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빛의 존재가 당신에게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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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정리 및 글 : 유영일
가끔은 생각하게 된다. 혼곤하게 잠에 빠진 세상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어쩌다 한 번씩은 하늘에서 양치기를 내려보내어, “늑대다! 늑대가 왔다!”라고 외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예수도 그런 양치기였고, 석가도 노자도 그런 양치기가 아니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양치기의 외침에 부스스 눈을 한 번 떠 보고는, “에이, 아니잖아!”하고 돌아누워 다시금 ‘세상 사랑’이라는 꿈 속에 빠져들지만, 드물게는 그래도 깨어나는 혼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
“화평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노라”는 예수의 일갈은, 잠에 취하고 꿈에 취해 있는 우리로 하여금 ‘날 선 검’으로 자기 존재를 깨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날 선 검’은 때로는 ‘이 뭐꼬?’하는 화두가 되어 잠과 꿈에 비유될 이 세상 너머의 참소식을 묻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뱃속에 ‘불씨’ 하나를 알뜰하게 키워 그로 하여금 온몸을 운행케 하면서 수천 수만 년의 세월 동안 마취되어 있었던 감각 기관들을 소리쳐 깨우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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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미국에는, 백일몽에 빠진 인류를 깨우는 새로운 스타일의 양치기가 나타났으니 ‘채널링’이 바로 그것이다. 굳이 우리 식으로 따지자면 ‘서양 무당’이라고 해야 할 사람들이 나타나, 보이지 않는 빛의 존재들의 ‘인류를 깨우는 말들’을 전해 주기 시작한 것이다. ‘세스’라는 존재의 말을 전했던 ‘제인 로버츠’는 그 대표적인 선두 주자.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무아 상태에 빠져 ‘세스’라 불리우는 한 영혼체의 말을 전하기 시작한다. 책과 녹음 테이프 등을 통해 전해진 세스의 말들은 지진이 되어 그 동안의 물질주의적인 관성과 매너리즘에 물든 가슴들을 찢어 놓았고, 성난 불길이 되어 거듭되는 삶 속에서 닳고 닳은 욕망의 찌꺼끼들을 시원하게 태워 주었다. 수많은 혼들이 그로 인해 ‘다시 태어나는’ 기쁨을 선사받은 것이다.
‘세스’가 전한 말들은 도대체 어떠한 요지를 품고 있기에, 그렇게 많은 혼들을 흔들어 놓은 것일까? 어찌하여 대부분의 뉴 에이저들은 ‘세스’라는 말만 들으면 “오, 세스!”라고 감탄사를 붙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것일까? 어떠한 자극제가 들어 있었기에, 그들은 ‘세스’로 인해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경험하게 된 것일까?
국내에도 이미 두 권의 ‘세스 북스’가 선보였지만(“세스 매트리얼”, “육체가 없지만 나는 쓴다”, 도솔 출판사, 서민수 역), 인터넷상에서 재가공된 자료들과 국내에서는 미출간된 <영혼의 영원한 가치>를 중심으로, 세스의 핵심 요점을 정리해 본다.
그 모든 것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정리 : 패티 니콜슨
1963년, 작가인 제인 로버츠는 34살, 그녀의 남편인 롭은 44살이었다. 그들은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고, 결혼한 지 9년째였다. 그들은 꿈에 대해서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었고, 서점을 들락거리며 해답을 구했지만, 자신들의 경험을 설명해 줄 적당한 책을 발견할 수 없었다.
롭의 제안에 따라 제인은 ‘위저 보드’를 통해 직접 해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위저 보드란, 트랜스 상태에서 저 세상의 소리를 직접 받아 적는 ‘점판’이라고 할 만한 것.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자신이 궁금해하던 것들을 묻고 해답을 듣는 과정에서, 그들은 놀랍게도 자기 자신을 ‘세스’라고 부르는 한 존재를 만나게 된다.
실험이 계속됨에 따라, 제인은 위저 보드를 통해 한 글자씩을 점지해 듣는 답답한 과정을 건너뛰어, 마음 속으로 말을 한꺼번에 전해듣는 능력을 얻게 된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공간 속에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 것. 1963년에 시작된 이 실험은 1966년 “당신의 초능력을 발전시키는 법”이라는 책으로 출판되기에 이른다.
1963년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제인은 세스와의 이런 만남을 계속하고, 1996년까지 모두 23권의 책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중 일곱 권은 세스가 직접 기획 구술한 것이고, 두 권은 롭이 함께 참여하여 제인이 죽은 후 출판된 것이다. 이 작업을 하면서 세스는 항상 제인을 루버트로, 롭을 조셉으로 부른다. 그것이 그들의 더 큰 자아의 이름이라는 것. 지금 세상에서 그들이 갖고 있는 정체성은, 루버트와 조셉이라는 그들의 더 큰 자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1967년 9월부터 1982년 7월까지 15년 동안, 제인은 월요일과 수요일이면 세스와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고, 롭은 1500회에 달하는 이 만남을 기록으로 남겼다. 제인은 이 기간 중에 ESP(초능력) 개발을 위한 공부 모임을 이끌기도 했다. 개인당 2.50$를 받고 화요일과 목요일에 열었던 이 모임은, 처음에는 5~12명이 참가했으나,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30~40명 수준으로 확대된다. 이 공부 모임은 제인과 롭이 집을 사서 이사를 하면서 책을 쓰는 일에만 전념하게 된 1975년까지, 8년 동안 계속된다.
제인은 세스와의 만남을 통해, 3차원의 현실에 초점이 맞추어진 우리의 의식을 전환함으로써 다른 현실들을 엿볼 수 있으며,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세상이란 더 깊은 다른 영역에서 비롯된 것임을 믿게 된다.
그녀는 또, 전통적인 용어들로 자기 경험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다차원적인 현상을 3차원의 현실 시스템에 한정짓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음을 절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3차원의 행위들은 사실 우리의 근원적인 자아에서 오는 것이며,
우리의 에너지와 생명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초점을 바꿈으로써, 우리는 3차원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다른 존재들을 만남으로써
우리의 앎을 확장할 수 있고, 그로써 다른 현실들이 진실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1) 우리의 현실을 창조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2) ‘영원한 현재’에 살라.
3) 우리는 잠재의식에 의해 좌우되는 그런 연약한 존재가 아니다.
4) 우리는 ‘창조’를 표현하고 있는 신들이다.
1982년 2월 26일, 제인은 갑상선 이상에다 심한 관절염까지 겹쳐 입원하게 된다. 세스는 제인의 병이 그녀의 개인적인 고투의 표지판이며, 롭 또한 무관하지 않다는 것, 제인의 관절염은 그들의 관계가 불완전함을 나타내는 징표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세스의 충고에 따름으로써 제인은 가끔씩 증상이 호전되기도 했지만, 여러 해를 투병한 끝에 결국은 육체의 조건에 굴복하고 만다. 1984년 9월 5일이었다. 그 이후 롭은 그들이 함께 했던 일들을 두 권의 책으로 출판하고, 그보다 앞서 나왔던 책들도 다시 새롭게 선보이기 시작한다.
이 글을 쓴 패티 니콜슨은, 70년대 초부터 세스를 읽고 공부해 왔으며, 세스의 제안에 따라 ‘우리의 현실을 창조하는’ 10주 과정의 수련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생각의 건축”, “의식적인 창조” 등의 책을 썼다. ‘영혼 훈련’의 공동 창립자이자, 그래픽 아티스트, 인터넷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세스가 속삭인 지혜의 말들
세스는 당신의 존재를 비추는 거울일 수 있다.
수천 년 전부터 되풀이 설해졌던 진리이지만
아직 육화되지 못한 채 겉돌기만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생경한 낱말들의 조합이지만
당신의 영혼은 익히 알고 있는 말일 수도 있다.
말의 뒤안에 서성거리면서
당신의 존재가 화학변화를 일으키기를 기대하고 있는,
자신의 말을 성장 촉진제로서 기꺼이 쓰임받고자 하는
빛의 존재를 마음에 그리면서,
그 속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왔는가?
지금의 내 존재가 나에게는 가장 도전적이고, 가장 마음에 듭니다. 사실 ‘나’는 수많은 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육체를 띠고 있는 나도 있고, 그렇지 않는 나도 있습니다. 육체를 갖지 않은 채 의식으로서만 존재한다고 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이 아닌 저승만을 연상하곤 하지만, 육체를 갖지 않는 의식이 한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에 한 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태양계에 하나의 별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내가 있는 곳은, 여러분이 죽은 다음에 즉각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그런 하늘 나라가 아닙니다. 나와 같은 이런 특별한 존재 상태가 되려면, 당신들은 아마도 태어나고 죽는 일을 여러 차례 겪어야만 할 겁니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없이 살고 죽는 일을 되풀이했다고 말하면 무슨 활극을 연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는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죽음을 경험해 보았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 또한 수없이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다른 차원, 다른 존재로서의 경험도 아주 많습니다. 거기에서 터득된 지혜와 앎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의식으로 끌어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육체적인 개성이 아니듯이, 나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나의 현실을 말하는 것은, 곧 여러분 자신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근본입니다.
우리 안의 두려움과 에고의 정체
여러분은 대부분 장난감 블록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물질의 블록에만 온통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시야가 그렇게 제한된 상태 속에서 살기 때문에, 물질의 블록이 여러분에게는 정말 진짜인 것처럼 보이고,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래서 다른 현실들에 대해 설명할 때조차도 ‘모습’이니 ‘형상’이니 하는 단어들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화에 대한 여러분의 개념은 더 큰 블록을 쌓아 올리는 놀이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엔가 여러분은 ‘아이들의 장난감’ 따위는 한쪽으로 치워 버릴 것이지만, 지금은 온통 거기에만 사로잡혀 있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육신을 지녀야만 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게임의 규칙은 아닙니다.
의식은 여러분의 지구가 형성되기 오래 전에도 존재했었습니다. 의식은 물질의 바탕을 이루는 힘입니다. 의식은 물질적인 것 이외에도 다른 수많은 현실들을 지어 나갑니다. 여러분 자신의 견해가 너무나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현실이 존재의 규칙이자 양식인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여러분의 물리적 현실을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것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에고를 지나치게 발전시키고 특화시켜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문제와 도전을 지니고, 이를 풀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현실에 대해, 육체를 넘어서 있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 점에서 여러분 자신에 대한 접촉 지점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육체의 현실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그것만이 여러분이 아는 유일한 현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나 자신을 넘어선 곳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합니다. 인간의 현실과 경험을 넘어선 곳에, 인간의 말로는 번역될 수 없는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합니다. 그 자아에게 있어서, 물리적 현실이란 것은 차가운 겨울 날씨 속에 내뿜어진 하나의 따뜻한 숨결처럼 연약하고, 덧없고, 일시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전체 자아의 다른 부분들과 계속해서 접촉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에고는 물리적인 육체의 현실과 그 안에서 살아남는 법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채, 생존을 주장하는 에고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그 때문에 영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육신이 죽어야만 영혼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과 더불어 ‘영혼’을 획득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당신들 각자가 지금 영혼입니다!
여러분이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다른 현실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여러분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 비행사가 우주복을 입는 것과 거의 똑같은 이유로, 여러분은 육체를 입고 있습니다. 죽음은 우주복을 벗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에고는 물리적인 현실 속에 겉으로 드러난 내면의 자아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내면의 자아가 여러 가지 문제를 풀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일련의 특징들이지요. 우리가 그렇게 생각함에 따라 에고 또한 계속적으로 변화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현실만이 현실이 아닙니다. 그것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이 있지요. 여러분은 그 동안 진짜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진짜인 현실을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현실들을 인식하고, 발전시키고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방법은 이 자료 속에 주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완전히 이해해야만 그것을 활용할 수도 있지요.
여러분은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 자신을 에고와 동일시하는 일을 그쳐야 합니다. 여러분의 에고가 인식하는 것 이상의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시오. 이 자료는 진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소화하기 쉽게 포장 단위로 묶어서 팔 수 있다고 자기 자신들을 기만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자료는 여러분이 지성적이고 직관적으로 확장해 나아가기를 요구합니다.
3차원의 현실과 차원의 출입구
여러분은 스스로 변장을 한 채, 자신이 변장하고 있음을 얼른 알아차리기 어려운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시스템 속에서는 현실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지요.
하지만 여러분이 알고 실감하는 ‘현실’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현실이 있고, 현실의 시스템들 사이에는 시간과 공간이 ‘휘어지는’ 차원의 출입구가 있습니다. 나는 그 출입구를 통해서 여러분과 만납니다.
나는 여러분의 오감이 만들어내는 현실만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으로 하여금 실감케 하고, 그럼으로써 여러분의 세계를 넓혀 주기 위해서 보내졌습니다. 여러분의 역사 속에는, 나 말고도 다른 많은 이들이 보내졌습니다. 여러분이 진보함에 따라 여러분은 새로운 차원들을 열어 나갈 것이고, 여러분 또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물리적인 현실이라는 것은 현실이 취하는 하나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시스템에 갇혀, 여러 경험의 하나일 뿐인 작은 부분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셈입니다.
도전과 시련은 상호 관련된 시스템들의 다양함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배우게 해줍니다. 여러분의 시스템 속에서 슬픔과 번민이 실제로서 느껴지지 않는다면, 배움의 장치가 무력하게 되어 버릴 것입니다.
3차원에서의 경험은, 수련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입니다. 당신은 결국 그 모든 것을 놀랍도록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이며, 그 기억들을 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당신의 전 존재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당신은 직관으로 알고 있지요. 당신 자신이 당신의 모습을 지어내며, 진정한 당신은 그런 모습과는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그러나 더 넓은 의미에서의 환경이나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까지도 당신이 창조한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정으로 품은 생각이 추진력이 되어 물질을 창조하고, 3차원의 삶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다차원적인 자아가 다양한 환경과 조건을 창조하고, 시련과 도전을 장치합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 때문에, 적어도 초기에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경험을 창조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자발성에 의해, 한계 없는 기쁨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매번의 삶 속에서, 당신이 당신 자신의 무대 장치를, 당신의 환경을, 선택하고 창조합니다. 당신의 부모도 당신이 선택하고, 어린 시절에 부딪히게 될 사건들도 당신이 장치해 놓습니다. 당신들 각자가 배우로서 저마다 역할을 맡고 있으며, 내면의 안내에 따라 연극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인생 각본은 당신이 쓴 것입니다!
모든 현실들이 서로 교차하는 네 개의 절대적인 조절점이 있습니다. 이 조절점들은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로서, 하나의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가는 보이지 않는 길로서, 역할을 합니다. 시공간이 휘어지는 지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이 조절점들 중에는 절대 지점이 있고, 주요 지점이 있고, 그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지점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순수 에너지가 축적되는 곳을 대표하며, 미세한 것에서 극단에 이르기까지의 순수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에너지는 활성화되어야만 합니다. 이 에너지는, 물리적으로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잠자는 상태에 있습니다. 당신들의 감정이나 느낌이 이 조절점들을 활성화시킵니다. 당신들이 의식하든 안 하든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현실의 경험이라는 외길은, 여러분이 그 길을 따라 여행하는 겉보기의 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상, 비유를 사용하자면, 여러분 자신의 위와 아래에는 무수히 많은 실들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적적인 거미줄 망이 처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물리적인 현실이 환상임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그 너머에도 존재하는 현실들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는 존재들이 많지요.
인간 종족이란 하나의 무대이자 단계로서, 그것을 통해서 여러 형태의 의식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지구는 이제 막 생겨난 의식을 위한 훈련 시스템이라 할 수 있지요. 여러분은 먼저 에너지를 조종하는 법을 배워서 물질화라는 것이 생각과 감정의 구체적인 결과물임을 익혀야 합니다. 그래야만 더 확장되고 열린 현실 시스템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죽고 살고 죽어서 이 육체의 시스템을 떠나게 될 때, 여러분은 그러한 물질화 과정을 다 배우게 될 것이고, 문자 그대로 더 이상 인간 종족이 아니게 됩니다. 여러분 스스로 떠날 것을 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든, 의식적인 자아만이 인간이라는 형상 안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정체성의 다른 부분들은 다른 훈련 시스템들 안에서 동시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진보된 시스템들에서는, 생각과 감정이 자동적으로 즉각 구체화되어 가장 근접한 물질의 형태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배워야 할 것은 결국 배워야 하고, 그것도 잘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시스템 속에서는 마지막으로 환생한 사람들이나, 시스템을 이미 떠났지만 시스템 안에 남아서 사람들을 돕기로 한 사람들이 교사의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의 시스템 속에는 처음으로 들어오게 된 ‘파편 개성들’도 있고, 환생을 거듭해서 이제는 거의 졸업 단계에 있는 존재들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자기 스스로의 한계 때문에, 에고는 모든 가능한 사건들 중에서 오직 하나의 사건을 선택합니다. 에고가 그 사건을 경험할 때까지는, 다른 가능한 사건들과 마찬가지의 사건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육체적인 자아에 의해 경험될 때만이 사건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전체 자아의 한 부분은 에고가 경험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사건들을 경험할 수 있고 경험합니다. 전체 자아는 에고에 의해 경험될 수도 있었던 모든 실현 가능한 사건들을 다 알고 있습니다.
자아의 다른 부분은, 선택한 사건들을 경험하기 위해 에고가 들인 물리적인 시간과 똑같은 정도로 다른 대체적인 사건들 속을 탐구합니다. 이 같은 실현 가능한 다른 사건들 역시 다른 차원에서는 똑같이 ‘실재하는’ 것이 됩니다. 물질과 반물질 사이에는 무한한 숫자의 시스템들, 무한한 숫자의 우주가 있습니다. 물리적인 감각으로는 이런 다른 시스템들을 인지할 수가 없지요. 하지만 가능한 사건들도 여러분이 그것들을 인지하든 인지하지 않든 사건들인 점은 분명합니다.
가능한 사건들은 꿈을 통해서 비몽사몽간에 경험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내면의 감각’을 사용하는 수련을 통해서 이런 시스템들을 선도적으로 탐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의 시스템들은 여러분의 물리적인 시스템만큼이나 실재합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는 것뿐입니다.
다른 현실 시스템들 속에서, 우리들 각자는 우리 자신과 동일한 자아도 아니고 쌍둥이도 아닌 ‘다른 자아들’을 가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전 존재의 다른 부분들은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능력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아들 각자는 지각의 성질에 따라 자신의 방식으로 시간을 경험합니다. 그들의 다양한 현실들은 전체 자아의 전체 지각에 통합됩니다. 전체 자아의 이런 모든 층들 사이에는 잠재의식적으로 정보의 상호 교환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내면의 에고는 이들 각자의 자아에 의해 다른 동시적인 자아들에 관한 이해를 하고자 애씁니다. 전체 자아가 자신의 부분들을 동시적으로 지각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이렇게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자아들이 나타나고, 자기들 스스로 고립되고 혼자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여러분이 늘 사용하는 의식적인 마음을 하나의 문으로서 간주한다면, 여러분은 그 마음의 문턱에 서서 육체의 현실 안쪽을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문들도 있지요…. 여러분이 한 문을 닫고 다른 문을 열기 이전에, 뒤틀리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현실들, 여러분 자신의 의식적인 다른 부분들을 지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다른 부분들 역시 여러분이 늘 친숙해 온 의식과 똑같이 진짜이고, 똑같이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 에너지는 고향의 시스템을 떠나 낯선 타향의 시스템 속으로 전이될 수도 있습니다. 이 시스템에서 저 시스템으로 옮겨감에 따라 뇌파의 변화를 비롯된 여러 가지 자동적인 변화가 따르게 됩니다. 한 시스템에서는 정상이었던 것이 다른 시스템에서는 정상이 아닌 것으로 취급될 수도 있지요.
의식이 무엇이냐를 배우는 데에는 오직 한 길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집중력의 초점을 바꾸어서 가능한 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분 자신의 의식을 활용해 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들여다볼수록 여러분의 의식의 지평선이 더 넓어집니다. 그래서 에고적인 자아로 하여금 평상시에는 갖고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능력을 발휘하게 해줍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믿음과 기대에 따라
자신의 현실을 창조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믿음과 기대를 주의 깊게 점검하는 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자신의 세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신이 기대하는 것들을 점검하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생각은 여러분 자신을 통해 물질적으로 나타나게 돼 있죠.
주변세계는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의 충실한 복사판입니다.
개개인이 잠재의식적으로 의식하는,
소위 근원적 가정들이란 텔레파시적 조언들이 존재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상태들을 이용하여 사물과 위치, 치수 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가 이뤄질 정도로 응집력 있는 물리적 환경을 조성 하죠.
어떤 면에서 그것은 모두 환각이지만 여러분에겐 분명한 현실입니다. 여러분의 부모가 사는 세계는 처음엔 생각 속에서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일단 꿈의 요소로서 존재했다가 그로부터 그들의 우주가 나왔고 연이어 그들의 세계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존재를 하찮게 본다면 '
난 갖가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살고 있는 생물이다'라고 말하겠죠.
반면에 자신을 싸구려로 만들 생각이 없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존재이다.
나는 스스로 물질적인 환경을 만들어간다.
나는 나의 세상을 만들고 변화시킨다.
나는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롭다.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일부분이다.
내 안에는 오직 창조력만이 존재한다.'
http://blog.daum.net/speechleadershi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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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들은
꿈을 이용하여 잠재적인 동기를 탐구합니다.
더 나아가 꿈을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꿈을 통해 건강을 증진시키고, 영감을 얻으며, 활기를 되찾고 문제를 해결하며,
인간관계를 윤택하게 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에너지입니다.
깨어있을때도 의식변화를 통하여 변화되듯이
꿈체험을 통해서도 변화됩니다.
깨어있는 상태에선 제대로 표현할수 없었던 행위를
꿈에서는자유롭게 시도할수 있습니다.
적절한 암시를 통해 꿈속의 활동을 통제할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꿈은 불행한 상황을 악순환 시키는데 일조합니다.
반면에 좋은꿈으로 건설적인 기대심을 충족시킨다면,
상황을 유익하게 변화시킬수 있습니다.
1 우리들의 공격적인 성향
꿈에서는 비교적 무해하게 , 자유로이 표현할수 있습니다.
꿈속에서 자신의 감춰진 공격성을 체험하게 되리라고,
혹은 꿈속에서 자기 자신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공격성을 이해하게 되리라고
암시를 거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공격성의 암시를 걸때
꿈속행위의 대상이 특정인물[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아니어야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공격성과 같이, 눈에 보이지않는 요소라고 분명히 해야합니다.
꿈속에서 누군가를 해치겠다고 암시하면 자신이 오히려 피해를 입게 됩니다.[죄책감으로...]
꿈이나 상상이 실제체험과 마찬가지로 실제적입니다.
그대여 우울합니까?
잠들기전에 마음가짐을 긍정적으로 만들고,
원기를 회복시켜줄 유쾌하고 즐거운 꿈을 꾸게되리라고 자기암시를 건다면
오히려 꿈을 통해 자신의 현실을 바꿀수 있습니다.
뿌리깊은 우울증이 아니라면 잠에서 깨어났을때 ,
우울증이 사라져있거나
상당부분이 약화되었음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내적자아는 꿈의 체험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체험합니다.
꿈은 전자기적 실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꿈의 체험은 세포속에 전기적으로 암호화되며 보전됩니다.
즉 두뇌, 육체의 세포속에 데이터로 보존되어 완결된 체험의 닮은 꼴을
실제로 만들어냅니다.
-세스 매트리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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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빛의 존재가 당신에게 말을 건다
● 자료 정리 및 글 : 유영일
국내에도 이미 두 권의 ‘세스 북스’가 선보였지만(“세스 매트리얼”, “육체가 없지만 나는 쓴다”, 도솔 출판사, 서민수 역), 인터넷상에서 재가공된 자료들과 국내에서는 미출간된 <영혼의 영원한 가치>를 중심으로, 세스의 핵심 요점을 정리해 본다.
그 모든 것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정리 : 패티 니콜슨
1963년, 작가인 제인 로버츠는 34살, 그녀의 남편인 롭은 44살이었다. 그들은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고, 결혼한 지 9년째였다. 그들은 꿈에 대해서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었고, 서점을 들락거리며 해답을 구했지만, 자신들의 경험을 설명해 줄 적당한 책을 발견할 수 없었다.
롭의 제안에 따라 제인은 ‘위저 보드’를 통해 직접 해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위저 보드란, 트랜스 상태에서 저 세상의 소리를 직접 받아 적는 ‘점판’이라고 할 만한 것.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자신이 궁금해하던 것들을 묻고 해답을 듣는 과정에서, 그들은 놀랍게도 자기 자신을 ‘세스’라고 부르는 한 존재를 만나게 된다.
실험이 계속됨에 따라, 제인은 위저 보드를 통해 한 글자씩을 점지해 듣는 답답한 과정을 건너뛰어, 마음 속으로 말을 한꺼번에 전해듣는 능력을 얻게 된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공간 속에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 것. 1963년에 시작된 이 실험은 1966년 “당신의 초능력을 발전시키는 법”이라는 책으로 출판되기에 이른다.
1963년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제인은 세스와의 이런 만남을 계속하고, 1996년까지 모두 23권의 책으로 결실을 맺는다. 그중 일곱 권은 세스가 직접 기획 구술한 것이고, 두 권은 롭이 함께 참여하여 제인이 죽은 후 출판된 것이다. 이 작업을 하면서 세스는 항상 제인을 루버트로, 롭을 조셉으로 부른다. 그것이 그들의 더 큰 자아의 이름이라는 것. 지금 세상에서 그들이 갖고 있는 정체성은, 루버트와 조셉이라는 그들의 더 큰 자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1967년 9월부터 1982년 7월까지 15년 동안, 제인은 월요일과 수요일이면 세스와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고, 롭은 1500회에 달하는 이 만남을 기록으로 남겼다. 제인은 이 기간 중에 ESP(초능력) 개발을 위한 공부 모임을 이끌기도 했다. 개인당 2.50$를 받고 화요일과 목요일에 열었던 이 모임은, 처음에는 5~12명이 참가했으나,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30~40명 수준으로 확대된다. 이 공부 모임은 제인과 롭이 집을 사서 이사를 하면서 책을 쓰는 일에만 전념하게 된 1975년까지, 8년 동안 계속된다.
제인은 세스와의 만남을 통해, 3차원의 현실에 초점이 맞추어진 우리의 의식을 전환함으로써 다른 현실들을 엿볼 수 있으며,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세상이란 더 깊은 다른 영역에서 비롯된 것임을 믿게 된다. 그녀는 또, 전통적인 용어들로 자기 경험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다차원적인 현상을 3차원의 현실 시스템에 한정짓는 일이 될 수밖에 없음을 절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3차원의 행위들은 사실 우리의 근원적인 자아에서 오는 것이며, 우리의 에너지와 생명은 거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초점을 바꿈으로써, 우리는 3차원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다른 존재들을 만남으로써 우리의 앎을 확장할 수 있고, 그로써 다른 현실들이 진실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1) 우리의 현실을 창조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2) ‘영원한 현재’에 살라.
3) 우리는 잠재의식에 의해 좌우되는 그런 연약한 존재가 아니다.
4) 우리는 ‘창조’를 표현하고 있는 신들이다.
1982년 2월 26일, 제인은 갑상선 이상에다 심한 관절염까지 겹쳐 입원하게 된다. 세스는 제인의 병이 그녀의 개인적인 고투의 표지판이며, 롭 또한 무관하지 않다는 것, 제인의 관절염은 그들의 관계가 불완전함을 나타내는 징표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세스의 충고에 따름으로써 제인은 가끔씩 증상이 호전되기도 했지만, 여러 해를 투병한 끝에 결국은 육체의 조건에 굴복하고 만다. 1984년 9월 5일이었다. 그 이후 롭은 그들이 함께 했던 일들을 두 권의 책으로 출판하고, 그보다 앞서 나왔던 책들도 다시 새롭게 선보이기 시작한다.
이 글을 쓴 패티 니콜슨은, 70년대 초부터 세스를 읽고 공부해 왔으며, 세스의 제안에 따라 ‘우리의 현실을 창조하는’ 10주 과정의 수련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생각의 건축”, “의식적인 창조” 등의 책을 썼다. ‘영혼 훈련’의 공동 창립자이자, 그래픽 아티스트, 인터넷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세스가 속삭인 지혜의 말들
세스는 당신의 존재를 비추는 거울일 수 있다.
수천 년 전부터 되풀이 설해졌던 진리이지만
아직 육화되지 못한 채 겉돌기만 하는 말일 수도 있고,
생경한 낱말들의 조합이지만
당신의 영혼은 익히 알고 있는 말일 수도 있다.
말의 뒤안에 서성거리면서
당신의 존재가 화학변화를 일으키기를 기대하고 있는,
자신의 말을 성장 촉진제로서 기꺼이 쓰임받고자 하는
빛의 존재를 마음에 그리면서,
그 속안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왔는가?
지금의 내 존재가 나에게는 가장 도전적이고, 가장 마음에 듭니다. 사실 ‘나’는 수많은 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육체를 띠고 있는 나도 있고, 그렇지 않는 나도 있습니다. 육체를 갖지 않은 채 의식으로서만 존재한다고 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이 아닌 저승만을 연상하곤 하지만, 육체를 갖지 않는 의식이 한 차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에 한 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고, 태양계에 하나의 별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내가 있는 곳은, 여러분이 죽은 다음에 즉각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그런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나와 같은 이런 특별한 존재 상태가 되려면, 당신들은 아마도 태어나고 죽는 일을 여러 차례 겪어야만 할 겁니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없이 살고 죽는 일을 되풀이했다고 말하면 무슨 활극을 연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는 당신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죽음을 경험해 보았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이 책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 또한 수없이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다른 차원, 다른 존재로서의 경험도 아주 많습니다. 거기에서 터득된 지혜와 앎이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의식으로 끌어내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육체적인 개성이 아니듯이, 나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나의 현실을 말하는 것은, 곧 여러분 자신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근본입니다.
우리 안의 두려움과 에고의 정체
여러분은 대부분 장난감 블록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물질의 블록에만 온통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시야가 그렇게 제한된 상태 속에서 살기 때문에, 물질의 블록이 여러분에게는 정말 진짜인 것처럼 보이고, 그것만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래서 다른 현실들에 대해 설명할 때조차도 ‘모습’이니 ‘형상’이니 하는 단어들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화에 대한 여러분의 개념은 더 큰 블록을 쌓아 올리는 놀이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느 날엔가 여러분은 ‘아이들의 장난감’ 따위는 한쪽으로 치워 버릴 것이지만, 지금은 온통 거기에만 사로잡혀 있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육신을 지녀야만 살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게임의 규칙은 아닙니다.
의식은 여러분의 지구가 형성되기 오래 전에도 존재했었습니다. 의식은 물질의 바탕을 이루는 힘입니다. 의식은 물질적인 것 이외에도 다른 수많은 현실들을 지어 나갑니다. 여러분 자신의 견해가 너무나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현실이 존재의 규칙이자 양식인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여러분의 물리적 현실을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것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에고를 지나치게 발전시키고 특화시켜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은 문제와 도전을 지니고, 이를 풀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현실에 대해, 육체를 넘어서 있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바로 이 점에서 여러분 자신에 대한 접촉 지점을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육체의 현실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그것만이 여러분이 아는 유일한 현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나 자신을 넘어선 곳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합니다. 인간의 현실과 경험을 넘어선 곳에, 인간의 말로는 번역될 수 없는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합니다. 그 자아에게 있어서, 물리적 현실이란 것은 차가운 겨울 날씨 속에 내뿜어진 하나의 따뜻한 숨결처럼 연약하고, 덧없고, 일시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전체 자아의 다른 부분들과 계속해서 접촉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에고는 물리적인 육체의 현실과 그 안에서 살아남는 법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채, 생존을 주장하는 에고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그 때문에 영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육신이 죽어야만 영혼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과 더불어 ‘영혼’을 획득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당신들 각자가 지금 영혼입니다!
여러분이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차원의 다른 현실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여러분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 비행사가 우주복을 입는 것과 거의 똑같은 이유로, 여러분은 육체를 입고 있습니다. 죽음은 우주복을 벗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에고는 물리적인 현실 속에 겉으로 드러난 내면의 자아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내면의 자아가 여러 가지 문제를 풀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일련의 특징들이지요. 우리가 그렇게 생각함에 따라 에고 또한 계속적으로 변화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현실만이 현실이 아닙니다. 그것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이 있지요. 여러분은 그 동안 진짜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진짜인 현실을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현실들을 인식하고, 발전시키고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방법은 이 자료 속에 주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완전히 이해해야만 그것을 활용할 수도 있지요.
여러분은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 자신을 에고와 동일시하는 일을 그쳐야 합니다. 여러분의 에고가 인식하는 것 이상의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시오. 이 자료는 진리라는 것을 여러분이 소화하기 쉽게 포장 단위로 묶어서 팔 수 있다고 자기 자신들을 기만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자료는 여러분이 지성적이고 직관적으로 확장해 나아가기를 요구합니다.
3차원의 현실과 차원의 출입구
여러분은 스스로 변장을 한 채, 자신이 변장하고 있음을 얼른 알아차리기 어려운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시스템 속에서는 현실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지요.
하지만 여러분이 알고 실감하는 ‘현실’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현실이 있고, 현실의 시스템들 사이에는 시간과 공간이 ‘휘어지는’ 차원의 출입구가 있습니다. 나는 그 출입구를 통해서 여러분과 만납니다.
나는 여러분의 오감이 만들어내는 현실만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으로 하여금 실감케 하고, 그럼으로써 여러분의 세계를 넓혀 주기 위해서 보내졌습니다. 여러분의 역사 속에는, 나 말고도 다른 많은 이들이 보내졌습니다. 여러분이 진보함에 따라 여러분은 새로운 차원들을 열어 나갈 것이고, 여러분 또한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물리적인 현실이라는 것은 현실이 취하는 하나의 모습일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시스템에 갇혀, 여러 경험의 하나일 뿐인 작은 부분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셈입니다.
도전과 시련은 상호 관련된 시스템들의 다양함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배우게 해줍니다. 여러분의 시스템 속에서 슬픔과 번민이 실제로서 느껴지지 않는다면, 배움의 장치가 무력하게 되어 버릴 것입니다.
3차원에서의 경험은, 수련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입니다. 당신은 결국 그 모든 것을 놀랍도록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이며, 그 기억들을 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당신의 전 존재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당신은 직관으로 알고 있지요. 당신 자신이 당신의 모습을 지어내며, 진정한 당신은 그런 모습과는 독립된 존재라는 것을. 그러나 더 넓은 의미에서의 환경이나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까지도 당신이 창조한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정으로 품은 생각이 추진력이 되어 물질을 창조하고, 3차원의 삶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다차원적인 자아가 다양한 환경과 조건을 창조하고, 시련과 도전을 장치합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 때문에, 적어도 초기에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경험을 창조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자발성에 의해, 한계 없는 기쁨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매번의 삶 속에서, 당신이 당신 자신의 무대 장치를, 당신의 환경을, 선택하고 창조합니다. 당신의 부모도 당신이 선택하고, 어린 시절에 부딪히게 될 사건들도 당신이 장치해 놓습니다. 당신들 각자가 배우로서 저마다 역할을 맡고 있으며, 내면의 안내에 따라 연극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인생 각본은 당신이 쓴 것입니다!
모든 현실들이 서로 교차하는 네 개의 절대적인 조절점이 있습니다. 이 조절점들은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로서, 하나의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가는 보이지 않는 길로서, 역할을 합니다. 시공간이 휘어지는 지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이 조절점들 중에는 절대 지점이 있고, 주요 지점이 있고, 그보다 중요도가 떨어지는 지점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순수 에너지가 축적되는 곳을 대표하며, 미세한 것에서 극단에 이르기까지의 순수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에너지는 활성화되어야만 합니다. 이 에너지는, 물리적으로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잠자는 상태에 있습니다. 당신들의 감정이나 느낌이 이 조절점들을 활성화시킵니다. 당신들이 의식하든 안 하든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현실의 경험이라는 외길은, 여러분이 그 길을 따라 여행하는 겉보기의 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상, 비유를 사용하자면, 여러분 자신의 위와 아래에는 무수히 많은 실들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적적인 거미줄 망이 처져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물리적인 현실이 환상임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그 너머에도 존재하는 현실들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는 존재들이 많지요.
인간 종족이란 하나의 무대이자 단계로서, 그것을 통해서 여러 형태의 의식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지구는 이제 막 생겨난 의식을 위한 훈련 시스템이라 할 수 있지요. 여러분은 먼저 에너지를 조종하는 법을 배워서 물질화라는 것이 생각과 감정의 구체적인 결과물임을 익혀야 합니다. 그래야만 더 확장되고 열린 현실 시스템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죽고 살고 죽어서 이 육체의 시스템을 떠나게 될 때, 여러분은 그러한 물질화 과정을 다 배우게 될 것이고, 문자 그대로 더 이상 인간 종족이 아니게 됩니다. 여러분 스스로 떠날 것을 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든, 의식적인 자아만이 인간이라는 형상 안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정체성의 다른 부분들은 다른 훈련 시스템들 안에서 동시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진보된 시스템들에서는, 생각과 감정이 자동적으로 즉각 구체화되어 가장 근접한 물질의 형태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배워야 할 것은 결국 배워야 하고, 그것도 잘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시스템 속에서는 마지막으로 환생한 사람들이나, 시스템을 이미 떠났지만 시스템 안에 남아서 사람들을 돕기로 한 사람들이 교사의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의 시스템 속에는 처음으로 들어오게 된 ‘파편 개성들’도 있고, 환생을 거듭해서 이제는 거의 졸업 단계에 있는 존재들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자기 스스로의 한계 때문에, 에고는 모든 가능한 사건들 중에서 오직 하나의 사건을 선택합니다. 에고가 그 사건을 경험할 때까지는, 다른 가능한 사건들과 마찬가지의 사건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육체적인 자아에 의해 경험될 때만이 사건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전체 자아의 한 부분은 에고가 경험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사건들을 경험할 수 있고 경험합니다. 전체 자아는 에고에 의해 경험될 수도 있었던 모든 실현 가능한 사건들을 다 알고 있습니다.
자아의 다른 부분은, 선택한 사건들을 경험하기 위해 에고가 들인 물리적인 시간과 똑같은 정도로 다른 대체적인 사건들 속을 탐구합니다. 이 같은 실현 가능한 다른 사건들 역시 다른 차원에서는 똑같이 ‘실재하는’ 것이 됩니다. 물질과 반물질 사이에는 무한한 숫자의 시스템들, 무한한 숫자의 우주가 있습니다. 물리적인 감각으로는 이런 다른 시스템들을 인지할 수가 없지요. 하지만 가능한 사건들도 여러분이 그것들을 인지하든 인지하지 않든 사건들인 점은 분명합니다.
가능한 사건들은 꿈을 통해서 비몽사몽간에 경험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내면의 감각’을 사용하는 수련을 통해서 이런 시스템들을 선도적으로 탐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의 시스템들은 여러분의 물리적인 시스템만큼이나 실재합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는 것뿐입니다.
다른 현실 시스템들 속에서, 우리들 각자는 우리 자신과 동일한 자아도 아니고 쌍둥이도 아닌 ‘다른 자아들’을 가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전 존재의 다른 부분들은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능력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아들 각자는 지각의 성질에 따라 자신의 방식으로 시간을 경험합니다. 그들의 다양한 현실들은 전체 자아의 전체 지각에 통합됩니다. 전체 자아의 이런 모든 층들 사이에는 잠재의식적으로 정보의 상호 교환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내면의 에고는 이들 각자의 자아에 의해 다른 동시적인 자아들에 관한 이해를 하고자 애씁니다. 전체 자아가 자신의 부분들을 동시적으로 지각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이렇게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자아들이 나타나고, 자기들 스스로 고립되고 혼자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여러분이 늘 사용하는 의식적인 마음을 하나의 문으로서 간주한다면, 여러분은 그 마음의 문턱에 서서 육체의 현실 안쪽을 들여다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문들도 있지요…. 여러분이 한 문을 닫고 다른 문을 열기 이전에, 뒤틀리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현실들, 여러분 자신의 의식적인 다른 부분들을 지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다른 부분들 역시 여러분이 늘 친숙해 온 의식과 똑같이 진짜이고, 똑같이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 에너지는 고향의 시스템을 떠나 낯선 타향의 시스템 속으로 전이될 수도 있습니다. 이 시스템에서 저 시스템으로 옮겨감에 따라 뇌파의 변화를 비롯된 여러 가지 자동적인 변화가 따르게 됩니다. 한 시스템에서는 정상이었던 것이 다른 시스템에서는 정상이 아닌 것으로 취급될 수도 있지요.
의식이 무엇이냐를 배우는 데에는 오직 한 길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집중력의 초점을 바꾸어서 가능한 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분 자신의 의식을 활용해 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들여다볼수록 여러분의 의식의 지평선이 더 넓어집니다. 그래서 에고적인 자아로 하여금 평상시에는 갖고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능력을 발휘하게 해줍니다.
건강한 삶, 충만한 삶
여러분의 믿음과 기대에 따라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현실을 창조합니다.
그러므로 이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삶의 어느 부분인가가 마음에 들지 않나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의 기대치를 면밀하게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은 여러분 자신이 품은 생각들의 충실한 복제품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품으면,
여러분은 긍정적인 쓰임새를 위해 텔레파시의 핵무기를 발사하는 셈입니다.
그러니 부정적인 생각이나 상상을 지우고,
대신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채워 넣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나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생각들에만 반응할 것이다”라고 자기 자신에게 자주 말씀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 자신이나 다른 이들의 생각을 해치우는 핵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말씀하십시오. “그것은 과거의 일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속에서,언제나 새로운 이 순간에,
나는 이미 더 좋은 환경을 위한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두려움이나 근심 걱정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억누르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마주보고, 다른 것으로 대치시키십시오.
분노가 느껴지면, 일단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없앨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무엇보다 먼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고 나서, 분노를 그 ‘뿌리까지’ 뽑아 버리고
다른 긍정적인 느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야 합니다.
상상으로 여러분이 그리는 그림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언제 어느 때든 주어진 삶의 조건이나 환경은
여러분 자신이 내면에서 기대했던 직접적인 결과물이니까요.
비참한 상황이나 질병이나 절망적인 외로움을 상상하면,
그 모든 상황이 ‘자동적으로’ 물질화됩니다. 생각이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으로
현실성을 부여할 조건들을 스스로 낳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곤란과 어려움을 창조하는 것도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어느 누구든 마찬가지입니다. 내면의 심리적인 상태는 외부에 투사되어,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현실을 획득합니다. 그 심리적인 상태가 어떠한 종류의 것이든 말입니다. 이 법칙은 누구에게나 다 적용됩니다. 이것을 깨닫고, 여러분의 심리적인 상태를 파악하려고 애써야 하며, 그래서 여러분 자신에게 유익함을 가져올 수 있도록 조건들을 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삶의 태도로부터 도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삶의 태도가 여러분이 보는 것들의 본질에 반영되기 때문이지요. 변화가 일어나려면, 정신적이고 영적인 변화라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변화가 여러분의 환경에 반영되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향해서 부정적이고 불신에 가득 찬 마음을 내거나,
두려워하거나, 치사하다고 생각을 내면, 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꽃을 저주하는 것이 나쁘듯이, 한 사람을 저주하는 것 역시 나쁩니다.
한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나쁘듯이, 한 인간을 비웃는 것 역시 나쁜 일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존중하십시오.
여러분 안에서 영원한 가치를 지닌 영혼을 보십시오.
다른 모든 이들을 존중하십시오.
각자의 안에서 영원한 가치를 지닌 영혼의 불꽃을 보십시오.
여러분이 만약 다른 누군가를 저주한다면, 그것은 여러분 자신을 저주하는 것입니다.
그 저주는 여러분에게로 돌아옵니다.
마음 속에 증오를 품으면, 그것은 고스란히 외부로 투사되어 물질화됩니다.
마음 속에 사랑을 품으면, 그것은 고스란히 외부로 투사되어 물질화됩니다.
내가 이렇게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여러분에게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낡은 방식을 되풀이하지 마십시오.
낡은 방식으로는,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세상을 곧이곧대로 불러올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 황량하고 악으로 가득 차 있다고 바라보는 것은,
그 사람이 황량함과 악에 사로잡혀서 그것들을 바깥 세상에 투사한 나머지,
현실의 다른 측면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여러분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러면 해답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건강과 활력 있는 삶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잠재의식적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을 진실로 아는 길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좋게 느껴진다면, 그 위에 집을 지어도 좋습니다.
그것이 빈약하게 느껴진다면, 그런 이미지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아십시오.
여러분이 자신에 대해 품어 왔던 임시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말하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감정이 아닙니다. 감정이란 여러분을 통과하여 흐르는 것일 뿐입니다.
왔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붙잡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감정이 찾아온 것을 느끼면, 머지않아 저 스스로 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과 감정이 아니라 거기에서 독립된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감정을 갖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라는 구성물 속에서 여러분은 생각과 감정을 사용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본성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 자발성을 믿어야 합니다. 내면의 자아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하고,
내면의 자아와 더불어 일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경 시스템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허락하기만 하면 자기 스스로 반응합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여러분이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려고 할 때뿐입니다.
자연 안에는 여러분을 완전히 넘어서는, 여러분이 아는 어떠한 것도 뛰어넘는
일종의 질서와 기강이 있습니다. 자연은 자기 자신의 질서를 알고 있지요.
자연의 모든 것은 자발적입니다.
우리 몸은 우리가 거짓된 관념을 투사하지 않으면 저절로 건강할 것입니다.
신체 기관은 모든 자극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때문에 질병 또한 받아들여져서, 일단 질병이 발생하면 갈등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고통스럽고 아무런 유익함도 주지 못하는 부분이라 할지라도,
자아는 일단 자기가 받아들인 자신의 한 부분을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병이 육체의 증상으로 나타난 것은, 내적 자아가 하는 말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마음의 이런 저런 잘못과 실수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육체의 증상들이 어떠한 내면의 문제를 나타내고 있는지,
자기 자신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증상이 가라앉음에 따라 여러분의 정신적인 진척도를 헤아려 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시간과 공간의 경계선 안에 붙잡혀 살아가는 육체 기관에 지나지 않다고 믿는다면, 그건 여러분 자신을 어마어마하게 평가절하하는 것입니다.
삶이란 어차피 한계가 정해져 있음을 받아들이십시오.
삶이 이러저러 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마십시오.
삶을 기쁘게, 여러분 안에 있는 이유와 근거로 인해,
삶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은 풍요롭고, 용솟음치는 활력을 지닌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에게는 부정적인 암시나 생각에 대한 저마다의 방어 기제가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면역 체계를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고유 독특한 개인입니다. 여러분의 환경을 지어내는 것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세상을 바꾸고 만들어 나갑니다.
여러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일부입니다.
여러분의 내면에는, 창조성이 존재하지 않는 부분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은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 속에서 살아가십시오.
어디에도 비길 데 없는 여러분만의 고유 독특한 여러분의 개성은
더욱 신장되고 커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지금 입고 있는 개성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고,
지금의 환경을 만나는 것이 최선이었기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두 번 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이 지금 할 수 있는 선을 또다시 똑같은 방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잠잘 때나 꿈꿀 때나 깨어 있을 때나, 한결같이 자기 자신의 의식을 잃어버리지 않고
내면의 자아에 대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에고 의식을 더 이상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더욱 더 깨어 있게 되는 거지요.
그러한 깨달음이 얻어지면, 에고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왜냐 하면 에고 또한 놀랍게도 더 많이 의식적이 되어,
자신이 정해 놓은 경계가 다 무너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출처] 세스는 이렇게 말했다 (씨알머리) |작성자 빛과사랑
참으로 소중한 지혜의 말들...
감사합니다.
보다 맑은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보고
보다 깨인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대할 때
한 걸음 더 가까이 영혼의 완성을 향해 창조주와 하나 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