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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이면 북한이 인천 옹진군 연평도를 포격 도발한 지 1주년이 된다. 당시 북한은 연평도 일대에 포탄 170여 발을 퍼부어 해병대 장병 2명과 공사장에서 일하던 민간인 2명이 숨졌다. 또 마을과 군부대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산불이 발생하는 등 아수라장으로 변해 주민 대부분은 피란을 해야 했다.
북한은 해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도발에 대해 사죄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면전'을 들먹이며 우리 정부를 협박하고 있다. 8월에는 연평도 인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상에 두 차례 기습 포격을 감행해 주민들을 또다시 불안에 떨게 했다.
당시 폭격에 파괴됐던 연평도 마을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또 삶의 터전을 잃고 육지로 피란을 떠났다가 되돌아 온 주민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동아일보 취재팀은 연평도 포격 1주년을 맞아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피폭 주택가 첫 입주, 꽃게는 대풍
31일 오후 1시경 인천 옹진군 연평도 서부리. 백군식 씨(74)가 벽돌을 쌓아 올려 최근 새로 지은 2층 단독주택을 찾았다. 그가 부인(73)과 함께 타고 온 트럭에는 TV와 냉장고, 이불 등 가재도구가 가득 실려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감회가 새로운 듯 한동안 안방과 거실, 주방 등 집 안 곳곳을 살폈다. 백 씨가 살던 집은 지난해 11월 북한이 쏜 포탄에 맞아 파괴됐다. 3대째 살아 온 집이었지만 북한의 추가 도발 걱정 탓에 인천으로 피란을 했다.
"포탄이 떨어진 날 밤 어선을 타고 황급히 섬을 탈출했지. 배에서 화염에 휩싸인 동네를 바라보는데 넋이 나가더라고. 북한 놈들 만행을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려."
1월 섬에 다시 들어온 백 씨 부부는 전날까지 연평초교 운동장에 임시로 지은 18m²(약 5.5평) 규모의 비좁은 조립식 주택에서 살았다.
그러다 5월부터 옹진군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완파된 주택과 상가 등 총 32채를 건축물 대장에 등재된 면적대로 다시 지어줘 이날 입주한 것이다. 백 씨 부부를 시작으로 18일까지 임시주택에서 살아 온 32가구 주민 50여 명은 예전 집터에 지어진 새집을 보금자리로 삼는다.
옹진군은 북한의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 연평중고 인근의 완파 주택 자리에 지상 2층 규모의 안보교육관을 착공한다. 불에 탄 가전제품, 부서진 자전거 등이 남아 있는 다른 주택 자리는 도발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보존하기로 했다. 백 씨는 "겨울 전에 내 집에 들어와 살 수 있게 돼 마음이 놓인다"며 "조상 대대로 평화롭게 살아온 이 섬을 다시는 도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입주를 축하하기라도 하듯 꽃게는 풍어를 이루고 있다. 당섬나루터에는 새벽부터 조업에 나선 어선에서 내린 그물에 걸린 꽃게를 따느라 어민들의 손이 바빴다. 10t급 어선인 대근호 선장 함종길 씨(44)는 "지난해 북한의 도발로 조업이 중단돼 큰 손실을 봤는데 올해는 많이 잡혀 다행"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조업기간(4∼6월) 연평도에서는 어선 32척이 꽃게 211t을 잡았지만 하반기에는 9, 10월에만 1500여 t이 잡혔다. 상반기의 7배가 넘는 어획량이다.
○ 복지혜택 늘고 대피시설 들어서
도발의 상흔이 걷히면서 연평도는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취재팀이 연평도를 찾은 31일엔 뜻 깊은 행사도 열렸다. 2일부터 연평도의 첫 마을버스 운행을 앞두고 주민들이 안전운행을 위한 고사를 지내고 있었다. 승객 35명이 탈 수 있는 이 버스는 국민 성금으로 마련됐다.
1월부터 시행된 특별법에 따라 정부는 서해 5도에 6개월 이상 주민등록한 뒤 거주하는 무소득 주민에게 매달 1인당 정주생활지원금 5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또 고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는 수업료와 입학금 등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100억여 원을 들여 주민 200∼500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현대식 대피시설 7곳도 20일까지 완공한다. 자체 발전, 급수 시설을 갖췄으며 조리대와 화장실 등도 설치해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열흘 이상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 연평도 인구도 꾸준히 늘고 있다. 북한의 도발 직후 1700여 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1897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일부 주민은 정부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포탄 파편에 맞아 부분적으로 파손된 주택 242채를 보수했지만 재건축을 요구하는 등 정부에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또 "8월 북한이 NLL 해상에 포격을 감행했을 때 대피소가 완공되지 않아 불안에 떨었다"며 대피소의 조속한 완공을 요구하고 있다.
○ 아직도 눈에 밟히는 영혼들
이날 오후에는 2002년 발생한 제2연평해전에서 숨진 윤영하 소령 등 해군 장병 6명의 흉상이 세워진 남부리 평화공원을 찾았다. 도발 당시 전사한 해병대원인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한 흉상이 설치될 예정이다. 서 하사는 휴가를 받아 여객선에 탑승하려다 북한의 도발을 목격하고 부대로 복귀하던 중 포탄에 맞아 숨졌다. 문 일병은 전투 준비를 하다 포탄 파편에 맞아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옹진군은 도발 1주년을 맞는 23일 이들의 부모와 가족, 해병대 장병 등이 참석한 가운데 흉상 제막식 및 추모식을 열 계획이다. 주민 화합을 위한 걷기대회도 열린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북한의 도발 이후 해병부대에 새로 들어선 군사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K9 자주포와 신형 대포병레이더인 아서(ARTHUR) 등이 배치된 기지가 눈에 들어왔다.
하산 길에 연평초교에서 만난 방지후 군(10)에게 물었다. '북한이 다시 도발할까 봐 불안하지 않으냐'고…. "에이, 북한이 또 공격하면 우리 해병대 아저씨들이 가만두지 않을걸요. 서 하사와 문 일병 삼촌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잖아요."
연평도=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박선홍 기자 sunhong@donga.com
북한은 해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도발에 대해 사죄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면전'을 들먹이며 우리 정부를 협박하고 있다. 8월에는 연평도 인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상에 두 차례 기습 포격을 감행해 주민들을 또다시 불안에 떨게 했다.
당시 폭격에 파괴됐던 연평도 마을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또 삶의 터전을 잃고 육지로 피란을 떠났다가 되돌아 온 주민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동아일보 취재팀은 연평도 포격 1주년을 맞아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피폭 주택가 첫 입주, 꽃게는 대풍
31일 오후 1시경 인천 옹진군 연평도 서부리. 백군식 씨(74)가 벽돌을 쌓아 올려 최근 새로 지은 2층 단독주택을 찾았다. 그가 부인(73)과 함께 타고 온 트럭에는 TV와 냉장고, 이불 등 가재도구가 가득 실려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감회가 새로운 듯 한동안 안방과 거실, 주방 등 집 안 곳곳을 살폈다. 백 씨가 살던 집은 지난해 11월 북한이 쏜 포탄에 맞아 파괴됐다. 3대째 살아 온 집이었지만 북한의 추가 도발 걱정 탓에 인천으로 피란을 했다.
"포탄이 떨어진 날 밤 어선을 타고 황급히 섬을 탈출했지. 배에서 화염에 휩싸인 동네를 바라보는데 넋이 나가더라고. 북한 놈들 만행을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려."
1월 섬에 다시 들어온 백 씨 부부는 전날까지 연평초교 운동장에 임시로 지은 18m²(약 5.5평) 규모의 비좁은 조립식 주택에서 살았다.
그러다 5월부터 옹진군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완파된 주택과 상가 등 총 32채를 건축물 대장에 등재된 면적대로 다시 지어줘 이날 입주한 것이다. 백 씨 부부를 시작으로 18일까지 임시주택에서 살아 온 32가구 주민 50여 명은 예전 집터에 지어진 새집을 보금자리로 삼는다.
옹진군은 북한의 만행을 기억하기 위해 연평중고 인근의 완파 주택 자리에 지상 2층 규모의 안보교육관을 착공한다. 불에 탄 가전제품, 부서진 자전거 등이 남아 있는 다른 주택 자리는 도발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보존하기로 했다. 백 씨는 "겨울 전에 내 집에 들어와 살 수 있게 돼 마음이 놓인다"며 "조상 대대로 평화롭게 살아온 이 섬을 다시는 도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입주를 축하하기라도 하듯 꽃게는 풍어를 이루고 있다. 당섬나루터에는 새벽부터 조업에 나선 어선에서 내린 그물에 걸린 꽃게를 따느라 어민들의 손이 바빴다. 10t급 어선인 대근호 선장 함종길 씨(44)는 "지난해 북한의 도발로 조업이 중단돼 큰 손실을 봤는데 올해는 많이 잡혀 다행"이라고 말했다. 올 상반기 조업기간(4∼6월) 연평도에서는 어선 32척이 꽃게 211t을 잡았지만 하반기에는 9, 10월에만 1500여 t이 잡혔다. 상반기의 7배가 넘는 어획량이다.
○ 복지혜택 늘고 대피시설 들어서
도발의 상흔이 걷히면서 연평도는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취재팀이 연평도를 찾은 31일엔 뜻 깊은 행사도 열렸다. 2일부터 연평도의 첫 마을버스 운행을 앞두고 주민들이 안전운행을 위한 고사를 지내고 있었다. 승객 35명이 탈 수 있는 이 버스는 국민 성금으로 마련됐다.
1월부터 시행된 특별법에 따라 정부는 서해 5도에 6개월 이상 주민등록한 뒤 거주하는 무소득 주민에게 매달 1인당 정주생활지원금 5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또 고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에는 수업료와 입학금 등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100억여 원을 들여 주민 200∼500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현대식 대피시설 7곳도 20일까지 완공한다. 자체 발전, 급수 시설을 갖췄으며 조리대와 화장실 등도 설치해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열흘 이상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 연평도 인구도 꾸준히 늘고 있다. 북한의 도발 직후 1700여 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1897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일부 주민은 정부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포탄 파편에 맞아 부분적으로 파손된 주택 242채를 보수했지만 재건축을 요구하는 등 정부에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또 "8월 북한이 NLL 해상에 포격을 감행했을 때 대피소가 완공되지 않아 불안에 떨었다"며 대피소의 조속한 완공을 요구하고 있다.
○ 아직도 눈에 밟히는 영혼들
이날 오후에는 2002년 발생한 제2연평해전에서 숨진 윤영하 소령 등 해군 장병 6명의 흉상이 세워진 남부리 평화공원을 찾았다. 도발 당시 전사한 해병대원인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한 흉상이 설치될 예정이다. 서 하사는 휴가를 받아 여객선에 탑승하려다 북한의 도발을 목격하고 부대로 복귀하던 중 포탄에 맞아 숨졌다. 문 일병은 전투 준비를 하다 포탄 파편에 맞아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옹진군은 도발 1주년을 맞는 23일 이들의 부모와 가족, 해병대 장병 등이 참석한 가운데 흉상 제막식 및 추모식을 열 계획이다. 주민 화합을 위한 걷기대회도 열린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북한의 도발 이후 해병부대에 새로 들어선 군사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K9 자주포와 신형 대포병레이더인 아서(ARTHUR) 등이 배치된 기지가 눈에 들어왔다.
하산 길에 연평초교에서 만난 방지후 군(10)에게 물었다. '북한이 다시 도발할까 봐 불안하지 않으냐'고…. "에이, 북한이 또 공격하면 우리 해병대 아저씨들이 가만두지 않을걸요. 서 하사와 문 일병 삼촌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잖아요."
연평도=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박선홍 기자 su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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