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하나에서 나와
하나로 돌아갑니다.
생성과 수렴
분열과 통합
활동과 휴식
여행과 귀향을
끝없이 되풀이합니다.
나무는 씨앗이 되고
씨앗은 나무가 되듯이
하나는 만물이 되고
만물은 다시 하나가 됩니다.
삶에는
목적지가 없습니다.
영원히 순환하는
둥근 곡선 위에서는
어디에도 종점은 없습니다.
신은
봄이고
여름이며
가을이고
겨울입니다.
씨앗도
뿌리도
줄기도
가지와 잎사귀
꽃과 열매도
모든 것이 다 신입니다.
육체와 영혼
전쟁과 평화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모두 다 신의 일입니다.
장구한 세월 속에서
수많은 삶을 거쳐 가는
둥근 곡선 전체가
신이고
목적지이며
종점입니다.
신의 눈빛은
전체를 바라봅니다.
신은
가난한 이들에게도 임하지만
부자들에게도 임합니다.
힘없는 이들의 편이기도 하지만
힘 있는 이들의 편이기도 합니다.
신의 품속에는
모두가 다 들어갑니다.
선량한 이들도 신의 자식이고
그렇지 못한 이들도 신의 자식이며
깨달은 이들도 신의 백성이고
어리석은 이들도 신의 백성입니다.
어둠과 밝음은
서로 다른 두 갈래 길이 아닙니다.
어둠은 밝음의 반대편이 아니라
빛의 모자람과 부재일 따름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인 신에게서 출발하여
돌고 돌아
다시 하나인 신에게로 돌아옵니다.
신의 손길은
전체를 어루만집니다.
신은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
사랑과 미움
희망과 절망을
골고루 감싸 안고
모든 영혼에
생명의 비를 내립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미소 지으며
세상을 적시고 있습니다.
신은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미래란 원래 없는 것이기에
다가올 어느 곳에서
휴식하며 기다리고 있는
그런 신은 없습니다.
신에게 다가가려면
순간에 충실하십시오.
알아주는 일이건
알아주지 않는 일이건
순간에의 하나 됨은
신에게 이르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신은
모든 곳에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늘 위에만 있는 것은 신이 아닙니다.
성전과 사원에만 있는 것도 신이 아닙니다.
신은
모든 차원의
온갖 존재를
가장 큰 것에서
가장 미천한 것에 이르기까지
두루 포함하기에
모든 것은
신의 거주처이며
신의 얼굴입니다.
신을 사랑하려면
사람들을 사랑하고
신에게 경배하려면
사람들에게 경배할 것이며
신을 찬미하고자 한다면
하늘과 별과
물소리 바람소리
새들의 지저귐과
들에 핀 꽃들을
노래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자신을 소중히 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신입니다.
지금은
축제의 계절
깨어나야 할 시간
묵은 어둠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 벌려
뜨거운 가슴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하십시오.
깨어나는 시간에는
깨어나려는 노력보다
더 훌륭한 삶은 없습니다.
신을 왕이라면
사람들은 누구나 왕자입니다.
왕자 속에는
왕이 담겨 있으니
왕자는 모두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의 왕자를
두드리고 일깨워서
왕으로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거룩한 진리의 왕
‘빛사람’이 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합니다.
[복 본] 중에서...
출처: http://cafe.daum.net/sinmunmyung
(태얼랑의 복본)
체험에서 나온 글입니다.
우주보편의식으로서의 신은 타자로서 '만나지고' 하는
그런게 아닙니다.
나를 포함한 만물 속에 원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그 차원의 파동 속에서 느끼고 '체험되어지는' 것이지요.
인격적 신명으로서의 영체들을 신으로 본다면
그건 만나지는 거라고 봐도 되겠군요
위의 글은 강병천의 [복 본]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우주보편의식으로서의 신에 대한 체험 부분이(후기)
잘 묘사되어 있으니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책은 각 서점에 나와 있습니다.)
만물은 끝없이 되풀이 한다.
삶에는 목적지가 없다.
우리모두가 신이다.....
정말 그럴까요? 이들은 정말 깊은사색을 해본것일까요?
이걸 진심으로 당신이 체험을 했을까요?
자연은 신이 아니라 자연입니다.
신의 피조물... 그것을 통해 신의 에너지를 느낀다면 좋습니다.
하지만 자연은 신의 창조적부분일뿐 신이 아닙니다.
인간도 그렇습니다.
당신은 남의 마음을 알수가 있습니까?
아니 타인이 당신의 속마음 깊은곳을 볼수 있습니까?
인간이나 자연.. 우주, 그러한 신의 창조적 부분, 부분들 모두가 하나로 뭉쳐진것
그분이 신일진대, 대체 어떻게 인간이 신이란 말입니까?
그런체만 하면 그게 신입니까? 껍대기이지.....
그껍대기 안에 상식적으로 인류의 모든부분부분들이 뭉쳐져 하나가 될수있습니까?
당신은 우주를 창조할수있습니까?
당신은 독수리가 보는 시야와 그부리를 깍아내는 시기를 아십니까?
타조가 왜 자신의 알을 내팽겨쳐두는지 아십니까?
바다가 왜 모래위를 넘어가지 못하는지 아십니까?
중력의 힘이 무엇이관대, 땅에 우리를 붙어있게 하는지 아십니까?
당신은 남자답게 일대일로 창조주를 대면할 자신이 있습니까?
그분에게 진정 나는 신이다, 삶에는 목적지가 없다, 만물을 끝없이 되풀이된다라 할수 있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이모든 말은 스스로의 무지와 어리석음과 교만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신을 만났다고 하지 마십시요... 신을 진정 사랑한다면.....
그저 신을 느꼈다고 할수밖에 없는것들로 신을 망령되게 일컫지 마십시요... 그분은 존귀 그자체십니다.
우리는 신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God. 유일신(우주만물심).)이죠. 예수교인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2천 년간 믿어왔으나 그것에도 근본이 있음을 노아님과 예수교인들은 모릅니다. 그 신을 창조한 신이 내 마음 즉 우주심이란 것이죠. 우주만물은 우주심이 창조한 바고 우주심은 우주만물이 창조한 바입니다. 우리는 만드는 것 창조하는 것 근본이 되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없습니다.
노아님이 아직 예배당 귀신에게 설움을 안 당해봐서 잘 모르시는군요. 그들을 창조하지 않으면 반드시 설움을 당한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둘째 가라면 서러운 것이 인생입니다. 자신이 신인데 왜 신을 섬기시나요? 당신이 최고위입니다. 당신이 최고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유일신의 신성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는 나 혼자만 있으므로 명령할 필요도 없고 거짓도 없고 누설도 되지 않고(들킬 염려도 없고) 설움을 당할 필요도 없고 뭔가를 섬길 필요도 없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악도 없고 실수도 없고 죄도 미움도 없습니다. 무인적막귀신세계죠. 당신은 귀신으로서 만물을 다스립니다.
당신이 지금과 같이 예수신을 섬긴다는 것은 그를 정말로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몸의 일부가 되지 않으면(예수신이 우주전체는 아니니까. 부처신도 있고 조상신도 있고 나무도 있고 하늘도 있고 하니.) 그것을 죽이는 것이고 미워하는 것이고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그 몸이 내 몸이므로 가져야 하는데 그것을 가지지 않으면 내가 손해인 것입니다.
보편적이란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에는 종교가 많으므로 그들이 자기들이 제각기 최고라 하므로 무엇을 최고라 할 수 없습니다. 또, 노아님의 의견과 여명의북소리님과 저의 의견이 다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신(최고)입니다. 이것을 다 창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유일신입니다. 진정한 유일신인 하나님 부처님 알라죠. 이름만 다를 뿐 유일신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노아님도 내가 창조했고 여명의북소리님도 내가 창조했고 나도 내가 창조했고 기독교도 유태교도 천주교도 이슬람교도 불교도 유교도 강증산계열종교도 무당도 비종교도 달도 지구도 공기도 공간도 별도 은하도 악인도 선인도 내가 창조했습니다.
세상의 아무리 만만찮은 존재라도 그 존재 속에 들어가 조종하는 건 못 당해냅니다. 기독교가 높아보이지만 신이 그 안에 들어가서 창조해(돼) 버리면 게임 끝입니다. 게임은 이렇게 이기는 겁니다. 이것이 성도(예수) 안에 예수(성도)가 들어가 “(서로를 먹지 못하여) 피투성이가 된 성도(예수)”를 먹는 것이지요. 부위부강(夫爲婦綱) 부위부강(婦爲夫綱)으로서 여자는 제 주장을 굽히지 않고 남자는 제 주장을 굽히지 않지만(원수, 고수, 분리, 부조화, 상살상사) 여자는 남자 말을 다 듣고 남자는 여자 말을 다 듣는 것입니다(은인, 교통, 통일연합, 화합, 상생상생).
노아님께서는 3차원보다 높은 5차원이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당신은 3차원에 살고 계십니다. 세상사람들이 조화로다 조화로다 말은 해도 조화세상을 몰라보듯이, 중들이 색즉시공 공즉시색 말은 해도 뜻을 모르듯이.
제가 지금 글을 쓰면서 뭘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알송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터넷방송을 듣고 있습니다. 이거 힘들거든요. 한국사람 힘듭니다. 한국사람은 독한 데가 있어요. 그런데 그걸 내가 하고 있습니다. 내가 노래를 창조하면서 듣고 있어요.
내가 창조를 하면 기독교인도 중들도 못 깨달은 세상사람들도 상승한 인간들도 다 창조하나, 내가 창조를 못하면 그들을 다 창조하지 못합니다. 전자는 만사가 불평불만이고 후자는 만사가 만족이지요. 노아님이 예수를 창조하지 못하여 예수를 미워하는 것도 내가 창조한 것이지요. 인자무적은 천하무적입니다.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요. 뭘 해도 내가 그를 조종하는 것이니까요. 내 몸과 마음도 내가 창조합니다. 이 원수 같은 나를 이겨야 됩니다.
당신은 왜 고난받는지 아십니까?
당신의 슬픔과 고통과 아픔은..... 그 분노와 원망과 불평은 대체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것이 우주심입니까? 당신의 최고위입니까?
성경엔 기독교를 만들라는 말이 없고, 그대는 고작 100년도 못살면서, 감기에 벌벌 떨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것에 눈물흘리고, 슬퍼하고,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자유의지의 주체가 나 개인이 아니라 우주전체임을 다시 한번 알았습니다(전에도 안 적이 있음). 이렇게 내가 우주와 하나가 되어야 종교성을 벗어낫다 할 수 있겠지요. ― 기존의 종교교리는 우주전체를 구원하려는 생각은 못하고 일개인의 복이나 빌고 일개인의 선이나 가르쳤죠. ―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서러워하고 괴로워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자유의지의 나가 나 개인이 되면 아무래도 뭔가가 불안하고 답답하며 자유롭지 못한 기분이 들어요. 진리는 자유로운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말이죠(자유의지의 자유와 뜻이 다름). 바로 위 제 댓글은 그런 경지에서의 댓글이므로 좀 불안한 구석이 있어요. 그것을 당신이 간파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렇지만, 기독교를 창조하는 것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내가 자유로워지면 기독교를 창조하고 그렇지 못하면 기독교를 창조하지 못하지요.
잊고 있었는데 좋은 글들이 올라와 있어 반갑습니다.
여러 회원님들께서 관심을 가지고, 각자 다른 생각과 차원들에 입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을 갖고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 유익한 대화 나눠주어 감사합니다.
슬픔과 고통, 분노와 원망도 우주심의 일부입니다.
존재하는 어떤 현상도 '하나'인 우주심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건 없습니다.
다만, 우주는 다차원적 일원이므로 차원마다 그 존재양상이 다르고, 슬픔과 고통, 분노와 원망의 차원도
비록 실체가 없는 허상이긴 하지만, 빛을 빛으로서 인식하게 하여 다차원적인 영적 진보를 해 나가게
만드는 전제와 동력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이기에,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역시 참으로 오묘한
섭리가 아닐 수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런 현상들은 분명히 낮은 자아, 가아, 즉 허상으로서의 영역이므로, 우리 속에 내재한' 진아'가
드러나게 되면, 또는 가끔씩이라도 진아에 대한 경험이 쌓이다보면, 그 모든 방황과 고통이 실재하지
않는 것임을 깨닫고, 한바탕 큰 웃음을 터뜨리게 됩니다. 그 이후로는 여간해선 그런 차원에 미혹되지
않게 되지요.
우주심, 즉 우주보편의식에 대한 체험은 잘 살펴보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언제 어디서건 항상 일어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각 종교인들이 살아 숨
쉬는 진리의 알맹이를 모르고 도그마에만 빠져 있다보니, 사람들에게 그것을 집어서 가르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고 있는데 어떻게 남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자면, 경전 중의 경전인 천부경의 '하나'가 그것을 말함이고, 불교 고승들의 '선' 체험이 그것이고,
인도 구루들의 명상삼매가 그것이고, 그리스도가 선포한 진리의 참의미가 그것이고, 순간순간 삶에 몰입
하며 깨어 있는 이름모를 많은사람들의 경험들이 그러한 것인데도.......
역사 이야기를 한마디 해 볼까 합니다.
참고로 저는 국내외 어떤 종교단체에도 속해 있지 않은 사람임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아래 내용은 이미 많은 학자들의 고증에 의해 밝혀진 것으로, 관련 사이트에서 옮겨와 요약한 것
입니다.
......
오랜 상고시대서부터 전해오는 민족 최고의 경전인 '천부경'의 기본정신이 [하나], 즉 'ONE'입니다.
그 오랜 이전 시대에 이미 우주심, 즉 우주보편의식을, 다른 어떠한 인격적 용어도 덧붙이지 않고,
깨끗하게 그냥 '하나'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야말로 하나님
그 자체의 원전이라 할 만 합니다.
이러한 정신으로 세상 문명을 주도해오다가, 환국시대 말기, 배달국시대 초기에 세계 각 지역별로
나뉘어 문명을 전파하게 되었는데, 그 중 우리 연방국 중의 하나였던 '수밀이'국이 중동지역, 오늘날
의 이란,이라크 지역으로 이동하여 '수메르문명'을 세우게 됩니다.
당연히 수메르의 기본정신은 우리민족 고유의 사상으로 그 바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일차로,
아눈나키, 여호와 등으로 일컬어지는 외계세력의 개입이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논외로 생략-
이들은 본연의 진리와는 거리가 있는 존재들로, 지상의 사람들을 자신들의 유전학적 실험 대상
으로 삼았고, 자기들을 신으로 숭배하게 하기 위하여 인격적 개념의 신관을 강조하고, 거기에
자신들을 대입하여 강제적으로 사람들에게 주입시켰습니다.(우주보편의식을 대리하여 우주를
다스리는 여러 차원의 개별 인격적 존재들도 실재하지만, 이들은 그것을 사칭한 것임)
하여, 수메르문명은 한민족 고유의 신관과 외계에서 개입한 신관이 뒤섞인 채로 히브리를 통해
서구로 전해졌는데, 서구문물의 앞선 발달로 인해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그 폐해를 받아오고 있습
니다. 창세기 등을 살펴보면, 분명히 한민족 고유의 우주보편적 신관이 강하게 느껴지는데, 정작
용어들은 개인적 인격적 존재를 신으로 섬기는 내용으로 덧칠되어, 교리 자체가 혼란과 모순 그
자체입니다. 정상적이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으로, 아마 지금
까지 지구상의 종교들 중에 정신병자들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종교가 된 근본 이유인 것으로 분석
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차로,
그보다 더 큰 혼란은, 구약과 신약을 한 데 묶어 그 전체를 기독교라 하여 교리를 만든 데 있습니다.
진리에 입각한 원래의 신관과 불순한 세력들이 개입시킨 잘못된 신관이 뒤섞인 채 전해지고 있는
유대교, 즉 구약의 신관에 대해 혁명을 일으킨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관입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우주보편의 하나님을 선포했고,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신이 임하고 있으며, 모두가 신성한 신의 표현
그 자체임을 설파했던 것입니다.
즉, 신약은 구약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한 것이기에,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한 구약의 사제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십자가 사건의 본질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말하자면 구약의 바탕에 놓여 있는 우주보편의식
-천부경, 삼일신고 정신과 맥을 같이하는- 의 원 뜻을 되살리고, 불순하게 개입되어 있는 잘못된 내용들
을 혁파시키고자 한 것이 예수님의 의도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을 한 데 묶어 놓은 오늘날의
성경은, 한편으로는 그 안에 비록 진리에 입각한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큰 혼란과 모순의 근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삼차로는,
기독교가 로마시대 국교로 받아들여진 이후, 세속 권력의 논리와 결부되어, 초기 경전의 주요 부분들이
대량으로 누락, 배제, 왜곡, 날조됨으로 인한 것인데, 대표적으로 예수님의 10대에서부터 30대가 되기
까지의 기록들을 통째로 배제시켰고, 그 외 불교 등 동양사상과 맥을 같이 하는 많은 부분들이 의도적
으로 누락되었습니다. 그 숨은 의도는 인격신적 논리를 최대한 부각시켜 현실권력을 신격화시키는데
이용하고자 한 것으로, 이는 타락한 성직자들의 저차원적인 욕망과도 부합하여 카톨릭에 이어 개신교
까지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다행히 근대 이후, 숨겨져 있던 원본 성서들이 여러군데서 발굴되고, 채널러들이 아카샤영역(지구자기
장)에서 받아내린 내용들이 공개되어, 그동안 갈증을 느껴온 많은 뜻 있는 이들의 의문들을 풀어주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아마 여기 빛의 지구 회원님들도 대부분은 한두번 쯤 접해보았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
.......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기독교가 퇴조하고 있는가운데, 유독 한국에서만은 크게 번성하는 원인에 대해
서도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고대시대에 우리민족의 근원걱 사유체계를 담고 있는 가르침이 수메르와 히브리를 통해 서방
으로 나갔다가, 그 내용이 비록 많이 왜곡되고 변질된 채로 다시 들어오긴 했으나, 그 저변에 흐르는
정신은 원래 한민족이 추구한 것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한민족의 근원적 심성에 부합하여 일어난
현상으로 봅니다.
(이 땅에서 번성한 불교, 유교 등도 마찬가지 이유임)
때문에, 혹자는 기독교가 터무니없게도 우리민족 고유의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무단 도용하고 있다는
표현도 하지만, 역사를 공부해보면 사실은 원래의 자기 용어를 제대로 찾아 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문패는 제대로 찾아 달았는데, 족보가 엉망진창으로 되어 있어서....
오늘날 이러한 기독교의 역사적, 사상적 뿌리를 인식하여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고, 배제된 내용들을
복원하는 일이 시급한데도, 그리고 그리해야만 기독교가 진정한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을텐데도,
지금으로선 도저히 그 가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형식과 제도로서의 종교를 넘어, 삶 속에서 살아 숨쉬는 참진리의 시대가 목전에 다다랐기 때문에,
도그마의 차원은 이대로 사양화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단 기독교뿐만이 아니라 동서양에
횡행해 온 모든 제도로서의 종교들이 처할 운명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네^^* 말씀잘하셨습니다.
실체와 허상, 그대가 이야기하는 우주심, 우주보편의식은 실체의 체험이 없기에 허상에 가까운 겁니다.
그대가 말하는 우주심이란게 존재한다고 하면, 우주가 만들어진연후가 되지요? 정확한 명칭은 창조주라 해야 맞습니다.
또한 우리는 실체의 체험으로 인해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 아껴주고 보듬어주며, 서로 웃고울며, 때리고 맞기까지 하는데
그러한 슬픔과 고통과 분노와 원망이 허상이라구요? 그렇게 봐야 한다구요?
빛이 있기에 자연이 푸르고, 에너지가 넘치며, 낮이 되고 밤이 되는데..... 이빛의 속성이 실체험할수 있는게 아니라
인식만 되는 허상입니까?
이 빛이 영적진보의 전제와 동력으로써의 기능일 뿐이라고요?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죽이는 빛이? 끈어나눌수도 없고 시간과 공간을 꿰뚫는 빛이? 창조주의 빛이 말입니까?
당신은 고타마싯달타의 유언인 소승열반경을 읽어보셔야 스스로가 무엇을 왜곡하고 있는지를 깨달을것입니다.
석가도 질서에 대해 법과 율에 의지하라는 당부와, 게으르지 말고 자기 자신과 법을 등불로 삼으라는 아난에 대해 충고합니다.
그리스도도 율법을 폐하러 온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기위해 왔다고 하며, 율법과 성령에 자신을 환란에서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천부경도 조화의 원리, 우주창조의 이치에 따라 우주만물을 비롯됨’이 있게 하였다면, 또한 되돌아옴이 있게 하여야 할 것이고, 비롯됨이 없다면, 마침도 있을 수 없다는 우주의 보편성이 아니라 절대성을 자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모두 창조주를 만난 실체함의 체험을 통해, 하나로 뭉트그려 표현하는게 아니라 직시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남의 허울과 대들보만 보려마시고, 안내자가 되려하신다면, 정확한 그자리, 그위치에 서서 안내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반화를 시키려는 개념에 불과할 뿐인 보편성이나, 독립성을 무시한 통합적인 마음을 들어 신을 설명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실체로 체험하지 못한 허상이라는 증명입니다.
스스로 천부경의 "하나됨"을 체험했고, 불교의 선 禪 체험을 명상과 실천을 해왔으며, 십계명의 율법속에 있다면,
전능한 창조주를 만난이들처럼, 그가 만든 우주심을 허상으로 말하고, 보편성운운 하지는 않을것입니다.
많은 선배님들이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일이, 신을 뭉뚱그려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잡하기만 하고, 자꾸 뭔가를 덪붙이고 만들고 흡수하고 거대한 쓰레기 뭉치만 굴리는 쇠똥구리가 보입니다.
아주단순하게 "사랑" "빛" "선"인 창조주를 2백여개의 종교와, 3백만여개가 해설의, 6억만개의 미사여구와 단어를 가지고 말하니
대체 누가 창조주를 바로 알고, 만나는 길을 찾을수가 있겠습니까?
2~5천년전 창조주를 만난 그들이, 그 제자들에게 적어준 그대로, 그 내용대로만 보면 어디가 덧납니까? 자기생각만 빼면되거늘...
이신은 당신이 믿고싶어하는 신입니다...
신에 대한 체험이 없는...
누구나가 바라고, 누구나가 그럴것이다 믿고싶은....
그런 신입니다.
주변에 정말... 신을 만난분을 찾아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