁명을 예방하고, 전제 군주제로부터 공화국 형태로 순탄한 이전을 실현하고, 유럽 합중국을 수립하고, 모든 이의 심장 속에 있는 신적 주체의 세 줄기 불꽃으로서 "백합의 문장(紋章 fleur-de-lis)"을 모시려는 것이었다.
다이아몬드 속의 결함을 제거하고, 공중으로 사라지고, 양 손으로 동시에 똑같은 싯귀절을 써내려 가고, 많은 언어를 구사하고, 어떤 주제에도 능통하고, 어떠한 역사라도 눈으로 목격한 듯 재연하는 등, 그의 초인성(adeptship) 때문에 유럽의 궁정에서 두루 흠모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는 기대했던 반응을 확보하지 못했다. 왕족들은 그로부터 재미를 얻으려고는 했어도 그들의 권력을 포기하고 민주적 변화의 바람을 따라 가라는 설득은 쉽사리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그들과 시기하던 재상들은 그의 조언을 무시했고, 프랑스 대혁명이 뒤따르게 되었다.
유럽을 통일하려는 마지막 시도로, 생 제르망은 나폴레옹을 지원했으나, 그는 대사의 능력을 악용하다 무너져 버렸다. 그 시대가 받을 징벌을 비켜가게 할 기회는 그처럼 지나가 버리고, 생 제르망은 다시 한번 카르마적 상황으로부터 물러나야만 했다. 이 일화 안에서 중재자(the mediator)로서 그 모습이 명확하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적, 실현된 예언들과 더불어 생 제르망은 여전히 외면당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돌릴 것인가?
그 승천대사는 유럽의 후원을 포기했고, 그 대신 자신이 오랜 세기 동안 계속 눈여겨 보아온 신세계로 돌렸다. 프란시스 베이컨으로서 조차도 그는 아메리카를 그의 마지막 희망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는 암호문에서 이렇게 썼다 : "나는 모든 것을 미래에 그리고 황혼의 문 쪽으로 멀리 떨어진 한 나라에 걸었다. ... 나는 나의 계획 안에 미래를 간직하고, 나의 시대와 사람들에게서가 아니고 아주 먼 곳의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우리 시대가 아니고 두 번째 도래할 배움의 황금 시대에서 나의 보상을 구하리라." (85)
그 대륙을 발견했고 식민 사업을 장려했던 그는 또한 새로운 국가의 합당한 토대를 확실히 해야 했다. 생 제르망은 독립 전쟁 내내 그리고 벨리 포즈(Valley Forge)에서의 겨울동안 조지 워싱턴 곁에 서 있었다. 프리메이슨 단체를 세웠던 그의 과거 노력은 많은 독립전쟁의 주역들로 발화되었다. 워싱턴 장군,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그리고 독립선언에 서명했던 66인 중 53인이 메이슨의 일원이었다.(86) 메이슨의 원칙들이야말로 그들을 새로운 국가의 수립으로 인도했던 것이다.
더우기, 생 제르망은 독립선언에의 서명을 종용했고, 독립헌법의 제정과 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워싱턴의 임명을 지휘했다. 아메리카는 기회의 땅으로 확보되었고 생 제르망은 그 국민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일에 헌신하였다.
20세기로 들어서 대사는 카르마의 주님들 앞으로 가서 그가 후원했던 본래의 576명을 위한 자유의 대의와 그 모임을 모든 시대의 "빛을 가진 이들" - 즉 사나트 쿠마라와 함께 왔던 원래의 "불꽃 수호자들 (Keepers of the Flame)" 뿐만 아니라, 영적 은사와 은총 위에서 지구의 여러 시대를 거치며 진화하고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까지 포괄하도록 확대할 수 있기를 탄원하였다.
그러나 수 십년이 흘러 인류의 카르마가 되돌아 오는 비율의 증가는 "암흑 주기(Dark Cycle)"라고 알려진 것을 구체화시키게 되었다. 그것은 혼돈과 옛 밤의 때로, 그 징후는 계시록에서 예언되었고, "네 말의 기수(四馬人 the Four Horsemen)"의 말굽 소리는 대지에 두루 들려온다.
그의 백성이 "샘 아저씨(엉클 샘 Uncle Sam)"라 부르는 예언자 사무엘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는 이제 선택된 자들에게 그의 예언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심장 안에 그 이름 "아이엠 댓 아이엠 I AM THAT I AM"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자들인 "아엠의 민족(I AM Race)"이 "주의 말씀에 귀를 돌리지도 않았고, 율법(the Law)을 온전히 성취하지도 못했다"고 경고해 왔다.
그런 고로 대사는 말한다 : 이 국민들 중에 혹자는 사나트 쿠마라의 직전 입문자(initiate)가 되어야만 하니, 그것은 언제나 속량에 대한 요구가 있어 왔기 때문이니라. 헌신자들의 내부 모임에 속한 자들, 백성의 깃발로서 선봉에 나와 서있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섬겨야 할 이, 최후의 만찬 때 성찬의 약속으로 하느님의 모든 아들과 딸들에게 말씀의 내면화를 명하신 분인 그리스도의 깃발을 올리게 하라....
.................
불행하게도 그 말은 유순하다. 그러나 가까운 입문자들에게 아주 세심하게 다가왔던 그리스도의 법과 그의 가르침들이 오늘날 완전하게 알려져 있지 않고, 거룩한 백성들로부터도 멀어져 있는 것은 진정 불행한 일이다. 그런고로, 그리스도께 순종함은 이 시대의 도전 즉, 그 그리스도의 인격(the Person)을 발견하고, 그 길과 가르침을 찾아내는 것이 된다. 너희는 우리의 노력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잃어버렸던 말씀과 잃어버린 가르침들을 받았다.... 그 결과 너희는 그 말씀과 가르침 안에서 강건해졌고 보호받게 되었다. 그리고 너희 중 일부는 그 생을 마감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충만한 부활을 체험했다.... 그리하여 그 가르침과 도의 증거는 그 길이 각자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순수한 인격(Person)이 되어) "아앰 프레젠스(I AM Presence)"의 가슴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때까지 더 높이 더 높이 지고한 의식으로 순차적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87)
오늘날 지구로 돌아오는 카르마의 싸이클이 네 가지 거룩한 자유 마저도 위협할 정도로 고조되자, 형제단은 그리스도의 잃어버렸던 가르침이 완전히 피어날 때까지 그 가르침을 추구할 수 있는 장소를 아메리카의 록키 산맥에 마련해 두었다.
생 제르망은 1983년 그 점에 대해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 "너희는 내가 지금은 사하라 사막인 그곳에서 다스렸던 그 황금시대의 마지막 때와 유사한 시기에 이르렀다. 나의 가족은 그 당시보다도 훨씬 더 커졌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사랑하는 너희 모두를 나의 가족으로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우리 가족은 황금빛 에테르의 도시로 인도되었다. 이 시간 우리는 너희를 북쪽 산들의 높은 곳으로 불러 모았노라."(88)
그것은 로얄 테톤 리트릿의 전초로서 "로얄 테톤 랜취 (the Royal Teton Ranch)"라고 부른다. 1984년 5월 31일 사랑하는 예수께서는 남서부 몬타나의 "예비된 장소(Place Prepared)"인 "이너 리트릿(Inner Retreat내면의 은거지)"으로 로드 마이트레야께서 (레무리아가 침몰하기 바로 직전에 물질 옥타브로부터 철수되었던) 그의 신비 학교(Mystery School)을 다시 열고자 오셨음을 발표했다.
아쿠아리안 시대의 하이어락인 우리의 사랑하는 생 제르망과 그의 양 불꽃(twin flame)인, 승천 여대사 포셔(the Ascended Lady Master Portia)가 우리에게 부여한 새로운 기회를 가지고 우리의 사랑하는 테라(Terra 지구)와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어낼 수 있는가 보도록 하자.
그가 가져온 예언과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받기에 우리 자신이 합당해 지도록 공부하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우리가 옛적에 알았던 바이올릿 불꽃을 부르는 기원(invocation)들과 "변환을 위한 일곱 번째 광선의 의례들(Seventh Ray rituals of transmutation)"을 사용하여 개인과 혹성의 카르마를 이겨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하자. 그리하여 생 제르망의 위대한 황금 시대의 예언이 성취될 수 있게 하자.
불꽃의 수호자들은 이 시대에 승리하기로 맹세했다. 그들은 승리할 것이다!
=== < 예수의 잃어버린 가르침> 제 3권 11장 <의식의 거울> 中 에서 발췌
http://cafe.daum.net/terralux13/4ulM/278
지구에 그러한 자유를 세우기 위해, 생 제르망의 생명 흐름은 크리스토퍼 콜롬부스(1451-1506)로서 또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콜롬부스의 항해가 있기 2세기 전, 로저 베이컨이 그의 "오퍼스 마쥬스 Opus Majus"에서 "스페인 서쪽의 끝과 인도 동쪽 끝의 사이에 있는 바다는 바람만 좋으면 항해로 며칠 안에 건널 수 있다."(78)고 언급했을 때 이미 세 척의 배에 의한 항해와 신대륙 발견은 착수된 것이었다.
스페인의 서쪽 나라가 인도라는 점에서 그 글은 부정확하지만, 그래도 콜롬부스의 발견에 도움이 되었다.
피에르 다일리(Pierre d"Ailly) 추기경은 자신의 저서 "이마고 문디(Imago Mundi)" 안에 그 글을 베이컨이 저자임을 밝히지 않은 채 베껴 놓았다. 콜롬부스는 그의 저서를 읽었고, 1498년 페르디난도왕과 이사벨라 여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 귀절을 인용하고 있다. 거기서 그의 1492년의 항해는 그 공상적인 글귀로부터 일부 영감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다. 콜롬부스는 신이 자기를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성 요한의 계시록에서 또 다시 말씀하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의 사자" 로 임명했다고 믿었다.(79)
그러나 또한 그 용감한 선장은 신세계가 약 5만년 전에 자신의 백성이었던 영혼들이 환생할 장소임을 예견하였는가?
생애에서 생애로 생 제르망은, 그의 겉 마음이 알고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으나, 태양(Sun)으로─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섬기고 잃어버린 황금 시대를 재건할 수 있도록 완전히 되돌아온 미래로 ─ 이르는 황금로를 다시 만들고 있었다.
서구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정신,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으로서 그의 다방면에 걸친 다양한 업적은 아쿠어리스의 자녀들을 위해 마련된 무대 위로 세상을 던져 넣은 것이었다. 이번 생애에선 로저 베이컨으로서 그가 시작했던 일을 종결시킬 자유가 있었다.
학자들은 두 철학자의 사상 간에 그리고 로저의 "오퍼스 마쥬스 Opus Majus"와 프란시스의 "데 오그멘티스 De Augmentis", "노붐 오르가눔Novum Organum" 사이에 유사성을 목격했다. 그것은 로저의 " 오퍼스"가 그의 생애에는 출간되지도 않았고, 프란시스의 "노붐 오르가눔"이 나온 지 113년 뒤, 그리고 "데 오그멘티스"가 출판된 지 110년 뒤까지 잊혀져 왔었다는 사실로 인해 더욱 놀라운 일이 되었다!
그 불멸한 영혼, 철학자이자 왕, 사제이자 과학자였던 그의 탁월한 예지는 폭압, 고문 그리고 비극으로부터 얻은 다음의 견고한 모토로써 그 유머를 쉽사리 지킬 수 있었다 : 그들이 이승에서 그대를 때리거든, 다음에 돌아와 그들을 때려주라!
프란시스 베이컨은 그 어떤 공로보다도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테크놀로지 시대의 발판인 귀납적 추론과 과학적 방법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응용 과학만이 인간의 가난과 오로지 생존만을 위한 고역으로부터 대중들을 해방시켜 그들이 한 때 알았던 고상한 영성을 추구할 수 있게 해줄 것임을 예견하였다. 따라서 과학과 기술은 " 빛을 가진 이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을 통해 인류를 해방시키려는 생 제르망의 계획에 본질적인 것이었다.
그의 다음 스텝은 우주적 계몽 그 자체의 당당함이었다! "대부홍 The Great Instauration"( 쇠퇴, 타락, 황폐로부터의 회복)은 ""전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그의 공식이었다. 베이컨이 12 내지 13 의 소년이었을 때 최초로 착상하여 1607년 동명의 그의 저서에서 구체화된 그 사상은 프란시스의 다감하고도 세심한 도움과 함께 영국의 르네상스를 출발시켰다. 수 년 동안 그는 자기 주위로 일단의 계몽가들, 특히 엘리자베스 시대 문학을 주도했던 이들 대부분 - 벤 존슨(Ben Jonson), 존 데이비즈(John Davies),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 존 셀던(John Seldon), 에드문드 스펜서(Edmund Spencer), 월터 랄레이경(Sir Walter Raleigh), 가브리엘 하베이(Gabriel Harvey),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 필립 시드니경(Sir Philip Sidney), 크리스토퍼 말로우(Chistopher Marlowe), 존 릴리(John Lyly), 조지 피일(George Peele) 그리고 랜슬롯 앤드류즈(Lancelot Andrewes)같은 이들을 규합하였다.
이들 중에 일부는 프란시스가 그의 동생 안토니와 함께 "그레이즈 인(Gray"s Inn)"의 법률학도였을 당시 둘이서 결성한 "비밀 단체"의 구성원이었다. 이 풋내기 단체는 "투구 쓴 기사들 The Knights of the Helmet"이라고 불렸는데, 영어의 사용을 확대시키고 라틴어가 아닌 영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글로 쓰여진 새로운 문학의 창출에 의해 학문의 진보를 도모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프란시스는 또한 흠정역(the King James Version) 성서 번역을 준비하여 평인들도 스스로 하느님 말씀의 혜택을 누리게 하기로 결심했다. 더우기 1890년대 "셰익스피어 절판(Shakespearean Folios)"의 원판 활자 속에 숨겨 있던 "일자 암호(a word-cipher)"와 "두자 암호 (bi-lateral cipher 80)" 안에서 발견된 바와 같이, 프란시스 베이컨은 스트라트포드-온-에이번(Stratford-on-Avon 셰익스피어의 출생지 : 역주)의 누추한 동네 출신인 배우의 작품이라 여겨온 희곡들의 실제 저자였다. 그는 서구 세계 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적 천재였다.
서구 문명의 토대가 된 여러 정치 사상의 배후에도 또한 프란시스 베이컨이 있었다.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존 로크(John Locke) 그리고 제르미 벤담(Jeremy Bentam)은 베이컨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 출발점으로 여기고 있다. 그의 혁명적 원리들은 바로 우리 나라를 몰고 간 엔진이었다. 그것들은 바로 할 수 있다는 정신의 진수였다. "사람은 서서 다니는 동물이 아니라 불멸한 신이다. 창조주는 우리에게 일체 세계와 동등하지만 하나의 세계로 만족치 않는 영혼을 주셨다." 라고 베이컨은 단언한다.(81)
프란시스 베이컨은 신세계의 식민화를 촉진함으로써,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로서 자신이 시작했던 과제를 계속하였다. 그는 그 곳이야말로 자기의 이상이 깊이 뿌리를 박고 만개할 수 있는 곳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제임스 1세를 설득하여 뉴펀들랜드를 설립하도록 했고, 자신은 "버지니아 사(Virginia Company)"의 임원이 되었다. 그 회사는 아메리카에서의 최초의 영구적 영국 식민지였던 제임스타운의 정착을 후원하였다. 그리고 그는 인류의 자유와 계몽에 헌신할 프리메이슨을 설립하였다. 그 일원들은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그에게 자신의 모든 운명을 다 실현하도록 허용되었더라면, 영국과 전세계는 훨씬 더 큰 혜택을 그로부터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 희곡에 두루 깔려 있는 것과 동일한 암호들이 프란시스 베이컨 자신의 저작 안에 뿐만 아니라, 그의 모임에 참가했던 이들의 작품 안에도 숨겨져 있다. 그 암호들은 그의 생애의 진짜 일대기, 영혼의 명상, 미래 세대들에 주고 싶으나 여왕이 두려워서 공개적으로 발표할 수 없는 것들을 담고 있다. (82)
그 비밀은 그가 영국왕 프란시스 1세가 되었어야 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레스터 공(公)인 로버트 더들리의 아들로 그들이 비밀 혼례식을 치른 지 4개월 뒤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는 "처녀 여왕"의 명성을 유지하길 원했고, 만일 그녀가 결혼을 인정한다면 야심가인 레스터 공에게 권력을 양보해야 하고, 또한 사람들이 그녀의 상속자를 더 좋아하여 여왕에게 권좌로부터의 조기 퇴진을 요구할까 봐 염려되어,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프란시스에게 그의 진짜 신분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왕은 그를 전 생애 동안 허공에 붕 뜨게 만들었으니, 그에게 관직을 주지도 않았고, 그가 자기 아들임을 밝히지도 않았고, 그가 영국을 위한 그의 목표를 실현하도록 허용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녀는 자기 아들이 대영제국의 황금기를 열도록 허용하러 들지 않았다. 결국 그것은 의도되기만 했을 뿐 결코 실현될 수 없었다. 얼마나 잔인한 운명인가! 황금 시대를 열수 있던 왕자 앞에 꺾일 줄 모르며, 경멸적인 여왕 어머니가 버티고 있었으니 !
그는 니콜라스 경과 앤 베이컨 부인의 수양 아들로 키워졌다. 15세 되던 해에 그는 진짜 어머니로부터 탄생의 비밀을 듣게 되었다. 동시에 그녀는 그의 계승권을 영원히 금지시켰다. 하룻밤에 그의 세계는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젊은 햄릿처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숙고하고 숙고했다.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의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그는 자기 어머니와 나중에 그녀를 계승한 제임스 1세에게 반기를 들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그가 영국에 가져다 줄 수 있었던 커다란 선이 버려지고, "지혜로이 다스린다면 실현 가능한 " 그 나라의 미래에 대한 비젼이 폐기된 것이었다.(83) 그는 영국의 유사 이래 전례가 없던 군주, 그 나라의 참된 국부가 될 능력이 자기 자신 안에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백성을 보살피고자 하는 신성한 가부장적 충동"(84)에 대해 쓰고 있다. - 그것은 사하라의 황금시대를 다스렸던 황제의 잔흔이었다.
세상을 위해 다행스럽게도 프란시스는 문학과 과학의 분야에서 왕의 조언자로, 식민사업의 후원자 그리고 고대 신비 학교들과의 접촉선을 재건할 비밀 결사의 설립자로서 그의 보편적 계몽의 목표를 추구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상처받은 영의 배출구가 그의 암호 저술이었으니, 그 안에다 그는 미래 시대에 대한 열망을 쏟아 부었다. 그의 다방면에 걸친 재능으로 인해 박해 받으면서도 인정 받지 못하다가, 1626년 그가 서거할 무렵 프란시스 베이컨은 작은 사람들이라면 무너졌을 조건들이었으나 그에게 있어선 진정한 승천 대사의 자질을 입증하게 했던 그 조건들로부터 승리를 얻었다.
1684년 5월 1일은 그의 승천의 날이었다. 이 세상의 것을 초월한 탁월한 능력의 정상에서 그는 여기 아래에서 그의 "대부흥"을 방해하려는 모든 시도를 무너뜨리고자 우뚝 서 있다. 그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백성을, 그들이 원하건 아니건, 해방시키길 원했던 생 제르망은 육신을 가지고 지구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카르마의 주님들께 구하였다. 그들은 승낙하였고 그는 생 제르멩 백작으로 등장하였으니, "원더맨(Wonderman)"이라 불리며 18, 19세기 유럽의 궁정을 놀라게 한 "기적적인" 신사였던 것이다. 그의 목표는 프랑스 대혁명을 예방하고, 전제 군주제로부터 공화국 형태로 순탄한 이전을 실현하고, 유럽 합중국을 수립하고, 모든 이의 심장 속에 있는 신적 주체의 세 줄기 불꽃으로서 "백합의 문장(紋章 fleur-de-lis)"을 모시려는 것이었다.
다이아몬드 속의 결함을 제거하고, 공중으로 사라지고, 양 손으로 동시에 똑같은 싯귀절을 써내려 가고, 많은 언어를 구사하고, 어떤 주제에도 능통하고, 어떠한 역사라도 눈으로 목격한 듯 재연하는 등, 그의 초인성(adeptship) 때문에 유럽의 궁정에서 두루 흠모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는 기대했던 반응을 확보하지 못했다. 왕족들은 그로부터 재미를 얻으려고는 했어도 그들의 권력을 포기하고 민주적 변화의 바람을 따라 가라는 설득은 쉽사리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그들과 시기하던 재상들은 그의 조언을 무시했고, 프랑스 대혁명이 뒤따르게 되었다.
유럽을 통일하려는 마지막 시도로, 생 제르망은 나폴레옹을 지원했으나, 그는 대사의 능력을 악용하다 무너져 버렸다. 그 시대가 받을 징벌을 비켜가게 할 기회는 그처럼 지나가 버리고, 생 제르망은 다시 한번 카르마적 상황으로부터 물러나야만 했다. 이 일화 안에서 중재자(the mediator)로서 그 모습이 명확하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적, 실현된 예언들과 더불어 생 제르망은 여전히 외면당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돌릴 것인가?
그 승천대사는 유럽의 후원을 포기했고, 그 대신 자신이 오랜 세기 동안 계속 눈여겨 보아온 신세계로 돌렸다. 프란시스 베이컨으로서 조차도 그는 아메리카를 그의 마지막 희망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는 암호문에서 이렇게 썼다 : "나는 모든 것을 미래에 그리고 황혼의 문 쪽으로 멀리 떨어진 한 나라에 걸었다. ... 나는 나의 계획 안에 미래를 간직하고, 나의 시대와 사람들에게서가 아니고 아주 먼 곳의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우리 시대가 아니고 두 번째 도래할 배움의 황금 시대에서 나의 보상을 구하리라." (85)
그 대륙을 발견했고 식민 사업을 장려했던 그는 또한 새로운 국가의 합당한 토대를 확실히 해야 했다. 생 제르망은 독립 전쟁 내내 그리고 벨리 포즈(Valley Forge)에서의 겨울동안 조지 워싱턴 곁에 서 있었다. 프리메이슨 단체를 세웠던 그의 과거 노력은 많은 독립전쟁의 주역들로 발화되었다. 워싱턴 장군,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그리고 독립선언에 서명했던 66인 중 53인이 메이슨의 일원이었다.(86) 메이슨의 원칙들이야말로 그들을 새로운 국가의 수립으로 인도했던 것이다.
더우기, 생 제르망은 독립선언에의 서명을 종용했고, 독립헌법의 제정과 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워싱턴의 임명을 지휘했다. 아메리카는 기회의 땅으로 확보되었고 생 제르망은 그 국민들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일에 헌신하였다.
20세기로 들어서 대사는 카르마의 주님들 앞으로 가서 그가 후원했던 본래의 576명을 위한 자유의 대의와 그 모임을 모든 시대의 "빛을 가진 이들" - 즉 사나트 쿠마라와 함께 왔던 원래의 "불꽃 수호자들 (Keepers of the Flame)" 뿐만 아니라, 영적 은사와 은총 위에서 지구의 여러 시대를 거치며 진화하고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까지 포괄하도록 확대할 수 있기를 탄원하였다.
그러나 수 십년이 흘러 인류의 카르마가 되돌아 오는 비율의 증가는 "암흑 주기(Dark Cycle)"라고 알려진 것을 구체화시키게 되었다. 그것은 혼돈과 옛 밤의 때로, 그 징후는 계시록에서 예언되었고, "네 말의 기수(四馬人 the Four Horsemen)"의 말굽 소리는 대지에 두루 들려온다.
그의 백성이 "샘 아저씨(엉클 샘 Uncle Sam)"라 부르는 예언자 사무엘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는 이제 선택된 자들에게 그의 예언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는 심장 안에 그 이름 "아이엠 댓 아이엠 I AM THAT I AM"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자들인 "아엠의 민족(I AM Race)"이 "주의 말씀에 귀를 돌리지도 않았고, 율법(the Law)을 온전히 성취하지도 못했다"고 경고해 왔다.
그런 고로 대사는 말한다 : 이 국민들 중에 혹자는 사나트 쿠마라의 직전 입문자(initiate)가 되어야만 하니, 그것은 언제나 속량에 대한 요구가 있어 왔기 때문이니라. 헌신자들의 내부 모임에 속한 자들, 백성의 깃발로서 선봉에 나와 서있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섬겨야 할 이, 최후의 만찬 때 성찬의 약속으로 하느님의 모든 아들과 딸들에게 말씀의 내면화를 명하신 분인 그리스도의 깃발을 올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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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그 말은 유순하다. 그러나 가까운 입문자들에게 아주 세심하게 다가왔던 그리스도의 법과 그의 가르침들이 오늘날 완전하게 알려져 있지 않고, 거룩한 백성들로부터도 멀어져 있는 것은 진정 불행한 일이다. 그런고로, 그리스도께 순종함은 이 시대의 도전 즉, 그 그리스도의 인격(the Person)을 발견하고, 그 길과 가르침을 찾아내는 것이 된다. 너희는 우리의 노력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잃어버렸던 말씀과 잃어버린 가르침들을 받았다.... 그 결과 너희는 그 말씀과 가르침 안에서 강건해졌고 보호받게 되었다. 그리고 너희 중 일부는 그 생을 마감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충만한 부활을 체험했다.... 그리하여 그 가르침과 도의 증거는 그 길이 각자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순수한 인격(Person)이 되어) "아앰 프레젠스(I AM Presence)"의 가슴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때까지 더 높이 더 높이 지고한 의식으로 순차적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87)
오늘날 지구로 돌아오는 카르마의 싸이클이 네 가지 거룩한 자유 마저도 위협할 정도로 고조되자, 형제단은 그리스도의 잃어버렸던 가르침이 완전히 피어날 때까지 그 가르침을 추구할 수 있는 장소를 아메리카의 록키 산맥에 마련해 두었다.
생 제르망은 1983년 그 점에 대해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 "너희는 내가 지금은 사하라 사막인 그곳에서 다스렸던 그 황금시대의 마지막 때와 유사한 시기에 이르렀다. 나의 가족은 그 당시보다도 훨씬 더 커졌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사랑하는 너희 모두를 나의 가족으로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우리 가족은 황금빛 에테르의 도시로 인도되었다. 이 시간 우리는 너희를 북쪽 산들의 높은 곳으로 불러 모았노라."(88)
그것은 로얄 테톤 리트릿의 전초로서 "로얄 테톤 랜취 (the Royal Teton Ranch)"라고 부른다. 1984년 5월 31일 사랑하는 예수께서는 남서부 몬타나의 "예비된 장소(Place Prepared)"인 "이너 리트릿(Inner Retreat내면의 은거지)"으로 로드 마이트레야께서 (레무리아가 침몰하기 바로 직전에 물질 옥타브로부터 철수되었던) 그의 신비 학교(Mystery School)을 다시 열고자 오셨음을 발표했다.
아쿠아리안 시대의 하이어락인 우리의 사랑하는 생 제르망과 그의 양 불꽃(twin flame)인, 승천 여대사 포셔(the Ascended Lady Master Portia)가 우리에게 부여한 새로운 기회를 가지고 우리의 사랑하는 테라(Terra 지구)와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어낼 수 있는가 보도록 하자.
그가 가져온 예언과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받기에 우리 자신이 합당해 지도록 공부하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우리가 옛적에 알았던 바이올릿 불꽃을 부르는 기원(invocation)들과 "변환을 위한 일곱 번째 광선의 의례들(Seventh Ray rituals of transmutation)"을 사용하여 개인과 혹성의 카르마를 이겨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하자. 그리하여 생 제르망의 위대한 황금 시대의 예언이 성취될 수 있게 하자.
불꽃의 수호자들은 이 시대에 승리하기로 맹세했다. 그들은 승리할 것이다!
=== < 예수의 잃어버린 가르침> 제 3권 11장 <의식의 거울> 中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