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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의 억울함을 씻어 신령의 보호를 얻다
작자 : 사감(史鑒)
【정견망】 측천무후 때 항주(恒州) 녹천사(鹿泉寺)의 승려 정만(淨滿)은 계율을 잘 지키고 품행이 고결했다. 그러나 탐욕 많고 게으른 많은 스님들은 좌불안석이었다. 이렇게 깨끗한 승려가 나오면 우리는 무슨 명예가 있으며 또 무슨 공양을 받을 수 있겠는가? 설마 온 절의 승려들이 모두 그를 따라 고행을 하라는 뜻은 아니겠지! 그들은 원한이 서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이 화상을 제거하기로 했다. 그래야만 자기들이 편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 가지 악 중에 음행이 으뜸이다.” 색계(色戒)를 범하는 것은 화상의 가장 큰 오점이었다. 체면을 깎아내리는 데 전문인 악랄한 중들은 이 점을 알고 문제를 크게 만들기로 했다. 그들은 우선 물증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먼저 한 폭의 그림을 몰래 정만스님 방의 상자 속에 숨겨놓고 고의로 단단히 잠갔다. 그림에는 어느 미녀가 높은 누에 올라 다정하게 살피고 있고 정만은 아래에서 색정적으로 활을 당기는 모습으로 분명히 정만이 연애편지를 양가의 부녀에게 보내 유혹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사람을 시켜 증거를 또 만들었다.
정만의 변변치 못한 제자 한 명을 교사해 조정에 보내 정만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그는 자칭 정만을 가장 잘 안다고 하면서 정만이 “고승이란 허울 아래 부녀자와 간음을 했다”는 내막을 폭로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정만에게 치명적인 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측천무후는 이 소식을 들은 후 즉시 대노하여 정만을 체포하여 하옥하라고 했다. 그리고 어사 배회고(裴懷古)에게 이 사건을 책임지고 정만의 흔적을 조사하여 세상을 속인 음란한 중을 주살하라고 했다.
배회고는 조급하게 일을 끝내지 않았다. 사안의 근본을 탐구해보고 나서 마침내 정만이 모함에 빠진 것을 알았다. 결국 과감하게 그를 석방하고 반대로 정만을 모함한 중들을 징벌했다. 무후는 배회고가 상주한 판결을 듣고 놀라고 또 분노했다. 노한 것은 자신이 직접 감독한 사건을 배회고가 뒤집었기 때문이었다. 무후는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엄한 목소리로 배회고가 법 집행을 불공정하게 했고 범법자를 관대하게 놓아주었다고 하여 위사(衛士)에게 그를 잡아 하옥시키라고 했다.
그러나 배회고는 판결 결과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이소덕(李昭德)이 옆에서 중재하며 말했다. “소신이 보기에 배회고는 사건을 심사하는데 일을 경솔하게 했으니 폐하께서는 그에게 다시 심사하게 하십시오.”
그러자 배회고는 격분하여 큰 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 반포한 법률은 친소에 따른 구별이 없습니다. 천하의 모든 사람이 같은 표준을 지켜야 합니다. 폐하께선 어찌하여 소신더러 무고한 사람을 주살해 폐하의 성지를 위배하게 하십니까? 가령 정만이 정말 위법행위가 있었다면 제가 어찌 그렇게 관대하게 놓아주었겠습니까? 소신은 법률에 근거해 공평하게 집행했으며 좋은 사람을 억울하지 않게 하고 형벌을 남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렇게 하여 설사 죽임을 당한다 해도 저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후는 그의 충정을 알고는 배회고를 석방했다.
배회고는 나중에 염지미(閻知微)의 부사(副使 사절단 부대표)가 되어 돌궐에 가서 화친을 맺었다. 돌궐은 사신을 겁주며 염지미에게 돌궐의 가한(可汗)을 섬기라고 협박했다. 또 배회고더러 돌궐의 직책을 맡으라고 핍박했다. 배회고는 투항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절조를 훼손하며 살기보다는 충성을 다해 죽겠소, 지금 내 머리를 잘라도 피하지 않을 것이오.”
생사의 관두에서 돌궐은 그를 죽이는 대신 군사감옥에 가뒀다. 돌궐이 남하해 월주, 정주를 침범했을 때 배회고는 기회를 보아 도망쳤다. 하지만 배회고는 원래 쇠약한 체질이라 오랫동안 말을 타고 도망치는 고생을 감당하지 못했다. 뒤따라 온 병사가 거의 도착할 때 쯤 그는 더 이상 말을 탈 수 없었다.
배회고는 하늘을 향해 경건하게 기도했다. 자신이 죽어도 좋으나 당나라 땅에서 죽고 싶다는 염원을 가졌다. 배회고의 정신력이 다 고갈되어 쉴 때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에 정만 스님과 유사하게 생긴 사람이 나타나 길을 가르쳐 주며 말했다. “이 길로 가시면 됩니다.” 배회고가 깨어난 후 꿈에서 가르쳐 준대로 갔더니 과연 추격병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산속에서 전전하다가 마침내 병주(並州) 경계에 도착했다. 당시 병주장사(並州長史) 지키던 무중규(武重規)는 병사들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방치하여 아주 흉악했는데 수하의 병사들을 마음대로 살인하여 전공으로 삼으려고 했다. 순찰병은 배회고가 온 것을 보고 그를 체포하려 했다.
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 한 병사가 그를 알아보았다. 이리하여 배회고는 안전하게 당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배회고가 큰 난을 피한 것에 대해 사람들은 모두 배회고가 절조를 지키고 고승의 억울함을 풀어주었기 때문에 신령의 보우를 받은 것이라 여겼다.
(<신당서> 등에 근거)
작자 : 사감(史鑒)
【정견망】 측천무후 때 항주(恒州) 녹천사(鹿泉寺)의 승려 정만(淨滿)은 계율을 잘 지키고 품행이 고결했다. 그러나 탐욕 많고 게으른 많은 스님들은 좌불안석이었다. 이렇게 깨끗한 승려가 나오면 우리는 무슨 명예가 있으며 또 무슨 공양을 받을 수 있겠는가? 설마 온 절의 승려들이 모두 그를 따라 고행을 하라는 뜻은 아니겠지! 그들은 원한이 서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이 화상을 제거하기로 했다. 그래야만 자기들이 편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 가지 악 중에 음행이 으뜸이다.” 색계(色戒)를 범하는 것은 화상의 가장 큰 오점이었다. 체면을 깎아내리는 데 전문인 악랄한 중들은 이 점을 알고 문제를 크게 만들기로 했다. 그들은 우선 물증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먼저 한 폭의 그림을 몰래 정만스님 방의 상자 속에 숨겨놓고 고의로 단단히 잠갔다. 그림에는 어느 미녀가 높은 누에 올라 다정하게 살피고 있고 정만은 아래에서 색정적으로 활을 당기는 모습으로 분명히 정만이 연애편지를 양가의 부녀에게 보내 유혹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사람을 시켜 증거를 또 만들었다.
정만의 변변치 못한 제자 한 명을 교사해 조정에 보내 정만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그는 자칭 정만을 가장 잘 안다고 하면서 정만이 “고승이란 허울 아래 부녀자와 간음을 했다”는 내막을 폭로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정만에게 치명적인 상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측천무후는 이 소식을 들은 후 즉시 대노하여 정만을 체포하여 하옥하라고 했다. 그리고 어사 배회고(裴懷古)에게 이 사건을 책임지고 정만의 흔적을 조사하여 세상을 속인 음란한 중을 주살하라고 했다.
배회고는 조급하게 일을 끝내지 않았다. 사안의 근본을 탐구해보고 나서 마침내 정만이 모함에 빠진 것을 알았다. 결국 과감하게 그를 석방하고 반대로 정만을 모함한 중들을 징벌했다. 무후는 배회고가 상주한 판결을 듣고 놀라고 또 분노했다. 노한 것은 자신이 직접 감독한 사건을 배회고가 뒤집었기 때문이었다. 무후는 얼굴빛이 크게 변했다. 엄한 목소리로 배회고가 법 집행을 불공정하게 했고 범법자를 관대하게 놓아주었다고 하여 위사(衛士)에게 그를 잡아 하옥시키라고 했다.
그러나 배회고는 판결 결과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이소덕(李昭德)이 옆에서 중재하며 말했다. “소신이 보기에 배회고는 사건을 심사하는데 일을 경솔하게 했으니 폐하께서는 그에게 다시 심사하게 하십시오.”
그러자 배회고는 격분하여 큰 소리로 말했다. “폐하께서 반포한 법률은 친소에 따른 구별이 없습니다. 천하의 모든 사람이 같은 표준을 지켜야 합니다. 폐하께선 어찌하여 소신더러 무고한 사람을 주살해 폐하의 성지를 위배하게 하십니까? 가령 정만이 정말 위법행위가 있었다면 제가 어찌 그렇게 관대하게 놓아주었겠습니까? 소신은 법률에 근거해 공평하게 집행했으며 좋은 사람을 억울하지 않게 하고 형벌을 남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렇게 하여 설사 죽임을 당한다 해도 저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후는 그의 충정을 알고는 배회고를 석방했다.
배회고는 나중에 염지미(閻知微)의 부사(副使 사절단 부대표)가 되어 돌궐에 가서 화친을 맺었다. 돌궐은 사신을 겁주며 염지미에게 돌궐의 가한(可汗)을 섬기라고 협박했다. 또 배회고더러 돌궐의 직책을 맡으라고 핍박했다. 배회고는 투항하지 않고 말했다. “나는 절조를 훼손하며 살기보다는 충성을 다해 죽겠소, 지금 내 머리를 잘라도 피하지 않을 것이오.”
생사의 관두에서 돌궐은 그를 죽이는 대신 군사감옥에 가뒀다. 돌궐이 남하해 월주, 정주를 침범했을 때 배회고는 기회를 보아 도망쳤다. 하지만 배회고는 원래 쇠약한 체질이라 오랫동안 말을 타고 도망치는 고생을 감당하지 못했다. 뒤따라 온 병사가 거의 도착할 때 쯤 그는 더 이상 말을 탈 수 없었다.
배회고는 하늘을 향해 경건하게 기도했다. 자신이 죽어도 좋으나 당나라 땅에서 죽고 싶다는 염원을 가졌다. 배회고의 정신력이 다 고갈되어 쉴 때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에 정만 스님과 유사하게 생긴 사람이 나타나 길을 가르쳐 주며 말했다. “이 길로 가시면 됩니다.” 배회고가 깨어난 후 꿈에서 가르쳐 준대로 갔더니 과연 추격병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산속에서 전전하다가 마침내 병주(並州) 경계에 도착했다. 당시 병주장사(並州長史) 지키던 무중규(武重規)는 병사들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방치하여 아주 흉악했는데 수하의 병사들을 마음대로 살인하여 전공으로 삼으려고 했다. 순찰병은 배회고가 온 것을 보고 그를 체포하려 했다.
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 한 병사가 그를 알아보았다. 이리하여 배회고는 안전하게 당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배회고가 큰 난을 피한 것에 대해 사람들은 모두 배회고가 절조를 지키고 고승의 억울함을 풀어주었기 때문에 신령의 보우를 받은 것이라 여겼다.
(<신당서> 등에 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