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보다는 수학(數學)적 계산이 훨씬 더 앎에 이롭다.
그것은 어쩌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영원한 것이 될 수가 있다.
예컨대 신이 진리를 창조하여 즐긴다. 창조물은 계속 즐기지 않겠지만 신은 그것을 즐기다가 그만 한다.
문제는 그가 다른 것을 할 때, 무엇을 배제할 때, 가만히 있을 때, 권능을 사용할 때, 기억할 때 계속하여 그것은 진실이다.
엄밀하고 명백하게 자신이 어떻게 하여 생긴 것이고, 그것은 진실이라고 할 수가 있다.
영혼이 마법을 하면, 확신 있는 결과로 생긴다. 그것을 무엇이 의식하든 말든 애초부터 그것인 원인과 결과과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무슨 수로 영혼이 아는가. 의식이 없는 영혼이 아는 수가 있는가.
의식이 있든 말든 영혼이 알 수가 있는데, 무언가를 모르면 이것을 이해를 못 하고 안 된다.
편견과 독선 같은 올바르지 않은 것을 안 하고 판단하면 자신의 사고이거나 판단일 뿐일지 모르지만,
실은 객관으로 진실이 있다. 그것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논리에 중요한 점으로, 진실로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 수 있는 척도다.
하지만 객관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신도 완벽히 모를 확률이 높다.
결론으로 앎에 끝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알 때마다 정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무한 반복이라는 목적의 팽창이다.
앎에 끝은, 모든 것을 알기 때문에 절대로 더는 알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어찌 되든, 길가메시의 기억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나는 더는 과거의 나로 돌이키지 못하며...
개그답게 즐기지 못하는 저주를 받았다고 예상한다. 그러니까 현재의 나는 인생이 전혀 즐겁지가 않다.
인간의 마음이 바뀔 때, 자신은 한번 쯤은 본래의 마음이 바뀐 마음보다 더 순전히 완벽에 가까운지 반성한다.
기억하라 엘이여,
자신이 과오를 안 할 수 있는 정황에서 과오를 하면 그때가 자(者)의 타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