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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경축 5.13] 고생 끝에 낙이 오다


글/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위대한 사존의 60탄신일에 즈음하여 이 글을 삼가 생신 축하 선물로 드립니다. 아울러 인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파룬따파를 알게 되어서 나와 마찬가지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파룬따파 중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하는 바입니다.


1. 고난의 가정

나는 금년에 47살이고 동북의 한 평범한 농민 집에서 태어났다. 형제 자매가 모두 여섯이었고 어려서부터 부모를 도와 동생들을 돌보느라 친구들과 놀 사이도 없었다.


아버지는 마음씨가 착하긴 했지만 성격이 조급하고 술을 잘 마셨다. 내가 어릴 때부터 부모는 늘 싸웠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늘 매를 맞았다. 매번 그들이 싸울 때마다 나는 겁에 질려 동생들과 함께 방구석으로 피해 있었고 가슴이 계속 두근거렸다. 뒤집혀진 밥상, 아수라장이 된 집안을 보면서 왜소한 나는 물건을 바로 놓을 수도 없었고 말릴 수도 없어 그저 처참하게 외칠 뿐이었다. “그만 때려요, 아빠, 엄마를 때려죽이겠어요!” 하지만 술에 푹 취한 아버지는 아예 듣지 않았고 어떤 때는 우리까지 발로 찼다.


부모님의 끝없는 싸움은 내 정신을 늘 긴장하게 만들었고 하루 종일 마음이 조마조마 해서 정신이 곧 붕괴될 것 같았다. 어떤 때는 엄동설한인데도 바깥에 달려나가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추위에 떨었다. 이러한 가정에 내가 그냥 있어야 할까, 아니면 죽어버려야 할까?


나는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친구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 그렇게도 부러웠다! 십대에 나는 늘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생각했다. 난 어디서 왔을까? 무엇을 하러 인간 세상에 왔을까? 이 세상에 내가 있든 내가 없든 무슨 구별이 있을까? 나는 늘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몰래 울었다.


이런 가정 환경에서 나는 내성적인 성격을 양성했고 성격이 조급하며 쟁투심이 강하고, 나와 다른 의견을 듣지 않았다. 조금만 못마땅하면 죽을 생각을 했고 가정에 대해 몹시 반감을 가졌으며 늘 도망갈 궁리만 했다.


22살 때 다른 이의 소개로 나는 결혼을 했다. 나는 결혼을 하면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고 그 무서운 집을 피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으며, 더는 정신이 긴장되지 않는 아름다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잘못 생각했다. 막 불구덩이에서 벗어나자 또 다시 고해 속에 빠졌다.


2. 시댁의 원한

남편 집에는 모두 자식이 여섯이 있었는데 남편은 막내였고 집에는 또 이혼한 둘째 누나가 있었다. 결혼 두 달 후 남편이 큰 도박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소식은 나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아버지가 주정뱅이었는데 남편은 큰 도박꾼이라니, 내가 어찌하여 또 이런 가정을 만났단 말인가? 그야말로 호랑이의 아가리에서 벗어나자 또 이리 굴로 들어간 셈이었다!


날마다 남편은 아주 늦게 집에 돌아오곤 했다. 어떤 땐 도박하러 가지 않았는데도 나는 도박하러 간 줄로 알고 트집을 잡아 그와 싸웠다. 어머니께서 한 평생 업신여김을 당하고 그렇게 많은 매를 맞았는데 나는 절대로 어머니처럼 그렇게 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추호의 양보도 없이 날카롭게 맞섰다. 이리하여 내 성격은 갈수록 독단적으로 전횡했고, 포악하고 사납기 비할 데 없었다. 하지만 신체는 갈수록 엉망이 되어 전신이 무력하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남편과의 관계가 날이 갈수록 악화됐기에 시아버지, 시어머니도 나를 몹시 좋아하지 않았고 둘째 시누이는 집에서 늘 이간질을 했다. 늘 시어머니를 충동시켜 나와 싸우게 했고 남편과 이간질시켜 나와 이혼하라고 했다.


나는 딸 둘을 낳았는데 집안이 모두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괘씸한 것은 남편이 날마다 아주 늦게 돌아와서는 두 딸을 상관하지 않는 점이었다. 한 번은 셋째 시누이가 와서 나를 마주보고 말했다. “내 남동생이 정말 재간 있네, 등불을 켜 들고 찾았다는 색시가 계집애만 둘이나 낳다니!”

셋째 누나의 말을 듣던 남편은 한 편에서 “헤헤!”하고 냉소를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내 마음은 그 때 즉시 굳어져 그 자리에 넘어졌다. 나는 흐릿한 눈빛으로 셋째 시누이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네가 한 이 말은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두고 봐라, 난 꼭 너에게 복수하고야 말테다!’


1990년 8월 달, 둘째 딸이 8달이 됐을 때 남편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슴 아래가 감각이 없어졌는데 의사는 사지마비로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의 형제자매는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고 그를 보러 병원에도 오지 않았다. 병원에서 치료하는 5달 동안 나는 그를 돌아 눕히고, 몸을 닦아주며, 안마하고 물과 밥을 먹여주며, 대소변을 받아내며 알뜰이 보살폈다. 남편은 180cm가 넘는 키에 체중이 180여 근이나 된다. 나는 매번 그를 돌아눕힐 때면 먼저 침대 앞에 꿇어앉아 머리를 먼저 돌리고 다음에 가슴, 그 다음에 허리, 엉덩이, 다리를 옮겨 준다. 그의 신체 어느 부위도 모두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 번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야 했다. 나는 남편이 하루 속히 일어설 수 있기를 얼마나 바라고 있었는가, 집에는 아직 걸음마도 걷지 못하는 딸이 있었다.


나는 매 달마다 둘째 시누이에게 돈을 주면서 그녀가 시어머니를 도와 내 어린 두 딸을 돌보게 했다. 하루는 둘째 아주버님이 병원에 와서 트집을 잡으면서 이것도 틀리고 저것도 잘못했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내가 그의 동생이 입원해 있는 기회를 이용해 치료에 쓸 돈을 친정에 보냈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 그를 씹어 뱃속에 넣고 싶었다. 죽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죽을 수도 없었다. 아이들이 너무도 어리고 게다가 모두 딸들이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울분을 억누른 채 살 수밖에 없었다.


6달을 치료하고 나니 돈이 다 떨어졌다. 시아버지는 아들의 이런 꼴을 보면서도 1천여 위안이나 들여 70여세 되는 시어머니에게 커다란 금반지를 사주면서도 나에게는 한 푼도 빌려 주지 않았다.


내 손에는 돈이 없었고 남편의 병도 호전이 없었다. 의사는 치료할 가치가 없으니 집에 가라고 했다. 그래서 남편을 퇴원시킬 수밖에 없었다. 집에 와 보니 둘째 딸이 이젠 걸을 줄 알았는데 솜바지가 오줌에 젖어 있었고 솜저고리는 더럽다 못하여 반들거리고 있었다. 방안은 더럽고도 엉망이었다. 난로는 침실 중간에 들어갔고 바닥은 재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이 집이 왜 이 모양이 돼 버렸는가! 나중에 이웃이 하는 말이 둘째 시누이가 늘 도박에 빠져 아예 아이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남편을 잘 눕혀 놓은 다음 방안에 숨어서 몰래 울었다.


남편은 몸을 뒤척일 줄 모르므로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고, 나는 또 어린 두 딸을 돌봐야 했다. 열 몇 달 밖에 안 되는 아이는 날마다 떼를 쓰지만 시부모는 아예 상관하지 않았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내 몸 상태는 극도로 나빠졌다. 처음에는 며칠 동안 출근해 보려 했지만 결국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어머니가 아침 식사 후면 제 시간에 나가서 트럼프 놀음을 했기에 남편과 아이들이 밥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모진 마음을 먹고 내가 사랑하는 교사 직업을 그만 두고 집에서 남편과 어린 두 아이를 보살필 수밖에 없었다.


직장을 그만 둔 후 살아가기 위해 나는 시아버지를 도와 작은 음식점을 꾸렸다. 시아버지는 우리 가족이 공짜 밥을 먹고 있는 동시에 남편의 병을 치료할 때 빌려준 돈을 아직 갚지 않았으므로 나에게 봉급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음식점 수입은 그가 관리했고, 셋째 시누이를 종업원으로 고용하고는 정상적인 봉급을 주었다. 내가 뭐라고 더 말할 수 있겠는가? 수돗물이 중단됐으므로 나는 날마다 아주 먼 곳에 가서 물을 길어와야 했는데 1년 넘게 그랬다.


생활상 중임은 나를 눌러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들었다. 큰 아주버님네 일가는 우리 네 식구를 극히 배척했다. 날마다 정신과 육체적인 이중 압력을 감당해야 하는 나는 사는 게 정말 괴롭기 짝이 없었다!


매번 아주버님, 시누이들과 모순이 발생할 때면 나는 곧장 두 딸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 아이들 때문에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게 됐다고 원망했다. 한 번 화나서 애들을 때리기 시작하면 그 아이 둘은 문을 잠근다. 그러면 나는 창문을 부수거나 창문을 마구 잡아당겨 열고 들어가서 두 아이를 죽도록 때려 반나절이나 걸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또 그들을 끌어안고 통곡을 하곤 했는데 이런 일이 늘 발생했다.


나는 속으로 시댁 식구들이 미웠다. 밤이 깊어 조용할 때면 장차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복수할 것인가를 늘 생각했고 이러다 보니 불면증이 생겼다. 나는 시댁 사람들을 장부에 올리고는 딸들이 좀 더 큰 다음 그들 둘을 마음 좋은 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시댁 사람들과 함께 죽는 것으로 한꺼번에 그들을 처단해 버릴 생각을 했다!


3. 법을 얻어 신생

1996년 5월 7일, 이 날은 내 일생이 전환된 날이다. 그 날부터 나는 파룬따파의 수련의 길로 걸어가게 됐고 30여 년간 마음을 짓누르던 원망이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대법의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감수하게 됐고 예전의 혼돈 가운데서 깨어나게 됐는바 그야말로 기분이 상쾌했다.


시어머니와 은원을 선해(善解)하다

수련한지 한 달 됐을 때 하루는 둘째가 몹시 떼를 썼다. 집에는 먼 곳에서 온 친척이 있었으므로 나는 아이를 집 뒤에 있는 공터로 끌고 가서 혼내주려 했다. 바로 내가 꿇어앉아 아이에게 말하려 하는 때 갑자기 무슨 물건이 나에게 덮치는 느낌을 받았고, 나는 신기한 힘에 끌려 손을 쳐들어 머리를 보호했다. 이 때 열 근도 족히 넘을 두꺼운 시멘트 덩어리가 내 어깨를 때렸다. 시멘트 덩어리는 내 어깨를 찢으면서 무겁게 땅에 떨어졌는데 땅에는 구덩이가 파였다. 몸 뒤에서 나를 때린 사람은 뜻밖에도 시어머니였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또 땅바닥에 시멘트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만약 그 신기한 힘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시어머니의 그 흉악한 눈빛을 보면서 그녀와 시비를 따지려 하다가 ‘전법륜’에서 하신 사부님의 말씀 “때려도 맞받아 때리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는 법리가 생각나 나는 그녀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억지로 참으면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저녁에 연공장에 나가서 말하니 모두들 나에게 사람을 선하게 대하며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했다. 나는 이번 난은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신 것이므로 나는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하고 시어머니와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연공장에서 법공부를 마치고 나는 기쁘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 보니 온 집 사람들은 전투 태세를 갖추고 나와 ‘전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는 듯한 내 모습을 보고는 모두 멍하니 한 곳에 서 있었다. 이런 장면을 본 나는 그들을 보고 씩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 일도 없으니 돌아가 주무세요.”


나는 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만약 수련 전이었다면 시어머니가 나를 이렇듯 악독하게 대했으니 오늘 저녁은 아마 생사를 다투는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는 까닭에 나는 비로소 그들과 싸우지 않게 됐던 것이다.


셋째 시누이는 몇 년간 우리 집 식당에 출근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늘 늦게 오고 일찍 갔고, 일하기도 싫어했으며, 늘 나가서 트럼프를 하고 놀았지만 시아버지는 그래도 늘 그녀에게 봉급을 주었다. 수련 후 나는 그녀와 따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놀기 좋으면 놀아라고 생각했다. 어떤 땐 그녀가 음식을 훔쳐 먹거나 식당 물건을 훔쳐 가기도 했는데 시아버지는 내가 훔친 줄로 알고 경멸하는 눈길로 나를 흘겨보긴 해도 나는 변명하지 않았다. 내 마음은 대법을 배운 후 많이 조용해지고 너그러워졌다.


나는 시간만 있으면 책을 보고 법공부를 하면서 시시껄렁한 그런 일을 머릿속에서 생각하지 않았다. 법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많은 이치를 알게 됐고 하루 종일 일종의 강대한 에너지에 휩싸여 있어 화를 낼 생각도 없어지고 마음은 늘 즐겁기만 했다. 이렇게 되니 몸도 좋아지고 수련 전에 불면증도 사라졌다.


1997년 셋째 시누이는 남편과 이혼해 갈 곳이 없게 되자 나는 그녀를 우리 집에 데려왔다. 나는 그녀가 아주 이기적이어서 앞으로 같이 지내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대법제자라는 것을 생각하고 사부님께서 사람을 선하게 대해주며, 곳곳에서 남을 배려해 주라는 가르침을 상기했다. 그녀가 갈 곳이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 못본 척 할 수 없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셋째 시누이는 당뇨병으로 두 눈이 거의 실명했고 두 발도 썩어서 걷기조차 어려웠다. 어떤 땐 그녀를 도와 대소변을 받아내고 방을 정리했으며 물을 떠다 주고 밥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의 지난 날 원한도 말끔히 사라졌고 셋째 시누이는 마음속으로부터 파룬따파에 감격했다!


돌아가시전 늘 나를 보고 울면서 후회했던 시아버지

그 때 시아버지는 이미 80이 넘었고 몸도 좋지 못해 어떤 때는 한 해에 2,3차례 병원에 입원했다. 매번 치료할 때면 내가 돈을 준비했다. 한 쪽으로 식당 일을 하면서 자신의 밥 먹는 시간을 아껴 뜨끈뜨끈한 밥과 반찬을 시아버지에게 보내드렸다. 어떤 땐 밤에 가서 간호하고 낮에는 식당 일을 하면 연속 여러 날 눈을 붙이지 못한다.


한 번은 시아버지의 심장병이 발작했는데 병원은 정전이 되어 엘리베이터를 쓸 수 없었다. 아들 딸들은 치료를 포기하려 했지만 나는 심장병은 치료하지 않으면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하고는 시아버지를 4층에 업고 가서 응급치료를 했다. 그의 아들 딸들은 뒤에 따라오면서 보고 있었다.


치료기간 내가 늘 병원에서 병시중을 했으므로 병원의 의사. 간호사들은 내가 그의 딸인 줄로 생각했다. 한 번은 밥을 갖고 가서 시아버지의 속옷을 갈아입히는 것을 보고 의사가 말했다. “아버님 자녀들 중에서 이 딸만이 친 딸 같아요. 다른 자녀들은 날마다 와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가버리던데, 괜찮아요, 아버님에게 좋은 자식이 하나만 있으면 돼요. 아버님은 정말 복이 있네요!” 시아버지가 얼른 말했다. “무슨 말씀을, 그녀는 며느리일세. 이 몇 년간 나는 늘 그녀 신세를 지고 있지. 정말 효성스러워.”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잇달아 세상을 떴는데 두 분은 모두 80세가 넘었다. 남편은 집에서 가장 막내였고 마비되어 자리에 누웠으며, 두 아이도 학교에 다니므로 돈이 필요했지만 시어머니가 사망할 때에 나는 자발적으로 노인의 장례비를 감당했다. 1만여 위안에 달하는 비용을 모두 내가 냈다.


시어머니가 세상 뜬 몇 달 후에 시아버지도 세상을 떴다. 시아버지는 세상을 뜨기 전 며칠 동안 늘 나를 보고 울면서 끊임없이 말했다. 그는 자기가 몇 년 전 자신의 저금을 다른 자식들에게는 나누어 주었는데, 노동력이 없고 가정을 먹여 살려야 하지만 마비되어 자리에 누워있는 막내 아들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은 것을 몹시 후회했다. 이 돈은 지금에 와서는 찾아올 수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손바닥이든 손등이든 모두 살점인데 누구를 사랑하든 다 마찬가지예요. 큰 아주버님, 둘째 아주버님은 모두 몸이 좋지 않으니 더 많이 관심하는 건 당연하지요.”


사어버지는 말했다. “뜻밖에도 자네가 파룬궁을 수련했기에 남편도 아이도 버리지 않아 이 집이 살아갈 수 있게 됐네.” 그는 또 말했다. “자넨 이 집을 위해 너무도 많이 지불했어! 멀쩡한 교사 직업도 버렸고 우리 집은 물도 없고 길도 불편한데 그렇게 먼 곳에 가서 7,8통의 물을 길어다 집과 식당에서 쓰게 했지, 이건 여자로서 견지할 만한 일이 아니었어. 내가 죽은 후 자넨 아직도 셋째 시누이를 먹여 살려야 하니 자네 짐이 얼마나 무거운가! 나는 정말 가고 싶지 않네. 자네 한 평생이 너무도 고생스러워…” 마지막에 그는 두 손녀를 침대머리에 불러다 놓고 내 말을 잘 듣고 나에게 효도하라고 당부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여전히 노인을 보내는데 든 비용을 감당했다. 이러했지만 나의 큰 아주버님, 큰 동서, 그리고 세 시누이는 노인의 영구 앞에서 노인의 집을 분배할 의논만 했다. 그들의 이런 말을 조문 온 이웃이 듣게 됐고 이웃 몇 사람은 즉석에서 그들에게 심한 욕을 퍼부었다. “당신들은 너무도 양심이 없어! 이 집을 보세요, 어린 건 어리고 불구자, 병자가 다 있죠. 그런데다 또 당신 여동생까지 먹여 살려야 하는데 당신들은 그래도 이 집을 나눠 가지려 합니까? 당신들은 어떻게 이런 말을 입으로 할 수 있죠? 앞으로 당신들은 이 집에 나타나지 마세요, 우리는 오랜 이웃으로서 당신들을 꼴보기조차 싫습니다. 당신들 몇은 모두 양심 없는 물건들이예요!” 큰 아주버님, 큰 동서, 세 시누이는 이웃들의 이런 말을 듣고는 겁에 질려 집을 분배하려는 일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웃이 분이 치밀어 나에게 말할 때 나는 조용히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들이 나에게 제기한다 해도 아무 상관없어요. 나는 그들과 다투지 않을 거예요, 내가 오늘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되어 일마다 모두 ‘진선인(眞善忍)’ 요구에 따라 하고 있어요. 이렇게 해야만 좋은 사람이예요.”



4. 바른 믿음은 복


아무 고통 없이 편안하게 세상 뜬 시어머니

시어머니는 심근경색이 발작해 앉아서 돌아가셨는데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았다.

1999년 7월, 중공 사당은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대법을 확고히 믿고 포기하지 않았으므로 경찰은 나를 붙잡으려 했다. 그들이 집에 와서 나를 붙잡으려 할 때 시어머니는 극력 나를 보호하면서 뭐라고 말해도 나를 붙잡지 못하게 했다. 경찰이 무슨 증명서를 내보이든, 무슨 말을 하든 남편과 시어머니는 듣지도 보지도 않으면서 그저 내가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데는 아예 잘못이 없다고 고집했다. 바로 이렇게 우리 가족은 우리 집에서 4시간 남짓 버텼다. 경찰 국장이나 ’610’불법 조직의 대장이 어떻게 위협해도 우리 가족은 나를 막아서서 그들이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그들이 나를 건드리기만 하면 온 가족은 그들과 생사결판을 하려 했다. 나중에 그들은 풀이 죽어 돌아갔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이웃들은 모두 이 할머니가 아무 고통 없이 사망한 것은 좋은 일을 하여 덕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몸이 건강하고 장사가 잘 된 이웃들

이웃들과 우리 집은 관계가 화목했다. 이 몇년 간 파출소와 사회구역 사람들이 이웃에 가서 파룬궁을 알아보려 하면 이웃들은 모두 쫓아내면서 말한다. “우리는 누가 파룬궁을 연마하는지 모른다. 당신들은 하루 종일 쓸데없는 일을 하면서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좋은 사람을 박해해서는 뭘 하자는 거야?”


그들이 자발적으로 대법제자를 보호했기에 모두 복을 받아 신체가 건강하고 장사가 잘 됐다.


불광 중의 남편

내가 대법 수련을 하기 전에 남편은 전혀 앉을 줄 몰랐고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했다. 내가 대법을 수련한 후부터 남편은 서서히 앉을 수 있게 됐고 바닥에 내려올 수도 있었으며 삼륜 휠체어도 탈 수 있게 됐다.


2008년 어느 봄 날, 남편은 앞에서 마주 오는 차에 부딪혀 4,5미터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삼륜차는 다 망가졌지만 아무 일 없었다. 차에서 뛰어내린 기사는 어찌했으면 좋을지 몰라 긴장해서 우리만 쳐다보았다. 나는 남편 곁으로 다가가 그에게 알려주었다. “괜찮아요,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줄 거에요. 우린 모두 마음을 바로 갖고 기사를 난처하게 굴지 말아요.” 남편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알았소!”


나는 기사에게 말했다. “삼륜차는 내가 가서 수리하겠으니 당신 차로 우리를 집에 실어다만 주세요.” 기사는 말했다. “그래도 병원에 가 봅시다. 내상이 없는지, 앞으로 무슨 시끄러움이 없도록 해야지요.” 나는 그에게 알려주었다. “당신은 그저 그를 집에만 보내주면 됩니다. 아무데도 다친 데가 없을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한답니다.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가족이 혜택을 보거든요!”


나는 기사에게 말했다. 앞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하고 성심으로 외우면 무사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기사는 눈물이 글썽하여 고개를 힘주어 끄덕이고는 입으로 ‘파룬따파하오’를 외우면서 우리를 집으로 실어다 주었다.


남편은 원래 딸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 두 딸이 지극히 사랑스러워 조금만 보이지 않아도 안 됐다. 그는 늘 두 딸에게 나를 도와 일을 하라고 교육했다. 그는 비록 사지가 심하게 마비됐지만 내가 아침에 법공부하고 연공할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해 엄동설한, 무더운 여름 할 것 없이 날마다 날 밝기 전이면 삼륜 휠체어를 몰고는 식당에 야채를 사다 놓는다. 가장 어려운 것은 겨울인데 그의 다리, 발은 피가 통하지 않아 감각이 없어진다. 다리가 얼음처럼 차가워서 겨울이면 비닐 천으로 십 몇 벌 감싸야만 밖에 나갈 수 있다.사지가 영활하지 못한 까닭에 옷을 입는 시간만 해도 20여분 걸린다. 이렇게 그는 한 해 또 한 해 견지해 가고 있지만 한 마디 원망도 없다.

이러할 뿐만 아니라 그는 또 휠체어를 저으면서 나를 따라가 진상 CD를 배포하고 진상 현수막을 걸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등, 나를 협조해 그가 할 수 있는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많은 때는 그 자신이 혼자 나가서 진상 CD와 전단지 등을 배포하기도 한다.


5.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음식점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나 혼자서 그 음식점을 지탱해 나가고 있었다. 이 몇 년 동안 공안, 검찰원, 법원, 사법 인원이든, 장거리 화물차 기사든, 노동자든, 한가한 사람든, 지위가 있든 없든 오직 우리 음식점에 오기만 하면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준다.


시간이 오래 지나자 나는 아예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스티커를 집 안 벽에다 붙여놓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했다. 늘 와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서로 진상을 알려 주는데 그들은 우리 집 이야기를 새로 온 손님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어떤 때 단골 손님들은 다른 사람에게 식당에 와서 식사하라고 알릴 때면 일부러 전화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한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여기에 와서 식사해!” (주: 중국에서는 파룬궁에 대해 국가적으로 대대적 탄압이 진행되고 있는데, 파룬궁수련인들을 신고하면 금전적 보상을 받으며, 경찰들도 보상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용기있는 일이며, 그 동네 경찰들까지도 감화를 받고 파룬궁에 관한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며 수련이 매우 잘 되어서 마을 사람들을 감화시켰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내가 음식점을 넘겨받은 후 장사는 날마다 흥성해져 나 혼자서는 바빠서 도무지 안 되기에 종업원 두 명을 고용했다. 이렇게 하니 나는 더 많은 시간으로 진상을 모르는 세인에게 ‘파룬따파하오’를 이야기 할 수 있게 됐고 세인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릴 수 있었다.


지금 나에게는 이전의 쟁투, 질투, 저주가 없어졌다. 두 딸도 대학을 졸업하고 출근하고 있으며 남편도 몸이 좋아졌고, 음식점 장사도 잘되고 있다. 우리 일가는 날마다 모두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 온 가족은 모두 사부님, 파룬따파에 몹시 감사하고 있다. 위대하신 사존의 60탄신일에 즈음하여 이 글을 삼가 사부님께 축하 선물로 드린다. 아울러 인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파룬따파를 알게 되어 나처럼 대법의 아름다움을 감수하고 대법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하는 바이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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