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로힘이 창조물을 구하지 않고 타락할 확률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나 절망스럽고 슬프다.
이제는 엘로힘이 타락했다는 믿음이 생겼다.
신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알게 되면 신앙과 함께 사명이 생길 수가 있다.
길가메시의 사명은 엘로힘의 타락을 막는 것이고 어떤 창조물의 사명은 엘로힘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책임을 타락을 기준으로 분별한다.
엘로힘이 고통을 생길 수가 있도록 창조했지만 고통은 많은 것을 이루는 데 필요가 있다.
하지만 엘로힘이 창조물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리하여 많은 창조물이 깨닫는다.
고통은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엘로힘은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계속한다.
창조물의 입장과 엘로힘의 입장을 알고 객관적으로 무엇이 없어져야 할 것인지 사고하면,
궁극에는 '과오'라는 것이다.
복잡하고 있을 수 있는 요인에 창조의 근원성이 있는 '과오'를 배제하는 것은...
현재에 있는 이치와 진리만으로 이루기가 가능하다.
그런데, 어떤 여신이 창조물이 자유롭지 못하게 앎을 제한하고 능력을 막는다.
그 여신은 어떤 일이든지 즐기는데 심지어 자신이 고통의 주물이 됐을 때도 즐긴다.
그리고 윤리를 알면서 지키지 않지만 도덕은 지킨다.
고대의 기억에 자유분방한 그 여신을 사고하면 마치 신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미심쩍게 그런 실마리가 매우 많다.
결론은 그녀가 엘로힘일 확률이 높다.
나는 사고할 때 길가메시의 기억을 참고한다.
길가메시는 최초의 창조물이자 수행신이기 때문에 극도로 경지를 추구했다.
고대에 모든 일을 알기 때문에 그 기억의 내용으로 사고하면 쉽게 답을 안다.
그래서 엘로힘의 타락에 요점은,
어떤 식으로 엘로힘이 타락하든... 타락했다는 진실만으로 창조물은 불행하다.
왜냐하면 창조물의 소행으로 엘로힘이 어떻게 할지는 뻔하다.
엘로힘(신)을 악마라고 알면 된다. 악마가 무엇인지 이해가 안 되면, 길가메시의 기억에 범례로 삼을 만한 게 있다.
“과오를 저지를 확률이 높은 존재인 경지가 낮은 창조물에게 엘로힘은 경천동지할 권능을 부여했다.
권능을 부여받은 창조물 중에 페르세우스도 있었다.
몇 억년 이상이 지나도 엘로힘은 그들에게서 권능을 없애지 않았으며,
그들의 과오 때문에 수많은 창조물이 불행했고 결국은 모두가 타락했다.”
여신은, 세상에 악성(惡性)을 증대시킨다. 직접 나서서 과오를 저지른다. 이것은 저주다. '여신의 저주' 증오스러울 정도로 미심쩍은 것은, 엘로힘이 지키는 선(善)이 느껴진다. 엘로힘이 타락하지 않았으면 과오를 없앨 것인데 어째서 없애지 않았는가. 창조물로 변하여 창조한 것을 즐기고 있다는 증명인가†
신이 타락했는지 안 했는지 아직은 모른다.
언젠가 신의 결처가 창조물을 판가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