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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공학, 완전한 조작 | Truth in Science 2007.02.18 22:10
phoenixhttp://blog.daum.net/truthinlight/2930880
[익명의 의학 전문가와의 인터뷰 내용—역자주]
Question : “유전 공학과 함께 마침내 모든 가능성이 열린 시대가 도래했다.”—이것이 요근래 언론들이 대중에게 남긴 메세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전자가 조작된 것, 예를 들자면, 오랫동안 상하지 않고 달콤한 맛을 유지하는 토마토와 같은 이런 식품들이 왜 그렇게 위험하다는 거죠?
Answer : 우선 위험의 정도를 몇가지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토마토가 쉽게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신선도를 유지시켜 줄 수 있는 유전자를 주입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덜합니다. 그러한 유전자의 경우 인간의 신체에 알레르기 반응같은 것을 불러일으킬 수 있긴 하지만, 위험의 정도는 단지 그 정도 수준에서 머뭅니다. 하지만 보다 위험한 것은 인간의 유전자가 주입되어지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자면, 인간 성장 호르몬과 관련된 유전자와 같은 것으로, 이는 이미 돼지와 같은 가축을 사육하는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Q : 왜 인간 성장 호르몬을 주입하는 게 위험하다는 겁니까? 돼지가 보다 빨리 자라면 안됩니까?
A : 왜냐하면 선단 비대증(acromegaly)과 같은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이 증세는 손가락, 코, 턱과 같은 부위가 비대하게 커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 병을 앓았던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에크나톤[Echnaton](아크헤나톤[Akhnaton])처럼 보이게 될 것입니다.
Q : 그렇다면, 토마토나 다른 육류를 통해 인체 내부로 스며들게 되는 유전자가 인체의 특정 부위를 자라도록 만드는 기형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A : 그렇습니다. 위험의 세번째 단계라면, 특정의 유전자를 토마토의 게놈[genome] 상에 고의적으로 주입했을 때, 그것이 토마토 안에서는 비록 아무런 활성화도 갖지 못할지라도, 그 토마토를 섭취했을 경우, 인체의 두뇌에는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몇가지 두뇌 유전자가 그 예에 해당할 것입니다.
Q : 오직 인체 내부에서만 활성화될 수 있는, 동반되는 유전자를 주입하는 것이 오늘날 가능합니까?
A : 유전자 공학상으로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이 유전자가 토마토 내부에서는 활성화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인데, 이 역할을 하는 또 다른 동반된 유전자를 주입하게 되면 가능해 집니다.
Q : 두뇌 유전자가 토마토 상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데, 도대체 이 유전자를 왜 집어 넣는 것입니까?
A : 그렇게 함을 통해서 사람들이 이 유전자를 흡수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죠. 그러고 나면, 이 유전자는 인간 두뇌상에 있는, 이에 상응하는 수용기제를 통하여 당사자의 DNA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한 두뇌 유전자의 최종 귀착지는 우선 두뇌의 모든 근원적인 부위들이 될 것이고, 특히 대뇌 변연계(大腦邊緣系)[Limbic System]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톤 : 대뇌변연계는 뇌의 해마상 융기[Hippocampus], 편도선[amygdala], 톱니모양의 뇌회(腦回)[dentate gyrus], 띠모양의 뇌회[cingulated gyrus], 궁상 뇌회[gyrus fornicatus], 원시피질[archicortex], 그리고 이들간의 연결점들, 시상하부[hypothalamus]와의 연계점들, 격막 부위[septal area], 그리고 중뇌 외피[mesencephalic tegmentum] 부위를 포함하는 뇌구조물들의 그룹을 가리킨다. 이 대뇌변연계는 동기화된 행위 및 자극에 의해 활성화되고, 내분비계 및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미친다.]
Q : 그렇다면 정말 괘씸한 일이군요. 토마토에 주입된 유전자가 토마토를 자라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조작하기 위함이라니.. 지금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입니까?
A : 그렇습니다. 분노할만한 일이죠. 이러한 작업들은 잘 통제된 채로, 아주 의도적인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는데, 바로 새로운 유형의 인간 세대를 만들어 내기 위함입니다. 이 새로운 유형의 인간들은 이 지구상의 사탄들이 꾀하는 계획에 잘 부합하는 인류가 되는 것입니다.
Q : 그렇다면, 바로 과학자들은 겉으로는 멋진 채소류를 만들어 내는 척하지만, 사실상은 그러한 계획을 수행하는 내부적 공모자들인 셈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A :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과학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상위층 과학자들은 그러합니다. 물론, 이처럼 계획된 두뇌 조작의 이유들은 유전 공학에 입각해서 논리적인 방식으로 설명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 인간들이 가진 어떤 성격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 본 바 있듯이, 침울한 감정을 야기하도록 만든다. 또 사람들이 갖는 어떤 감정들은 파괴적인 양상으로 표출되기도 하는데, 만약 인류의 성격이 보다 개선되어질 수 있다면, 이러한 감정들이 사전에 차단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인간 유형은 지구상에서 더이상 바람직한 형태라고 볼 수 없다. 오직 감정적으로 중립적인 성향을 띤 인간들, 또는 그보다 나은 경우라면 아예 어떤 감정도 갖지 않는 유형의 인간형이 바람직할 것이다.
Q : 그럼 외부적 두뇌 유전자의 목적이란, 더이상 어떠한 “교란적인” 감정상태를 갖지 않는 인간유형을 생산해내는 것이란 말입니까?
A : 맞습니다.
Q : 하지만 어떻게 무감정한 인간을 낳는 그런 유전자를 만들어낼 수가 있습니까?
A : 우선 당신이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이미 3000가지에 이르는 두뇌 유전자들의 경우 그러한 형태의 유전자 생산이 완료되었다는 것입니다. DNA기제가 이러한 유전자를 만들어 내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유전자의 알칼리 구조를 해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이건 오로지 단순작업일 뿐입니다. 수십억가지의 유전자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Q : 그럼 현재 기술로, 대뇌 변연계에 들어간 두뇌 유전자들이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차단할 수 있습니까?
A : 제한된 수준에서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만약 군인 형태의 인간을 생산해 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감정적, 동정적인 성격들을 제거할 필요가 있고, 그런 연후에, 이를 대신할, 분노, 공격욕구와 같은 폭력 성향을 활성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Q : 이런 계획을 꾸미는 자들은 왜 그렇게 인간 감정에 대해 부정적인 것입니까?
A : 왜냐하면 감정이란 이해심과 동정심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으로서, 감정이 있어야 이웃에 대한 사랑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인식이라는 것도, 우리가 스스로를 감정적으로 느끼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 말하자면, 영혼과 이성적인 마음 사이의 교신은 오직 감정의 세계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감정의 세계가 차단되어질 때, 나는 무감정적이 되고, 냉혹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후회라는 감정을 더이상 느낄 수 없게 되고, 그 경우 내가 범한 잘못을 청산할 수도 없게 되고 맙니다. 또한 나는 더이상 신적인 것을 소망하는 감정도 가질 수 없게 되는데, 왜냐하면 나는 모든 것을 내 이성적인 사고와 내가 가진 지성을 통해서 이해하고 처리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이, 이미 내 머리 속에 팽배해져 버린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Q : 만약 내가 더이상 후회할 수도 없게 되고, 내가 지은 잘못들을 청산할 수도 없게 된다면, 지구상에서의 삶이란 내게 더이상 의미없는 것이 되진 않을까요? 또 다른 한편, 나는 점점 더 많은 잘못들을 쌓아가게 되진 않겠습니까?
A : 그렇습니다. 바로 그러한 흐름이 불가피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모든 것을 잘하고 있다는 주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기에, 내게 벌어지는 일들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나는 여전히 내가 취하는 잘못된 태도, 내가 행하는 잘못된 행동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것입니다. “같은 것은 같은 것을 끌어당긴다”는 원칙에 따라, 내가 조작된 유전자로 인해 자석처럼 이끌려서 그러한 행위를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가 행하는 일들에 대해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편으로, 나의 지구상에서의 삶이 점점 더 식물형 인간의 삶과 같은 형태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나는 끊임없이 악업을 나 자신에게 더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용 : “누군가 오늘날 끔찍히도 무서운 장면을 보고 싶어 한다면, 진실로 어떠한 상상력도 요구되지 않는다. 그냥 아무 수의학 관련 서적이나 한 권 집어 들어라. 그리고 책을 읽어 나가면서, 거기 나오는 모든 ‘동물’이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더이상 상상의 세계에서의 일들이 아니라, 그저 일상사들일 뿐이다.” 헤닝 바이어[Henning Beier] 교수, 아헨[Aachen] 대학교. 연방 약제 분과 윤리학 중앙 위원회 위원. (독일 연방 의사 협회.)
Q : (외부적 프로그램이 들어 있는) 유전자가 주입되어졌을 경우, 나는 단지 더 많은 잘못을 범하게 될 따름입니까? 그런 상태에서도 내가 저지른 잘못들을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A : 영혼에 지워진 짐은 물질적인 유전자 구조 속에도 마찬가지로 기록되어지는 것입니다. 육체상의 유전자와 영혼상의 정보들 간에는 공명관계가 존재합니다. 청산 과정은 항상 영혼수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먼저 영혼이 일정 방식으로 그러한 짐을 방출하려 할 때, 유전자 상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짐의 방출작용이 활성화됩니다. 그런 다음, 청산과정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육체에 주입되어진 외부적 유전자는 전파 방해(교신 방해) 상태 속에 있습니다. 육체적 유전자 구성 속에 그러한 유전자가 들어 있을만한 원인이 식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영혼의 짐에도 대응되지 못합니다. 영혼은 이 교신 방해 상태 속에 있는 프로그램에 닿질 못하는데, 왜냐하면 이 유전자는 다른 방식으로 진동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육체의 진동 자체도 뒤범벅이 되고 맙니다.
큰 그림을 연상해 본다면, 이 상황이 보다 분명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을 살아나가는 여정에서 저지르는 잘못들은 내 영혼과 내 유전자 상에 동시적으로 기록되어집니다. 영혼으로부터 시작하여, 나는 단계적으로 내 잘못들을 청산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 자신에게 전혀 생소한 일련의 잘못들(DNA 속에 주입된 외부 프로그램에 따른 것)은 내 영혼에게도 역시 생소합니다. 따라서 내 영혼은 청산을 위한 첫번째 단계를 활성화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 내 영혼이 이 외부 프로그램에 따른 잘못을 나 자신의 잘못으로 인식하고 부담하게 되기 전까지는, 영혼은 이 외부적 프로그램에 따른 잘못에 대응조치를 취할 수도, 이를 청산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외부적 잘못은 단지 육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도 동시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Q : 외부적 잘못을 자기자신의 잘못으로 여기고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는, 일종의 피할 수 없는 힘이 작용한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왜냐하면 오직 그 때에만 영혼이 이를 식별할 수 있고, 또 이 외부적 프로그램을 제거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말입니다.
A : 악한 의도를 가진 자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확히 이것이 그들의 목적인 것입니다. 영혼은 외부 프로그램을 통해 습득된 부담들을 우선 자기 자신이 감당하기로 결정하지 않는 이상은, 이를 청산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이 새로운 부담을 우선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이 있은 연후에야, 영혼은 청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Q : 그렇다면 한 영혼이 그러한 부담을 짊어진 채로, 영혼들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었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 곳에서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습니까?
A : 예, 가능하긴 합니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영혼은 이 부당한 부담들에 대해 저항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영혼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신이 취했던 잘못된 태도로 인해 이러한 부담을 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기 전까지는, 굉장히 힘든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 여기고, 이러한 부담을 되갚으려 할 것이며, 또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저항으로 인해, 아마도 오랜 시간동안 이 외부적 잘못을 자신이 청산하는 일을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영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바로 이 청산의 영역에서, 그러한 부담에 대한 원천적인 책임이 있는 자들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Q : 그럼, 어떤 부당함도 없다고 봐야 하나요? 내게 벌어지는 모든 것들은, 그것이 내 영혼에 대해서이건, 내 육체에 대해서이건, 나자신에게 우선 1차적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내가 유전자 조작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또는 달리 말해, 앞서 언급하신 바와 같은 그런 결과들에 내가 부지불식간에 영향받게 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도록, 나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은 없습니까?
A : 사실상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에 씌여져 있는 신성한 계율들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매일같이 부단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내적인(영적인) 길을 따라 걸어감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내 영혼의 진동 수준을 보다 높이게 되어, 외부적 유전자들이 만들어 내는 진동수준 보다 더 높은 곳에 내 영혼이 머물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 결과, 만약 최적의 상태일 경우, 외부적 유전자들은 나에게서 어떠한 ‘빈틈’도 발견하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비록 외부적 유전자들이 내 몸에 이미 주입되었다고 하더라도, 내게서 생성되는 복구효소들[repair-enzymes]이 이들을 식별해 내게 되고, 내 육체로부터 이들을 제거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3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억제 유전자들이 이 외부적 유전자들을 식별해 내고 이들을 무력화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용도 오직 당사자의 영혼이 이러한 일을 수행해 낼 수 있을만큼 충분히 강할 경우에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Q : 그렇다면, 유전자 조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은 오직 일상생활 속에서 내 영혼의 힘을 증대시킬 때에만 가능해진다는 말씀이십니까? 오직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만 위험한 유전자적 요소들이 나 자신의 DNA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막아내고, 또 이를 복구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거죠?
A : 그렇습니다. 정확합니다.
“유전 공학, 완전한 조작(Gene Engineering, The Total Manipulation)”, 기사 내용 중 일부.
크리스투스슈타트 인터내셔널[Christusstaat International]지
제 10호, 특별판, 1992년 8월호.
P.O. Box 5643, w-8700
뷜츠부르크, 독일 [Würzburg, Germany]
피닉스 저널 제 65권, “The Last Great Plague upon Man : AIDS and Related Murder Tools”, 제 2장, pp. 27-32.
http://www.phoenixarchives.com/Journals/Published.php
phoenixhttp://blog.daum.net/truthinlight/2930880
[익명의 의학 전문가와의 인터뷰 내용—역자주]
Question : “유전 공학과 함께 마침내 모든 가능성이 열린 시대가 도래했다.”—이것이 요근래 언론들이 대중에게 남긴 메세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전자가 조작된 것, 예를 들자면, 오랫동안 상하지 않고 달콤한 맛을 유지하는 토마토와 같은 이런 식품들이 왜 그렇게 위험하다는 거죠?
Answer : 우선 위험의 정도를 몇가지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토마토가 쉽게 상하지 않고 오랫동안 신선도를 유지시켜 줄 수 있는 유전자를 주입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덜합니다. 그러한 유전자의 경우 인간의 신체에 알레르기 반응같은 것을 불러일으킬 수 있긴 하지만, 위험의 정도는 단지 그 정도 수준에서 머뭅니다. 하지만 보다 위험한 것은 인간의 유전자가 주입되어지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자면, 인간 성장 호르몬과 관련된 유전자와 같은 것으로, 이는 이미 돼지와 같은 가축을 사육하는데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Q : 왜 인간 성장 호르몬을 주입하는 게 위험하다는 겁니까? 돼지가 보다 빨리 자라면 안됩니까?
A : 왜냐하면 선단 비대증(acromegaly)과 같은 증세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이 증세는 손가락, 코, 턱과 같은 부위가 비대하게 커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 병을 앓았던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에크나톤[Echnaton](아크헤나톤[Akhnaton])처럼 보이게 될 것입니다.
Q : 그렇다면, 토마토나 다른 육류를 통해 인체 내부로 스며들게 되는 유전자가 인체의 특정 부위를 자라도록 만드는 기형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A : 그렇습니다. 위험의 세번째 단계라면, 특정의 유전자를 토마토의 게놈[genome] 상에 고의적으로 주입했을 때, 그것이 토마토 안에서는 비록 아무런 활성화도 갖지 못할지라도, 그 토마토를 섭취했을 경우, 인체의 두뇌에는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몇가지 두뇌 유전자가 그 예에 해당할 것입니다.
Q : 오직 인체 내부에서만 활성화될 수 있는, 동반되는 유전자를 주입하는 것이 오늘날 가능합니까?
A : 유전자 공학상으로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이 유전자가 토마토 내부에서는 활성화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인데, 이 역할을 하는 또 다른 동반된 유전자를 주입하게 되면 가능해 집니다.
Q : 두뇌 유전자가 토마토 상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데, 도대체 이 유전자를 왜 집어 넣는 것입니까?
A : 그렇게 함을 통해서 사람들이 이 유전자를 흡수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죠. 그러고 나면, 이 유전자는 인간 두뇌상에 있는, 이에 상응하는 수용기제를 통하여 당사자의 DNA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한 두뇌 유전자의 최종 귀착지는 우선 두뇌의 모든 근원적인 부위들이 될 것이고, 특히 대뇌 변연계(大腦邊緣系)[Limbic System]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톤 : 대뇌변연계는 뇌의 해마상 융기[Hippocampus], 편도선[amygdala], 톱니모양의 뇌회(腦回)[dentate gyrus], 띠모양의 뇌회[cingulated gyrus], 궁상 뇌회[gyrus fornicatus], 원시피질[archicortex], 그리고 이들간의 연결점들, 시상하부[hypothalamus]와의 연계점들, 격막 부위[septal area], 그리고 중뇌 외피[mesencephalic tegmentum] 부위를 포함하는 뇌구조물들의 그룹을 가리킨다. 이 대뇌변연계는 동기화된 행위 및 자극에 의해 활성화되고, 내분비계 및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미친다.]
Q : 그렇다면 정말 괘씸한 일이군요. 토마토에 주입된 유전자가 토마토를 자라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조작하기 위함이라니.. 지금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입니까?
A : 그렇습니다. 분노할만한 일이죠. 이러한 작업들은 잘 통제된 채로, 아주 의도적인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는데, 바로 새로운 유형의 인간 세대를 만들어 내기 위함입니다. 이 새로운 유형의 인간들은 이 지구상의 사탄들이 꾀하는 계획에 잘 부합하는 인류가 되는 것입니다.
Q : 그렇다면, 바로 과학자들은 겉으로는 멋진 채소류를 만들어 내는 척하지만, 사실상은 그러한 계획을 수행하는 내부적 공모자들인 셈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A :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과학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상위층 과학자들은 그러합니다. 물론, 이처럼 계획된 두뇌 조작의 이유들은 유전 공학에 입각해서 논리적인 방식으로 설명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 인간들이 가진 어떤 성격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 본 바 있듯이, 침울한 감정을 야기하도록 만든다. 또 사람들이 갖는 어떤 감정들은 파괴적인 양상으로 표출되기도 하는데, 만약 인류의 성격이 보다 개선되어질 수 있다면, 이러한 감정들이 사전에 차단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인간 유형은 지구상에서 더이상 바람직한 형태라고 볼 수 없다. 오직 감정적으로 중립적인 성향을 띤 인간들, 또는 그보다 나은 경우라면 아예 어떤 감정도 갖지 않는 유형의 인간형이 바람직할 것이다.
Q : 그럼 외부적 두뇌 유전자의 목적이란, 더이상 어떠한 “교란적인” 감정상태를 갖지 않는 인간유형을 생산해내는 것이란 말입니까?
A : 맞습니다.
Q : 하지만 어떻게 무감정한 인간을 낳는 그런 유전자를 만들어낼 수가 있습니까?
A : 우선 당신이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이미 3000가지에 이르는 두뇌 유전자들의 경우 그러한 형태의 유전자 생산이 완료되었다는 것입니다. DNA기제가 이러한 유전자를 만들어 내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유전자의 알칼리 구조를 해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이건 오로지 단순작업일 뿐입니다. 수십억가지의 유전자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Q : 그럼 현재 기술로, 대뇌 변연계에 들어간 두뇌 유전자들이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차단할 수 있습니까?
A : 제한된 수준에서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만약 군인 형태의 인간을 생산해 내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감정적, 동정적인 성격들을 제거할 필요가 있고, 그런 연후에, 이를 대신할, 분노, 공격욕구와 같은 폭력 성향을 활성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Q : 이런 계획을 꾸미는 자들은 왜 그렇게 인간 감정에 대해 부정적인 것입니까?
A : 왜냐하면 감정이란 이해심과 동정심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으로서, 감정이 있어야 이웃에 대한 사랑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자기인식이라는 것도, 우리가 스스로를 감정적으로 느끼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 말하자면, 영혼과 이성적인 마음 사이의 교신은 오직 감정의 세계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감정의 세계가 차단되어질 때, 나는 무감정적이 되고, 냉혹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후회라는 감정을 더이상 느낄 수 없게 되고, 그 경우 내가 범한 잘못을 청산할 수도 없게 되고 맙니다. 또한 나는 더이상 신적인 것을 소망하는 감정도 가질 수 없게 되는데, 왜냐하면 나는 모든 것을 내 이성적인 사고와 내가 가진 지성을 통해서 이해하고 처리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이, 이미 내 머리 속에 팽배해져 버린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Q : 만약 내가 더이상 후회할 수도 없게 되고, 내가 지은 잘못들을 청산할 수도 없게 된다면, 지구상에서의 삶이란 내게 더이상 의미없는 것이 되진 않을까요? 또 다른 한편, 나는 점점 더 많은 잘못들을 쌓아가게 되진 않겠습니까?
A : 그렇습니다. 바로 그러한 흐름이 불가피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모든 것을 잘하고 있다는 주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기에, 내게 벌어지는 일들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나는 여전히 내가 취하는 잘못된 태도, 내가 행하는 잘못된 행동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는 것입니다. “같은 것은 같은 것을 끌어당긴다”는 원칙에 따라, 내가 조작된 유전자로 인해 자석처럼 이끌려서 그러한 행위를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가 행하는 일들에 대해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편으로, 나의 지구상에서의 삶이 점점 더 식물형 인간의 삶과 같은 형태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나는 끊임없이 악업을 나 자신에게 더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용 : “누군가 오늘날 끔찍히도 무서운 장면을 보고 싶어 한다면, 진실로 어떠한 상상력도 요구되지 않는다. 그냥 아무 수의학 관련 서적이나 한 권 집어 들어라. 그리고 책을 읽어 나가면서, 거기 나오는 모든 ‘동물’이라는 단어를 ‘사람’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더이상 상상의 세계에서의 일들이 아니라, 그저 일상사들일 뿐이다.” 헤닝 바이어[Henning Beier] 교수, 아헨[Aachen] 대학교. 연방 약제 분과 윤리학 중앙 위원회 위원. (독일 연방 의사 협회.)
Q : (외부적 프로그램이 들어 있는) 유전자가 주입되어졌을 경우, 나는 단지 더 많은 잘못을 범하게 될 따름입니까? 그런 상태에서도 내가 저지른 잘못들을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A : 영혼에 지워진 짐은 물질적인 유전자 구조 속에도 마찬가지로 기록되어지는 것입니다. 육체상의 유전자와 영혼상의 정보들 간에는 공명관계가 존재합니다. 청산 과정은 항상 영혼수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먼저 영혼이 일정 방식으로 그러한 짐을 방출하려 할 때, 유전자 상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짐의 방출작용이 활성화됩니다. 그런 다음, 청산과정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육체에 주입되어진 외부적 유전자는 전파 방해(교신 방해) 상태 속에 있습니다. 육체적 유전자 구성 속에 그러한 유전자가 들어 있을만한 원인이 식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영혼의 짐에도 대응되지 못합니다. 영혼은 이 교신 방해 상태 속에 있는 프로그램에 닿질 못하는데, 왜냐하면 이 유전자는 다른 방식으로 진동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로 육체의 진동 자체도 뒤범벅이 되고 맙니다.
큰 그림을 연상해 본다면, 이 상황이 보다 분명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을 살아나가는 여정에서 저지르는 잘못들은 내 영혼과 내 유전자 상에 동시적으로 기록되어집니다. 영혼으로부터 시작하여, 나는 단계적으로 내 잘못들을 청산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 자신에게 전혀 생소한 일련의 잘못들(DNA 속에 주입된 외부 프로그램에 따른 것)은 내 영혼에게도 역시 생소합니다. 따라서 내 영혼은 청산을 위한 첫번째 단계를 활성화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그 결과, 내 영혼이 이 외부 프로그램에 따른 잘못을 나 자신의 잘못으로 인식하고 부담하게 되기 전까지는, 영혼은 이 외부적 프로그램에 따른 잘못에 대응조치를 취할 수도, 이를 청산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외부적 잘못은 단지 육체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도 동시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Q : 외부적 잘못을 자기자신의 잘못으로 여기고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는, 일종의 피할 수 없는 힘이 작용한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왜냐하면 오직 그 때에만 영혼이 이를 식별할 수 있고, 또 이 외부적 프로그램을 제거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말입니다.
A : 악한 의도를 가진 자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확히 이것이 그들의 목적인 것입니다. 영혼은 외부 프로그램을 통해 습득된 부담들을 우선 자기 자신이 감당하기로 결정하지 않는 이상은, 이를 청산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이 새로운 부담을 우선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이 있은 연후에야, 영혼은 청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Q : 그렇다면 한 영혼이 그러한 부담을 짊어진 채로, 영혼들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었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 곳에서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습니까?
A : 예, 가능하긴 합니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영혼은 이 부당한 부담들에 대해 저항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영혼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신이 취했던 잘못된 태도로 인해 이러한 부담을 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기 전까지는, 굉장히 힘든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 여기고, 이러한 부담을 되갚으려 할 것이며, 또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저항으로 인해, 아마도 오랜 시간동안 이 외부적 잘못을 자신이 청산하는 일을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영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바로 이 청산의 영역에서, 그러한 부담에 대한 원천적인 책임이 있는 자들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Q : 그럼, 어떤 부당함도 없다고 봐야 하나요? 내게 벌어지는 모든 것들은, 그것이 내 영혼에 대해서이건, 내 육체에 대해서이건, 나자신에게 우선 1차적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하지만, 내가 유전자 조작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또는 달리 말해, 앞서 언급하신 바와 같은 그런 결과들에 내가 부지불식간에 영향받게 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도록, 나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 같은 것은 없습니까?
A : 사실상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산상수훈[Sermon on the Mount]에 씌여져 있는 신성한 계율들을 생활화할 수 있도록 매일같이 부단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내적인(영적인) 길을 따라 걸어감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내 영혼의 진동 수준을 보다 높이게 되어, 외부적 유전자들이 만들어 내는 진동수준 보다 더 높은 곳에 내 영혼이 머물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 결과, 만약 최적의 상태일 경우, 외부적 유전자들은 나에게서 어떠한 ‘빈틈’도 발견하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비록 외부적 유전자들이 내 몸에 이미 주입되었다고 하더라도, 내게서 생성되는 복구효소들[repair-enzymes]이 이들을 식별해 내게 되고, 내 육체로부터 이들을 제거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3의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억제 유전자들이 이 외부적 유전자들을 식별해 내고 이들을 무력화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용도 오직 당사자의 영혼이 이러한 일을 수행해 낼 수 있을만큼 충분히 강할 경우에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Q : 그렇다면, 유전자 조작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은 오직 일상생활 속에서 내 영혼의 힘을 증대시킬 때에만 가능해진다는 말씀이십니까? 오직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만 위험한 유전자적 요소들이 나 자신의 DNA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막아내고, 또 이를 복구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거죠?
A : 그렇습니다. 정확합니다.
“유전 공학, 완전한 조작(Gene Engineering, The Total Manipulation)”, 기사 내용 중 일부.
크리스투스슈타트 인터내셔널[Christusstaat International]지
제 10호, 특별판, 1992년 8월호.
P.O. Box 5643, w-8700
뷜츠부르크, 독일 [Würzburg, Germany]
피닉스 저널 제 65권, “The Last Great Plague upon Man : AIDS and Related Murder Tools”, 제 2장, pp. 27-32.
http://www.phoenixarchives.com/Journals/Published.php
2007.03.13 19:20:52 (*.234.27.147)
지천명(知天命)
지천명(知天命)
나이 오십에 이르러서야 삶을 조금 알겠다.
지천명(知天命)이란 말을 실감하겠다.
사십줄을 달릴 때는 불혹(不惑)이란 말이 참 이상야릇했었다.
전(前)보다 사물에 혹(惑)함이 더 심했기에 말이다.
'불혹'은 혹하지 말라고 남긴 경구가 아닐까 싶다.
오십은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생(生)의 허리가 꺾인 걸 느낀다.
몸도 마음도 쉬이 지쳐간다.
다행인 것은 의지가 죽지 않고 더 강해지는 것이다.
내 힘이 줄어들면서부터 가치의 기준이 사물에서 인간으로 옮겨졌고,
비로소 36.5℃의 체온을 되찾았다.
신비로운 일이다.
나는 오장육부에 붙은 얼까지 너무 찼다.
성격만 불덩이라서 늘 문제였다.
그 부조화가 알게 모르게 나와 가족과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이제 사람이 보인다.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책을 읽을 때도,
그림을 볼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과거를 회상할 때도,
사람의 향기가 느껴진다.
뒤늦은 후회로 포장된 이 은총의 선물을 품에 꼭 안고 싶다.
나는 지금 또 다른 생의 출발점을 향해 가고 있다.
지천명(知天命)
나이 오십에 이르러서야 삶을 조금 알겠다.
지천명(知天命)이란 말을 실감하겠다.
사십줄을 달릴 때는 불혹(不惑)이란 말이 참 이상야릇했었다.
전(前)보다 사물에 혹(惑)함이 더 심했기에 말이다.
'불혹'은 혹하지 말라고 남긴 경구가 아닐까 싶다.
오십은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생(生)의 허리가 꺾인 걸 느낀다.
몸도 마음도 쉬이 지쳐간다.
다행인 것은 의지가 죽지 않고 더 강해지는 것이다.
내 힘이 줄어들면서부터 가치의 기준이 사물에서 인간으로 옮겨졌고,
비로소 36.5℃의 체온을 되찾았다.
신비로운 일이다.
나는 오장육부에 붙은 얼까지 너무 찼다.
성격만 불덩이라서 늘 문제였다.
그 부조화가 알게 모르게 나와 가족과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이제 사람이 보인다.
걸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책을 읽을 때도,
그림을 볼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과거를 회상할 때도,
사람의 향기가 느껴진다.
뒤늦은 후회로 포장된 이 은총의 선물을 품에 꼭 안고 싶다.
나는 지금 또 다른 생의 출발점을 향해 가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진정으로 건강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몸과 마음 사이의 관계는 너무나도 긴밀해서 어느 하나가 고장 나면 전체가 그 고통을 당한다. 장미꽃을 예로 들어보자. 인간의 몸이 그 안의 마음이나 영혼을 드러내듯이 장미꽃의 빛깔은 향기를 대변한다. 종이로 만든 조화가 살아 있는 꽃을 충분히 대신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화에는 꽃의 본질을 이루는 향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 역시 본능적으로 단순히 몸만 튼튼한 사람보다는 순수한 마음과 고상한 성품을 지닌 사람을 존경한다. 몸과 영혼은 둘 다 꼭 필요한 것임에 분명하지만, 몸보다는 영혼이 훨씬 중요하다. 불순한 성품의 소유자는 그 누구도 진정으로 건강하다고 평가받을 수 없다. 병든 마음을 담은 몸은 병든 것일 뿐이다. 따라서 순수한 성품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건강의 기초라는 결론이 나온다. 모든 사악한 생각과 정념은 병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지 않는가.
그렇게 볼 때 우리는 건강한 내장, 좋은 치아 눈 귀, 오물 없는 코, 땀을 충분히 발산하면서도 나쁜 냄새를 전혀 풍기지 않는 피부, 역시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 입, 각각의 의무를 적절히 수행하는 손발, 지나치게 뚱뚱하거나 여위지 않은 몸매, 마음과 감각에 대한 지속적인 통제력 등을 모두 갖춘 사람을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한 건강을 획득하기란 무척 어렵다. 일단 그것을 획득했다고 하더라도 지키기는 더욱 어렵다. 우리가 진정으로 건강하지 못한 중요한 이유는 건강하지 않은 부모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저명한 작가의 말에 따르면, 부모가 완벽한 건강을 지니고 있다면 그 자식들은 모든 점에서 부모보다 우수하다고 한다.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죽음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두려움은 우리가 건강한 상태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알려준다. 완벽한 건강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다.
우리가 받은 최상의 선물
그런데 왜 우리는 건강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고 건강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일까? 우리의 평소 행동은 건강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만약 우리가 사치와 쾌락을 한껏 누리기 위해서 혹은 단지 우리의 몸을 자랑하려는 목적에서만 건강을 추구한다면, 차라리 혼탁한 피와 비만 등으로 더럽혀진 몸을 갖는 게 나으리라.
모든 종교는 인간의 몸을 신이 거주하는 곳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의 몸은 신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기 위해서 활용한다는 조건으로 주어졌다. 우리의 몸을 청결하게 하고 안팎으로 흠없이 유지함으로써 때가 오면 몸을 주신 신에게 순전하게 돌려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가 그 기간을 칭찬할 만한 행위로 채운다면 신은 보상으로 우리를 불멸의 상속자로 삼을 것이다.
모든 피조물의 몸은 보고 듣고 냄새 맡을 수 있는 능력과 감각을 똑같이 선물 받았지만 그 중에서 인간의 몸이 으뜸이다. 그래서 인간의 몸은 ‘신타마니’, 곧 최고의 것이라고 불리지 않던가. 오직 인간만이 이해력과 지식을 가지고 신을 경배할 수 있다. 지식 없이 신에게 헌신할 때 진정한 구원이 있을 수 없고, 구원이 없는 곳에는 진정한 행복이 있을 수 없다. 몸은, 우리가 그것이 신의 성전임을 깨닫고 신을 경배하는 데 사용할 때만 진정한 봉사의 도구가 된다. 그렇지 않다면 독보다 더 유해한 기체와 액체를 배출하는, 뼈와 살과 피로 이루어진 더러운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땀구멍과 다른 통로를 통하여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은 너무나 더러워서 만질 수도 없고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온다. 따라서 분비물을 그런 대로 청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그런 몸을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며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고 방탕한 행동을 하고 나쁜 짓을 저지르다니, 그 이상 딱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그러한 악덕을 행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깨지기 쉬운 틀을 보전하려고 전전긍긍한다는 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가장 유용하고 훌륭한 것일수록 그에 상응하는 해독을 품고 있다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몸에 관한 실상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그 진정한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태양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우리는 그것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들을 재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왕은 신하에게 무한히 자애로울 수 있지만 엄청난 해악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몸은 훌륭한 하인임이 분명하지만, 거꾸로 몸이 주인이 되면 그 사악한 권력은 한이 없다.
진정한 건강의 열쇠
우리의 영혼과 사탄은 우리 몸을 통제하기 위해 내부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영혼이 지배력을 획득하면 몸은 가장 강력한 선의 도구가 된다. 하지만 그러한 싸움에서 악마가 승리한다면 몸은 악의 온상이 되고 만다. 부패한 음식으로 끊임없이 채워지고 더러운 냄새를 발산한다. 손발은 무가치한 행위에 점령당하고, 혀는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거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눈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귀는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고, 코는 맡지 말아야 할 것을 맡는 데 몰두한다. 이처럼 악의 노예가 된 몸에는 지옥이 어울릴 것이다. 그 누구도 지옥을 천국으로 오인하지 않는데, 스스로 지옥보다 더 타락시킨 우리의 몸을 천국처럼 여기다니 이상한 일이 아닌가! 이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의 허영은 얼마나 끔찍하고 우리의 자만은 얼마나 딱한가!
완벽한 건강은 오직 신의 법칙에 따라 살고 사탄의 권세에 반항할 때만 얻어질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진정한 건강 없이는 불가능하고, 진정한 건강은 미각의 엄격한 통제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각을 통제하고 나면 모든 다른 감각들은 자동적으로 통제된다. 그리고 자신의 감각을 통제한 사람은 진정으로 전 세계를 통제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신의 일부가 된다.
라마야나(산스크리트어로 쓰인 고대 인도의 서사시)를 읽는다고 해서 라마를 알 수 없고, 지타를 읽는다고 해서 크리슈나를 알 수 없다. 코란을 읽는다고 해서 알라를, 성서를 읽는다고 해서 예수를 알 수 없다. 그들을 진정으로 아는 유일한 방법은 순수하고 고상한 성품을 닦는 것이다. 성품이란 덕행에 기초하고, 덕행은 진실에 뿌리를 둔다. 그러므로 진실은 모든 훌륭하고 위대한 것들의 기초이자 근원이다. 진실과 정의의 이상을 두려움 없이 단호하게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행복의 열쇠인 동시에 진정한 건강의 열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