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680
우선 여기오시는분들이 모두 윤회설을 믿는 다는 가정하에 글을 올립니다
단순한 앎과 깨달음의 경계는 물론 여기 윤회에도 해당되는데
깨달음이란 역시 쉽게 정의하자면
선생이 칠판에다 적고 혼자 떠들어대는 수학 문제를 스스로 풀게 될 줄 알게된 학생의 느낌과 매우 흡사한 것이라봅니다
윤회를 단지 "아. 사람은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구나" 처럼 쉽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윤회를 정말로 깨달으면 친한친구나 배우자 심지어는 부모님이 사망하셔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 것이며,(제 주변에 죽은 사람이 없어서 저는 아직 제 경지를 모릅니다) 그동안 자신이 아닌 외부 세계에 바쳐왔던 자신의 신념이나 인생관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크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수련하는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중 하나는 역시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영혼이 에고라는 것이 없다는 가정하에 판단심이나 분별심 역시 없을 경우
살아있는 도중 아무리 본인의 머리속으로 "나는 (어쨌건) 절대로 이 괴로운 세상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는 등 확고한 자기 개성을 가지고 있어도
순수 상태에 돌입한 후 다시 지구로 태어나야할 티클만큼의 동기가 있다면, 정말 아무런 일말의 주저없이 곧바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모든 기억을 지운채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단순한 앎과 깨달음의 경계는 물론 여기 윤회에도 해당되는데
깨달음이란 역시 쉽게 정의하자면
선생이 칠판에다 적고 혼자 떠들어대는 수학 문제를 스스로 풀게 될 줄 알게된 학생의 느낌과 매우 흡사한 것이라봅니다
윤회를 단지 "아. 사람은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구나" 처럼 쉽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윤회를 정말로 깨달으면 친한친구나 배우자 심지어는 부모님이 사망하셔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 것이며,(제 주변에 죽은 사람이 없어서 저는 아직 제 경지를 모릅니다) 그동안 자신이 아닌 외부 세계에 바쳐왔던 자신의 신념이나 인생관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크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수련하는 사람들의 최고 관심사중 하나는 역시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영혼이 에고라는 것이 없다는 가정하에 판단심이나 분별심 역시 없을 경우
살아있는 도중 아무리 본인의 머리속으로 "나는 (어쨌건) 절대로 이 괴로운 세상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는 등 확고한 자기 개성을 가지고 있어도
순수 상태에 돌입한 후 다시 지구로 태어나야할 티클만큼의 동기가 있다면, 정말 아무런 일말의 주저없이 곧바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모든 기억을 지운채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2005.07.18 14:23:09 (*.69.185.48)
>>카르마에서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에는 이 세상을 고통스런 것으로 보는 고정관념이 담겨 있습니다. 선생들은 카르마 자체를 벗어나야 한다고는 하지 않고 그 집착에서 오는 어리석음과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것이 윤회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와전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 이건 초점이 약간 빗나간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위의 말은 카르마라는 것을 이 세상이라는 주변 환경적 관점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카르마란 그게 아닙니다. 주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내부에 축적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카르마를 짊어진 인간들이 만드는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고통스런 것으로 보는게 정상입니다. 부처가 발심한 동기가 바로 그런 건데요.
선생들이 카르마 자체를 벗어나야 한다고는 하지 않고 그 집착에서 오는 어리석음, 미망에서 벗어나라고 했다는 것이 나중에 윤회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와전되었다는 말도 이상하군요. 집착이라는게 카르마에 집착한다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네요. 어리석음, 미망이라는 것도 카르마의 결과물인데 무슨...
카르마를 벗어난다는 것과 카르마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 이건 초점이 약간 빗나간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위의 말은 카르마라는 것을 이 세상이라는 주변 환경적 관점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카르마란 그게 아닙니다. 주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내부에 축적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카르마를 짊어진 인간들이 만드는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고통스런 것으로 보는게 정상입니다. 부처가 발심한 동기가 바로 그런 건데요.
선생들이 카르마 자체를 벗어나야 한다고는 하지 않고 그 집착에서 오는 어리석음, 미망에서 벗어나라고 했다는 것이 나중에 윤회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와전되었다는 말도 이상하군요. 집착이라는게 카르마에 집착한다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네요. 어리석음, 미망이라는 것도 카르마의 결과물인데 무슨...
카르마를 벗어난다는 것과 카르마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2005.07.18 15:25:08 (*.237.174.205)
영혼들은 최초엔 근원과 닿아있다고 하죠.
영혼들은 삼차원을 졸업하기 위해서 지구에 옵니다...졸업 이전엔 학습이 있습니다.
중간단계를 무시하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없습니다.
님이 하는 말들은 특정 종교나 가르침에서 하는 말입니다...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것이죠.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우연이 아니며 필연적인 무엇이 있습니다...우리는 우연이 아무런 보살핌도 계획도 없이 땅 바닥 미물에서 부터 태어나서 진화하는 존재입니까...
최초엔 모든 영혼은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보는 카르마란 단순히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말합니다...사고가 원인이 되어 자기 주변 현실을 창조하는 과정으로서 말하는 것입니다...단어는 쓰임에 따라 문맥으로 판단하시고. 특정 종교의 의미만이 아니겠죠...(차라리 그들이 사용하는 어휘를 사용하여 그 종교의 고정관념을 흔들고 싶을 따름입니다.)
우리 인간이 인간의 육신인체로 승천하는 등 깨달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것을 지향하는 것 또한 말리지 않습니다...궁극에는 그렇게 가는게 좋겠지요.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오는 꿈을 품고 변모해가는 것...진화라는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한번에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고 지상에서 염원한 일이 걸립니다....
우리는 그동한 생활이라는 것도 병행 해야 합니다...
무직찹 상태에서 오히려 이러한 생각의 자기 법칙을 잘 관리하고 활용하여 각자 맡은 분야에서 이상을 실현하는 삶을 사는 것도 그가 지상에 온 이유로선 옳은 일입니다...
카르마를 벗어나는 경지는 오히려 카르마란 벗어나고자 하는 관념조차 없이 그것을 포용하는 경지이죠...부처는 고행 수련의 극한에 가서야 그것이 부질 없음을 깨달았고, 세상을 포용하기 시작했을 때야 비로서 세상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카르마를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하는 한 아직은 그가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도 되죠.
우리 자신이 신이요 부처라 했을 때, 지상의 삶도한 신이 만든 것이요, 부처가 만든 것입니다. 과연 우리 속에 깃든 신이 이 모든 것을 주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지상의 삶은 놀이와 학습의 마당이라고 합니다.
지상의 삶은 벗어나야 되는 대상이 아니며 그 깨달음이란 과정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으인 도구로 활용하는 마당이 되어야 하죠....
그가 어느 하나에 경도되어 다른 하나를 무엇을 저항하고 있는 한 그는 그 만큼 축소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정 종교의 용어나 체계는 여기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차라리 픽션으로 대하고 가볍게 넘어가소서....
영혼들은 삼차원을 졸업하기 위해서 지구에 옵니다...졸업 이전엔 학습이 있습니다.
중간단계를 무시하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없습니다.
님이 하는 말들은 특정 종교나 가르침에서 하는 말입니다...그것은 그것대로 좋은 것이죠.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우연이 아니며 필연적인 무엇이 있습니다...우리는 우연이 아무런 보살핌도 계획도 없이 땅 바닥 미물에서 부터 태어나서 진화하는 존재입니까...
최초엔 모든 영혼은 이미 완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보는 카르마란 단순히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말합니다...사고가 원인이 되어 자기 주변 현실을 창조하는 과정으로서 말하는 것입니다...단어는 쓰임에 따라 문맥으로 판단하시고. 특정 종교의 의미만이 아니겠죠...(차라리 그들이 사용하는 어휘를 사용하여 그 종교의 고정관념을 흔들고 싶을 따름입니다.)
우리 인간이 인간의 육신인체로 승천하는 등 깨달음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것을 지향하는 것 또한 말리지 않습니다...궁극에는 그렇게 가는게 좋겠지요.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오는 꿈을 품고 변모해가는 것...진화라는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한번에 이루어지는 일도 아니고 지상에서 염원한 일이 걸립니다....
우리는 그동한 생활이라는 것도 병행 해야 합니다...
무직찹 상태에서 오히려 이러한 생각의 자기 법칙을 잘 관리하고 활용하여 각자 맡은 분야에서 이상을 실현하는 삶을 사는 것도 그가 지상에 온 이유로선 옳은 일입니다...
카르마를 벗어나는 경지는 오히려 카르마란 벗어나고자 하는 관념조차 없이 그것을 포용하는 경지이죠...부처는 고행 수련의 극한에 가서야 그것이 부질 없음을 깨달았고, 세상을 포용하기 시작했을 때야 비로서 세상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카르마를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하는 한 아직은 그가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도 되죠.
우리 자신이 신이요 부처라 했을 때, 지상의 삶도한 신이 만든 것이요, 부처가 만든 것입니다. 과연 우리 속에 깃든 신이 이 모든 것을 주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지상의 삶은 놀이와 학습의 마당이라고 합니다.
지상의 삶은 벗어나야 되는 대상이 아니며 그 깨달음이란 과정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으인 도구로 활용하는 마당이 되어야 하죠....
그가 어느 하나에 경도되어 다른 하나를 무엇을 저항하고 있는 한 그는 그 만큼 축소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정 종교의 용어나 체계는 여기서는 쓸모가 없습니다... 차라리 픽션으로 대하고 가볍게 넘어가소서....
2005.07.18 18:01:26 (*.69.185.48)
뭐 별로 지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용어를 기존의 뜻과 좀 다르게 사용하는 것은
개인적인 자유에 속하겠지만, 그런 경우는 토론하는 게시물에는 적절하다고 보기엔
어렵겠지요. 우선 의사소통이 원활치 못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고, 자기 나름대로의
개념을 적용하여 논리를 전개하다 보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도
잘 안 되기도 하지요. 위의 글이 그렇습니다. 제 의도를 잘못 파악하는 점이 있어서
또 답글을 달게 되는데, 카르마를 벗어나야 된다는 것과 지상의 삶을 벗어나야 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을 동일시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는데,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지상의 삶은 카르마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 주목적인데,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방법론에 속하는 문제이죠. 제 견해는 방법론은 전혀 언급한 적이 없고
개념의 위상과 의의만을 언급한 것입니다. 님이 말한 대로 삶이란 깨달음이란 과정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도구로 활용하는 마당이 되어야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런데 적극적인 도구로서 여러 방편과 수행론이 필요하고 그것들의 방향과 목적이
카르마의 해소에 궁극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님의 말대로 태초에 완전한 영혼으로 왔었지만, 어떤 시기부터 잘못된 창조로 인해
카르마를 짊어지게 되어 수없이 윤회하다가 드디어 지구를 졸업하게 되는 것이죠.
PS) 저는 카르마의 개념을 특정종교의 개념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자유에 속하겠지만, 그런 경우는 토론하는 게시물에는 적절하다고 보기엔
어렵겠지요. 우선 의사소통이 원활치 못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고, 자기 나름대로의
개념을 적용하여 논리를 전개하다 보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도
잘 안 되기도 하지요. 위의 글이 그렇습니다. 제 의도를 잘못 파악하는 점이 있어서
또 답글을 달게 되는데, 카르마를 벗어나야 된다는 것과 지상의 삶을 벗어나야 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을 동일시한 것처럼 기술하고 있는데, 전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지상의 삶은 카르마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 주목적인데,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방법론에 속하는 문제이죠. 제 견해는 방법론은 전혀 언급한 적이 없고
개념의 위상과 의의만을 언급한 것입니다. 님이 말한 대로 삶이란 깨달음이란 과정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도구로 활용하는 마당이 되어야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런데 적극적인 도구로서 여러 방편과 수행론이 필요하고 그것들의 방향과 목적이
카르마의 해소에 궁극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님의 말대로 태초에 완전한 영혼으로 왔었지만, 어떤 시기부터 잘못된 창조로 인해
카르마를 짊어지게 되어 수없이 윤회하다가 드디어 지구를 졸업하게 되는 것이죠.
PS) 저는 카르마의 개념을 특정종교의 개념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2005.07.19 00:55:35 (*.237.174.205)
감사합니다...
근원에 닿는 일과 현실의 창조는 다른 세계이지만 그 둘은 함께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무의식의 기억속에 쌓인 카르마를 정화하고 치유하는 것은 실천적인 문제인데,
치유의 첫번째 과정은 문제를 직시하고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일이 되겠죠...그럼으로서 소위 말하는 한을 풀어버리는 것 입니다. 하고 싶은 긍정적인 일을 하고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 것 보다 더 좋은 치유는 없겠쬬.
명상 과정을 실제적으로 보면 벗어나라는 말이 오히려 포용이죠...예를 들어서 우리는 무아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잡념을 제거하려고 무던히 애씁니다. 그런데 잡념은 제거하려고 하면 할 수록 더욱 생겨나죠. 하지만 마음을 바꾸어서 어느 하나의 편안한 심상을 사색하거나 그것을 냅두고 관찰하는 단계에 이르면 다른 것들은 스스로 소멸됩니다.
자기가 두려워 하는 것을 벗어나려고 억압하고 외면하려 하면 오히려 치유가 더 안된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커다란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되죠.
그리고 우리가 통상 부르는 카르마는 어디까지나 삼차원 시공간의 일어나는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다른 존재들이 보면 여러가지 다양하 에너지를 만날수 있는 이것이 삼차원이 위대한 이유입니다.. 카르마가 없으면 그만큼 변형의 기회도 없는 것입니다...정신공간대에서 활동하는 존재들에겐 이런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합니다...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한가지 에너지만으로 활동하나 지구인은 여러가지 에너지를 만날서 그것들을 누릴(겸험할) 변수가 크죠. 지상에서의 삶을 부러워 하는 것은 천사들인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장점과 보물들을 너무 모르고 있죠...
카르마나 윤회에서 벗어난 존재들은 삼차원의 시공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그들의 원인은 곧 결과(색즉시공 공즉시색?)이기에 카르마라고 부르지 않죠.
잘못된 과정이라는 것은 없다고 보고, 모두가 배움을 위한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편합니다.
아마도 고대의 반란 사건때문에 영혼과의 교류 능력을 잃어버린 지금의 지구 의식에 갇혀진 제한된 의식들을 말하지만 그것을 새로운 도전과 모험으로서 선택한것도 지구에 태어나기 전의 우리 영혼들이죠...영혼들이 스스로 창조하고 자신의 피조물인 환경의 주인이 되어 행동하는 것에 타의 잘못된 개입이란 사실없는 겁니다...
하여간 기존 지구 종교의 가르침(불교도 마찬가지)은 한쪽 측면의 가르침과 강박에 경도된 측면이 없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배 에너지에 우리를 끌어모으고 단속시키느라 우리의 자아의 선택권과 스케일을 그 만큼 축소시킨 경우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부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지금은 그 억압에서 다시 돌아오는 시기 치유의 시기인지도 모르죠.
우리가 세상을 부정한 것(핸디캡)으로 취급하고 혼란과 다툼 분리 전쟁들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창조한 피조물(현실)들과 우리 자신을 분리 이간시키는 것은 그들 마신이 그들 권력치세를 위해 원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각자 갈길은 존중하나 그들이 만든 종교는 몰입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죠...
뭐 소설이라고 봐도 좋습니다...종교들이 서로 싸우느라 아귀다툼을 하느니 각자 소설이라고 받고 취할 것만 취하고 넘어가는게 훨 현명하죠...^^;
근원에 닿는 일과 현실의 창조는 다른 세계이지만 그 둘은 함께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무의식의 기억속에 쌓인 카르마를 정화하고 치유하는 것은 실천적인 문제인데,
치유의 첫번째 과정은 문제를 직시하고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일이 되겠죠...그럼으로서 소위 말하는 한을 풀어버리는 것 입니다. 하고 싶은 긍정적인 일을 하고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 것 보다 더 좋은 치유는 없겠쬬.
명상 과정을 실제적으로 보면 벗어나라는 말이 오히려 포용이죠...예를 들어서 우리는 무아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잡념을 제거하려고 무던히 애씁니다. 그런데 잡념은 제거하려고 하면 할 수록 더욱 생겨나죠. 하지만 마음을 바꾸어서 어느 하나의 편안한 심상을 사색하거나 그것을 냅두고 관찰하는 단계에 이르면 다른 것들은 스스로 소멸됩니다.
자기가 두려워 하는 것을 벗어나려고 억압하고 외면하려 하면 오히려 치유가 더 안된다는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커다란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되죠.
그리고 우리가 통상 부르는 카르마는 어디까지나 삼차원 시공간의 일어나는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다른 존재들이 보면 여러가지 다양하 에너지를 만날수 있는 이것이 삼차원이 위대한 이유입니다.. 카르마가 없으면 그만큼 변형의 기회도 없는 것입니다...정신공간대에서 활동하는 존재들에겐 이런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합니다...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한가지 에너지만으로 활동하나 지구인은 여러가지 에너지를 만날서 그것들을 누릴(겸험할) 변수가 크죠. 지상에서의 삶을 부러워 하는 것은 천사들인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장점과 보물들을 너무 모르고 있죠...
카르마나 윤회에서 벗어난 존재들은 삼차원의 시공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그들의 원인은 곧 결과(색즉시공 공즉시색?)이기에 카르마라고 부르지 않죠.
잘못된 과정이라는 것은 없다고 보고, 모두가 배움을 위한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편합니다.
아마도 고대의 반란 사건때문에 영혼과의 교류 능력을 잃어버린 지금의 지구 의식에 갇혀진 제한된 의식들을 말하지만 그것을 새로운 도전과 모험으로서 선택한것도 지구에 태어나기 전의 우리 영혼들이죠...영혼들이 스스로 창조하고 자신의 피조물인 환경의 주인이 되어 행동하는 것에 타의 잘못된 개입이란 사실없는 겁니다...
하여간 기존 지구 종교의 가르침(불교도 마찬가지)은 한쪽 측면의 가르침과 강박에 경도된 측면이 없지 않은게 사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배 에너지에 우리를 끌어모으고 단속시키느라 우리의 자아의 선택권과 스케일을 그 만큼 축소시킨 경우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부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지금은 그 억압에서 다시 돌아오는 시기 치유의 시기인지도 모르죠.
우리가 세상을 부정한 것(핸디캡)으로 취급하고 혼란과 다툼 분리 전쟁들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창조한 피조물(현실)들과 우리 자신을 분리 이간시키는 것은 그들 마신이 그들 권력치세를 위해 원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각자 갈길은 존중하나 그들이 만든 종교는 몰입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죠...
뭐 소설이라고 봐도 좋습니다...종교들이 서로 싸우느라 아귀다툼을 하느니 각자 소설이라고 받고 취할 것만 취하고 넘어가는게 훨 현명하죠...^^;
2005.07.19 01:29:52 (*.237.174.205)
'와전'=지구 종교의 우상화 체계화. 지식이나 개념에 갇혀있는 것은 일종의 규칙에 보조를 받는 삼차원 지구인의 특성. 이것을 타계하는 것이 깨달음, 영지적인 눈이다.
'카르마'=원인과 결과의 법칙,자기 사고나 감정 행위가 원인이 되어 전생에서나 현생에서나 자기 주의 현실(피조물, 환상)을 창조한다.
'이미 완성된 영혼'=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난다.(천부경)
우주는 이미 완성되어 있고 그 계획을 직접 창조주 하나님이 눈으로 보기 위해 실제 세상(환상)을 구성하며 실험하는 것이다...그 세세한 부분은 우리 몸과 행위을 통하여 창조한다. 이미 있는 깨달음, 이미 있는 계획에 대한 실천적인 겸험이다.
'카르마'=원인과 결과의 법칙,자기 사고나 감정 행위가 원인이 되어 전생에서나 현생에서나 자기 주의 현실(피조물, 환상)을 창조한다.
'이미 완성된 영혼'=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난다.(천부경)
우주는 이미 완성되어 있고 그 계획을 직접 창조주 하나님이 눈으로 보기 위해 실제 세상(환상)을 구성하며 실험하는 것이다...그 세세한 부분은 우리 몸과 행위을 통하여 창조한다. 이미 있는 깨달음, 이미 있는 계획에 대한 실천적인 겸험이다.
선생들은 카르마 자체를 벗어나야 한다고 는 하지 않고 그 집착에서 오는 어리석음과 미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것이 윤회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와전되었는지 모를일입니다. 윤회자체에서 벗어나는 수행이라고 해도 그것은 우리가 선택 할수 있는 많은 것 중의 하나일뿐이죠.
정말로 윤회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은 삼차원의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죠...그는 이승 사람이 아닙니다. 집착에서 벗어나 윤회를 유동적으로 즐기고 다루고 포용할 줄 아는 능력 그럼으로서 한층 성숙하는 단계...그것이 현실에서 윤회(카르마)를 벗어나는 경지이겠죠...카르마에서 벗어난 다는 말은 카르마에서 벗어난다는게 아니라 카르마에서 굴레(지배)에서 벗어나는 것, 그럼으로 그 원리를 알고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