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오늘 모인 교수님들은 평소 전공과 관계없이 ‘과학과 신(神)’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해오신 분들입니다. 사회자는 되도록 개입하지 않고 참석자들의 프리토킹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오늘 좌담에서 말하는 신은 종교적 신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절대자, 초자연적인 존재, 우주의 근원, 차원의 끝에 있는 존재 등 다양한 개념의 신입니다.
최근 리처드 도킨스(케냐 출신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옥스퍼드대 교수)의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도킨스의 도발적인 문제 제기로 오늘 좌담회의 운을 떼면 어떨까 싶은데요. 이런 주장을 했더라고요.
“물리학자들이 비유적 의미로 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물리학자들의 비유적 혹은 범신론적 신은 성서에 나오는 신, 인간사에 간섭하고 기적을 일으키고 우리의 생각을 읽고 죄를 벌하고 기도에 답하는 신과 아득히 멀다. 둘을 일부러 혼동시키는 것은 지적인 반역행위다.”
임성빈 : 먼저 신의 정의부터 얘기했으면 합니다. 사람마다 개념이 다른 것 같아서요. 어떤 학자들은 외계인을 신과 연결시킵니다. 이를테면 오래전에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생명과학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겁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외계인이 신이겠지요. 우리가 통상 말하는 창조주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겠지만.
프리초프 카프라(오스트리아 출신 미국의 물리학자, 신과학(新科學)운동의 선도자)는 리처드 도킨스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어요. 확실한 유신론자이거든요. 그래서 과학과 신이 함께 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지요. 만일 신이 참다운 존재라면 종교에 따라 다를 수 없다는 거죠. 과학과 분리될 수도 없고. 참다운 신이라면 과학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종교에서만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결국 종교의 통합, 그리고 과학과 종교의 통합을 얘기하고 있어요.
에너지 뒤엔 뭐가 있나
제원호 : 과학은 객관성이 있고 반복성이 있는 현상을 얘기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신은, 마치 사랑이 실체가 있지만 이거다 저거다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오감으로는 알 수 없는, 때로는 육감으로 어느 정도 알 수도 있겠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듯 부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신과 과학은 양립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할수록 신의 영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상호보완적인 면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과학과 신이 모순이라고 생각한다면, 제 생각엔 둘 중의 하나입니다. 과학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부족하든가, 아니면 신에 대한 이해가 없든가. 제 경우 성서와 과학을 통해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달아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게는 과학과 신이 모순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죠. 과학이 보이는 것에서 시작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성의 방법으로 찾아가는 것이라면 신 또는 종교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해 보이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이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모든 물질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게 1905년, 기껏해야 100년이 지났습니다. 그럼 에너지만 모아두면 물질이 되느냐, 그렇지 않지요. 그럼 에너지 뒤엔 뭐가 있는가. 신학자들은 그것을 신의 지혜, 창조의 지혜라 얘기하고 과학자들은 복잡한 정보가 숨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정보는 보이지 않지요. 그러니까 과학이 물질에서 에너지, 즉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에너지다, 파동이다 하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이지요. 따라서 과학과 신은 지금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찾아가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임성빈 : 제 교수께서는 창조과학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원호 : 저는 창조과학회 회원은 아닙니다만, 요즘은 창조과학이라는 말 대신 지적설계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더라고요. 상당히 수긍이 가는 점이 있지만, 객관적으로 (신의 존재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나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반성해야 할 점도 있고.
임성빈 : 창조과학회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선 현대과학을 완전히 무시해요. 그러니까 빅뱅(우주 대폭발)도 무시하죠. 성경에 나오는 연대로만 계산해 우주의 역사가 2만년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진화론도 무시하고. 그거는 조금 문제가 있지 않나요.
김재수 : 개신교의 근본주의자들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창조과학회는 종교성이 너무 강해 객관성이 없죠.
제원호 : 인간의 관점이냐 신의 관점이냐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고 봅니다. 과학에서는 우주의 연대를 150억년으로 봅니다. 성서에서는 6일 동안에 모든 게 창조됐습니다. 저는 둘 사이에 전혀 모순이 없다고 봅니다.
김재수 : 종교적인 관점에서 신에 접근할 때는 현대과학의 패러다임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종교의 핵심 혹은 본질은 영성(靈性)입니다. 요즘 스피리추얼 사이언스(spiritual science·영성과학)라는 표현을 씁니다. 영성과 과학이 만난다는 거죠. 저는 희로애락을 가진 기독교의 인격신이나 불교의 불성이나 다르지 않다고 봐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덕분에 세계의 본질과 근본을 이해하게 되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처럼 과학과 영성이 만나면서 신의 일반적인 개념도 바뀌어간다고 봐요. 패러다임이 바뀐 거죠. 저도 어릴 적엔 인격신의 개념을 갖고 있다가 차츰 우주의 본질, 순수의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모든 가능성을 가진 그 무엇이 있는데 거기에 어떤 지성이 있다고 신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그 다음엔 모든 존재는 신의 하나라고, 과학적 추론 또는 그 추론에 따른 체험으로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과학과 신은 손바닥과 손등
우희종 : 과학과 종교는 언어나 범위가 다른 것 같아요. 과학은 사물의 이치, 사리를 다루는 데 비해 종교는 진리를 다룬다고 봅니다. 사리와 진리는 상충하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과학과 종교는 대립할 까닭이 없지요. 그런데 왜 모순된 것으로 보이느냐. 과학이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사물의 모든 관계를 끊고 분석적으로 접근하거든요. 흔히 말하는 분석적 환원론이죠. 세상이 총체적 덩어리로 이뤄진 만큼 과학의 한계가 분명히 있죠.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 신이라고 할 때 그것이 반드시 동물이나 사물, 혹은 인격적인 형태로만 존재한다는 데 대해 저는 부정적입니다. 반대로 지성이나 지혜의 형태로만 표현되느냐. 그것도 인간이 붙인 관념일 겁니다. 제원호 박사님은 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지만, 저는 알되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신을 모른다면 사실은 얘기할 것도 없거든요. 신을 진리요 생명이요 혹은 순수이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신을 우리가 가진 개념으로 표현하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임종호 : 신은 쉽게 생각하면 질적으로는 완전이고요, 양적으로는 모두여야겠지요. 그런데 이 완전하고 모두인 것을 과학적으로 관찰하기 위해선 반드시 대상으로 삼아야 하거든요. 대상화해야 이성으로 알 수가 있으니. 또 하나는 직관으로 신을 아는 방법입니다. 이 경우는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이성의 도구인 언어로 표현할 수 없죠. 이성과 직관이 균형을 이뤄야 완성된 인간인 것처럼 과학을 통해 신의 위대함을 알 수 있죠. 저는 의사로서 매일 환자를 돌보는데, 환자들에게 우리가 진화를 통해 이렇게 됐다고 하면 실망하고 병세가 좋아지지 않아요. 반대로 거대한 존재가 우리 뒤에 있다고 말하는 게 치료에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인간 이성의 불완전성은 이미 증명이 돼 있기 때문에 과학과 신은 손바닥과 손등처럼 작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왜 존재의 목적이 있어야 하나
우희종 : 신이 완전하다, 세상이 완전하다는 말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완전’이라는 것도 하나의 개념이기 때문에 굳이 표현하자면 ‘온전’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임종호 : 그렇네요. ‘완전’보다 훨씬 좋네요.
임종록 : 전체를 움직이는 거대한 그 무엇을 찾아가는 과정에 과학도 존재하고 종교도 존재한다고 봅니다. 신은, 수학 쪽에서 본다면 초월의 개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과 공간, 오감에 제약받지 않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그게 에너지 형태인지는 모르겠습니만―이라고 봅니다. 어떤 규정된 차원 너머의 차원에 들어설 때야 신의 개념이 어느 정도 이해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인간은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가. 아닙니다. 접근할 수 있습니다. 방법론의 단계를 높이면. 어쨌든 저는 (신을) 지금의 차원보다 한 차원 높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싶지 그 무엇이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습니다.
우희종 : 초월도 하나의 개념이 아닐까요.
임종록 : 시간과 공간에 잡히지 않고 형태에 매이지 않는 것, 인간이 뭐라 규정지을 수 없는 그 너머의 차원이라는 생각입니다.
김재수 : 노자(老子) 말마따나 도(道)를 도라 할 때 이미 도가 아니라는 것과 똑같아요. 신은 바로 지금 여기서 움직이고 있어요. 어떤 고정된 관념을 갖고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신은 거기에 없죠.
임성빈 : 그래도 신은 여전히 있을지 몰라요. (웃음) 만일 우주와 나를 있게 한 창조주가 계시다면 어떤 목적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 말이죠. 그런데 그것을 잘 모르겠어요. 남보다 잘 먹고 잘살고 조금이라도 더 즐기다 죽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모양인데, 그건 아닌 것 같거든요.
우희종 : 그런데 왜 목적이 있어야 하나요.
임성빈 : 존재하는 목적이, 이유가 없다면 저는 (인생을) 납득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우희종 : 그것은 내가 납득하는 것만 받아들이겠다는…
임성빈 : 그래도 하여튼 그게 알고 싶은 거예요.
김재수 : 존재는 목적 없이 ‘그냥 있음’ 아닐까요.
임성빈 : 세탁기는 빨래를 시키려고 만든 것이지 괜히 만든 것은 아니거든요.
우희종 : 인간은 다르지요.
내 수준을 높이면 신이 보여
임성빈 :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할 때는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요.
좌담회에 참석한 6명의 과학자는 평소 ‘과학과 신’의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해왔다. 가운데 앉은 두 사람은 사회자(앞쪽)와 속기사. |
임성빈 : 만약 창조주가 계시다면 내가 뭘 해주기를 바라고 나를 창조했을까 하는 의문이죠.
임종호 :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건 신이 어떤 목적을 갖고 창조했다는 거지요.
우희종 : 말씀이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하는 걸까요.
임종호 : 저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것을 빅뱅 이론과 관련지어 이렇게 비유합니다. 뻥튀기 장사하시는 분이 빅뱅을 일으키기 전에 항상 말씀을 합니다. “귀 막아!” 별로 안 웃기는 농담 같은데…. (웃음) 창조론이나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이나 비슷하죠. 연기의 최초가 무엇이냐죠. 그런데 부처님은 물어보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우리는 패러다임을 높일 생각은 하지 않고 물질과학 차원에서 신을 물리적인 속성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리처드 도킨스도, 그런 태도가 저는 불만이라는 거죠. 내 수준이 높아지면 신을 이해할 수 있는데, 내 수준을 그대로 둔 채 물질 차원으로만…
김재수 : 그 안에다 집어넣으려 하지요.
임종호 : 인과관계를 교묘하게 표현해 유전자가 어떻고 바람 피우는 이유가 뭐다 하면서 신을 없애버리고 나서 그 자리를 차지한 거죠. 때로 그런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패러다임이나 차원을 높이면 그때야말로 우리가 신이라는 것을…
임성빈 : 제가 할 얘기를 다 말씀해버렸네요. 제가 최근 펴낸 책(‘빛의 환타지아’)은 현대과학으로 우주의 시작과 인류의 역사를 정리한 겁니다. 이 책을 쓰면서 생물의 진화 문제를 많이 생각했어요. 인류 역사에서 신의 문제, 종교가 등장한 것은 현대인류, 즉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 시절이거든요. 네안데르탈인 시절에는 종교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요. 네안데르탈인까지는 영혼이 없거나 있어도 아주 미약한 수준이었던 것 같아요. 현생인류에 이르러 비로소 약간이나마 영성을 갖게 된 거죠. 제 생각엔 인류에게 아직도 신을 충분히 이해하고 논할 만한 툴이 없는 것 같습니다. 수학적으로 얘기하면 비유클리드기하학을 논할 단계가 아니라 아직 대수나 산수의 단계라는 거죠. 그 정도밖에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한 것을 가지고도 있느니 없느니 마찰을 빚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M이론(우주의 모든 물질과 힘이 Membrane(막)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론)이나 11차원을 얘기하지 않습니까. 서양 과학자들은 그것을 공간 차원으로 보고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데 저는 공간이 아닌 영적인 차원으로 봅니다. 임종호 교수님 말씀대로 진화가 좀더 이뤄지면 얼마든지 그것을 느끼고 알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세상엔 숱한 전자파가 있는데, 19세기까지만 해도 우리는 가시광선밖에 모르고 살았거든요. 지금 11차원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4차원의 시공간 속에서만 삽니다. 나머지 일곱 차원 중에 신의 영역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불확실하지만 우리가 고차원으로 진화하면 자연스럽게 그 존재가 드러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안데르탈인 멸종의 비밀
제원호 : 저에겐 신을 알지 못한다는 것과 안다는 것이 다르지 않습니다. 신을 모른다는 것은 인간이 정보를 저장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정보를 짜깁기하고 맞춘다 해도 우리보다 더 큰 존재를 알 수는 없습니다. 반면 신을 안다는 것은 계시를 통한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격적인 신, 슬픈 사람에게 위로와 사랑을 주는 하나의 인격체인 신의 존재를 계시를 통해 조금씩 이해하게 되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신을 알지 못하지만 안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신적인 존재지만 창조주는 아니다
임성빈 : 과학과 신을 논하면서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데카르트입니다. 데카르트는 ‘더 월드(세계론)’라는 책을 집필했다가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가 처벌을 받자 출간을 중지하고 물심이원론을 주장했는데, 그것이 바로 현대과학과 종교가 갈리는 계기입니다.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별개니 너희(종교)는 신하고만 놀고 물질학문에는 손대지 말라고 영역을 나눈 거지요. 그러다 보니 영성이나 정신이나 마음이 빠진, 물질만 다루는 학문이 발전해왔지요.
그런데 로마나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과학과 신의 영역이 지금처럼 구분되지 않았어요. 말씀하신 대로 과학은 객관적이고 개연성이 있어야 하고 인과율을 따라야 하는데,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입자물리학에서는 다 깨지지 않습니까. 객관성이나 개연성이 존재하려면 반드시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이미 다 깨졌지요.
이제는 과학이 신을 연구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어요. 어떤 은혜나 특정한 종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신의 존재가 뭔지, 인류와 신의 관계가 어떤 건지. 만약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인류가 태어나는 데 관여했다면 그도 신적인 존재지요. 창조주 신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도 제가 보기엔 신적인 존재일지는 모르지만 창조주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성경 내용으로 봐서.
여호와가 만든 아담과 이브가 카인과 아벨을 낳았는데,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 쫓겨날 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봐 걱정해요. 그렇다면 그들 외에 다른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얘기잖아요. 또 여호와가 유일하게 인류를 만든 존재도 아닌 것 같아요. 창세기에 보면 천지창조를 하는데, 여섯째 날 인간을 창조하면서 ‘우리의 형상대로’ 만든다는 말이 나오거든요. ‘우리’라는 건 창조주가 여러 분이라는 걸 뜻하죠.
김재수 : 복수를 쓰지요.
임성빈 : 복수를 쓰고 형상도 인간과 같고. 그러면 천지창조가 이뤄지기 전부터 여러 분의 창조주가 인간의 모습으로 계셨을까, 그래서 우주를 만든 창조주와 인간을 만든 창조주는 서로 다른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지요.
김재수 : 저도 한때 그런 의문을 가졌어요. 신이 복수더라고요. 이상하잖아요. 이거, 다른 시각으로 봐야겠구나. 절대적이라 생각했던 시간과 공간이 양자물리학에 의해 무너지면서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은 환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에너지가 환상을 만들어냈고 우리는 그 환상 속에서 게임을 하는 거죠.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그렇다면 신의 개념은?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과 물질 속에 확고히 고정돼 있던 것인데, 다 사라졌어요.
임종호 : 데카르트 시대를 말씀하니 하는 얘긴데,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안 풀리는 문제가 있어요. 생각이 먼저냐, 뉴런(신경 단위)이 먼저냐. 뉴런을 다치면 생각을 못하지요. 생각이 먼저 일어나 뉴런이 따라갈 수도 있겠고요. 300년 전에 제기된 문제인데 아직도 풀기 어려워요.
우희종 : 어떤 신 혹은 창조주를 상정하고 거기서 우리가 계시를 받는 것으로 보면 과학과 종교의 접점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학이 지적설계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죠. 과학과 종교가 만난다는 것은 타자가 된 신이나 대상이 된 신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해 이미 발현돼 있는 신, 안과 밖이 하나인 통합적인 신의 존재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인다는 거죠. 반대로 창세기의 신이 복수라는 점을 문제 삼는 것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보는 것이거든요. 이 경우도 접점이 없어진다고 봅니다. 저는 신이 종교적 신으로 표현돼도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신을 그 틀에 국한하는 게 문제지. 신은 다양한 언어와 모습으로 표현되고 성경이나 불경은 상징과 은유라고 봐요.
외계인의 생명 조작
중요한 것은 거기에 담긴 메시지죠. 그런데 과학에 길든 사람은 그것을 분석합니다. 그러한 분석적 환원론으로 성경의 창세기를 읽는다면 답이 나올 수 없어요. 창조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인간적 생각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 비에 어떤 목적이 있을까요. 풀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어떤 현상이 펼쳐지는데 그 역할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 거지 존재의 목적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봐요.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근대과학에서는 진화를 발전의 개념으로 봤어요. 헤겔도 그렇고요. 하지만 근대 생명과학에서는 그것이 다윈의 진화론이든 뭐든, 진화란 적절하게 주위환경에 적응하는 것으로 좀 복잡해질 뿐이지 고등이니 하등이니 하는 개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임성빈 : 그렇게 말씀하면 도킨스와 비슷한데…
우희종 : 그렇지 않습니다. 큰 차이가 뭐냐면요…
임성빈 : 창조주를 믿는 유신론자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첫째가 유신론적 진화론이에요. 빅뱅론이나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어떤 방향성, 창조주의 의지에 따라 진행된다고 믿는 거죠. 다른 하나는 지금 말씀한 것처럼 창조는 과학적인 원리로 우연히 일어났으며 방향도 없고 인류가 특별히 진화된 생물도 아니라는 견해죠. 환경 적응성으로 보면 박테리아만도 못한 게 인간이라고. 곤충보다도 못하고.
우희종 : 그 다음이 다른 겁니다. 도킨스 같은 사람은 거기서 멈추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러한 원리로 작용하는 것을 종교적 신으로 봐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부정할 필요도 없고. 일반적인 사회생물학자는 그것이 다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임성빈 : 그렇죠. 바로 그 얘기입니다.
우희종 : 사회생물학의 시각만으로 이것은 신이 아니고 만들어진 존재라고 말하는 건 오만이죠.
160억년과 6일은 같아
임성빈 : 신과 종교도 구분해야 해요. 아까 성경 내용을 비유라고 하셨는데, 저는 굉장히 사실적인 기록이라고 봅니다. 가설이긴 합니다만, 조셉 데니케르(러시아 출신 프랑스의 인류학자) 같은 학자들은 분명히 지구상에 외계인이 많이 왔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 얘기대로라면 외계인이 찾아와서 지구인을 생명복제나 유전자 조작 등으로 만들거나 개조했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여호와라는 존재가 유대인을 생명과학적으로 조작한 어떤 외계인 집단의 대표라는 추론이 가능한 거죠. 한동안 외계인이 피조물인 인류와 같이 살면서 결혼도 하고. 마찬가지로 무리 3000명을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온 국조(國祖) 환웅 천제도 한민족을 생명과학적으로 조작한 외계인 대표라고 추론할 수도 있지요.
우희종 : 창조와 조작은 다르죠.
임성빈 : 다르죠. 그들은 신은 아니죠. 조작 정도이지, 무에서 인간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는 얘기죠.
우희종 : 외계인은 여기서 논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외계인의 존재를 가정한 논리이기 때문이죠.
김재수 : 아니요, 짚고 넘어갈 문제입니다.
임성빈 : 남미에도 그런 신화가 많은데, 거기서 묘사된 신들은 외계인 수준이지 창조주는 아닌 것 같거든요.
우희종 : 저의 문제 제기는 왜 외계인을 상정하느냐는 거죠.
김재수 : 어떤 차원에서 보느냐의 문제입니다. 지금의 차원에서는 우연이라도 한 단계 위 차원에서는 필연이 되거든요. 콜럼버스가 도착할 때 처음엔 인디언들에게 배가 안 보였어요. 머릿속에 배에 대한 관념이 없으니까 대상이 보여도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신적인 개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관념과 개념에 따라 체험하는 내용이 다른 거죠.
임종호 : 좁게 보면 우연이고 넓게 보면 필연이죠. 외계인 문제도 그 외계인은 또 누가 만든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에 꼭대기로 가면 필연이겠지요. 밥 먹으면 소화시키는 우리 몸의 오묘함은 신이 아니고야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갖게 해요. 저는 그중 일부를 밝히는 면허증을 따서 사람을 고치고 있지만, 너무나 사소한 지식이죠. 우리 안에 신이 안 계시면 신이라는 개념이 안 생겼을 거예요.
빅뱅 후 물질과 반물질의 변화. |
(이때 우희종 교수가 급한 사정이 생겨 먼저 퇴장-편집자)
제원호 : 계시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아까 (임성빈 교수께서) 현대과학으로 오면서 객관성, 반복성이 깨진다고 말씀했는데, 그렇지는 않고요. 양자역학은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지만, 검증이 잘된 이론입니다. 물론 M이론같이 우주를 재창조하는 이론은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지만.
저에겐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주의 나이입니다. 현대과학에서는 대략 160억년이나 150억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서에 따르면 6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우주 창조가) 다 이뤄졌습니다. 저는 이것 때문에 신과 과학은 모순이고 신앙이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영역이 아닌지 고민해왔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과학적인 접근방법을 통해 이 패러독스를 새롭게 해석하고 신과 과학을 상호보완적으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신의 오묘하고 깊은 우주창조 섭리를 이해했고 거기에 객관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160억년과 6일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다른 얘기로 들릴 뿐이지 같은 내용이라는 거죠.
우주 생성시 1초는 오늘날 9만년
이 패러독스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과학적인 원리는, 시간의 개념은 관찰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움직이는 관찰자의 시계는 정지해 있는 관찰자의 시계보다 상대적으로 더 천천히 움직입니다. 사건이란 시공간의 한 점과 다른 한 점 사이의 거리를 말합니다. 동일한 사건이라도 정지해 있는 관찰자의 시계로 재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고 빨리 움직이는 관찰자의 시계로는 찰라나 1초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주의 시작을 알리는 빅뱅 이후 첫 물질이 생겼을 때 우주의 온도는 지금보다 약 3조배 높았습니다. 이는 우주시계의 주파수가 지금보다 3조배 높았음을 뜻합니다. 즉 태초에 우주시계가 한 번 똑딱거린 주기는 현재보다 3조배 짧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 생성 이후 첫 물질이 생겼을 때의 1초는 오늘날 지구상 시간으로 환산하면 3조초, 즉 9만년가량 됩니다. 이 수치를 대입하면 태초의 첫 하루 24시간은 오늘날 시간으로 80억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우주가 급속히 팽창하면서 온도가 급격히 낮아지는데, 이런 냉각 효과를 고려하면 둘째 날의 24시간은 약 40억년이 됩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우주 생성 당시의 첫 6일은 오늘날의 시계로 대략 160억년입니다. 물론 저는 이것으로 성서의 내용이 증명됐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과학과 종교가 모순인 것처럼 보인 것은 인간의 과학적 지식이, 혹은 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리고 빛에 대해 말씀했는데, 저도 광학과 원자물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빛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빛의 성질을 더 알게 되면서 우리 주위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영역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빛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즉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시간의 상대성에 갇혀 있지만 빛 안에서는 시간의 절대성만이 존재한다는 거죠.
예를 들면, 1987년 2월23일 칠레의 한 천문대에서 우주에서 날아온 밝은 빛이 관측됐습니다. 슈퍼노바(초신성)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빛이었죠. 측정해보니 지구에서 17만광년 떨어진 별이었습니다. 즉 이 초신성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도착하는 데 지구시계로 17만년 걸렸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만일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관찰자가 있었다면 그에게는 그 시간이 0.1초도 아니고 0초였을 겁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세계에서는 시간이 멈춰 있고 영원한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높은 차원엔 영원한 현재만
17만년과 0초의 차이는 시간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시간 안의 세계와 시간 밖 세계의 차이입니다. 시간 안의 세상에서는 시간이 과거와 현재, 미래로 분리돼 존재하지만 시간 밖의 빛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한 현재일 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빛은 시간의 영역을 벗어난 세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빛의 존재를 통해 인간의 삶 에 임하는, 시간 밖의 보이지 않는 창조주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저에겐 이것이 만물 안에 나타나는 신적인 특성, 즉 창조주의 신성을 내 인격의 지적 작용을 통해 이해하고 감상하는 좋은 접촉점입니다.
임성빈 : 저도 그 점엔 동의합니다. 시간이 멈춘 차원이 있다는 것. 그러니까 차원마다 시간이 다르다는 거죠. 고차원으로 갈수록 점점 느려져 가장 높은 차원인 신의 자리에 가면 영원한 현재만 있죠. 제가 책을 쓰면서 우주 창조 순간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보니,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이나 힘이나 에너지는 빛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빛의 변화일 뿐이라는 결론을 얻게 됐어요. 그럼 이것이 우연히 아무도 없는 데서 갑자기 이뤄진 것이냐. 많은 과학자가 의문을 던졌죠. 이노마타 슈지라는 일본 학자가 생각이나 신, 인간, 의지도 에너지가 되고 물질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논문을 냈더라고요. 만일 창조주가 계시고 창조주의 의지가 있다면 그것이 에너지와 물질로 바뀔 수 있다는 거죠. 창조주가 없다면 어디서 어떻게 갑자기 엄청난 에너지와 물질이 나타났는지 설명이 안 되는 거죠.
김재수 : 제 교수님 말씀 중에 우리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점은 신의 개념 중 인격과 지성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의 인격은 인간과 다를 바 없어요. 자기가 창조해놓고도 미워하고 질투하는 신이죠. 제가 말한 지성은 우주의 법칙이에요. 그 법칙으로 창조한 겁니다. 그것은 차원에 따라 다릅니다.
임종록 : 말하자면 정형화된 무엇이 아니라 어떤 흐름에 대한 법칙 자체를 신이라고…
김재수 : 그렇죠. 그것이 인격과는 다른 지성인 거죠.
임종호 :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요.
제원호 : 저도 차이를 잘 못 느끼겠는데요. 창조주의 지혜를 찾아가는 것을 물리학자들은 법칙이라 말하는데, 그것은 지성이라기보다는 전체의 일부분을 본다는 뜻입니다. 저도, 비록 임성빈 박사님이 생각하는 방향성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우주의 생명 현상에는 분명히 어떤 지혜나 방향성이 있다고 봅니다. 우연이 아니라는 거죠.
임종호 : 김재수 박사님, 좀 전에 도킨스 같은 말씀을 하신 거죠?
김재수 : 그것과는 또 다른데…. 그 법칙에 방향성이 있었기 때문에 창조가 이뤄진 거예요.
사회 : 잠깐 중간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여기선 설 자리가 없군요.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은 종교적이든 비종교적이든 신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것 같아서요. 특히 원자물리학을 전공하신 제 교수님이 인격신, 창조주로서의 신을 주장하는 게 흥미롭습니다. 김 박사님은 우주의 법칙을 말씀했는데, 그것은 칼 세이건이 말한 신의 개념과 비슷해 보이네요.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면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겠다고 했지요. 도킨스는 물리학자들이 그런 개념으로 신을 인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어쨌든 그런 우주 법칙에 의지가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죠. 그건 지적설계론과도 차이가 있는 것 같은데…
김재수 : 법칙의 방향성이 바로 신이겠지요.
사회 : 임성빈 교수님은 외계인의 개념까지 포함한 포괄적인 신의 개념을 말씀하셨고요.
저항할 수 없는 에너지
임성빈 : 도킨스 같은 사람이 등장하는 것은 종교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신은 만들어진 신이거든요. 종교의 신을 문제 삼는 것이라면 저도 같은 견해예요, 도킨스하고. 기독교든 불교든 종교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요.
제원호 : 저도 동의합니다.
임성빈 : 제 교수님은 창조주나 신은 완벽한 존재이고 인간은 거기에 훨씬 못 미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아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서 신에게 가장 근접한 것이 인간이고 신의 의지가 있다면 인간을 통해 표현된다는 거죠. 말하자면 인간이 신의 일부인데, 부분 속에 전체가 있을 수도 있으니 제가 신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사회 : 논의 방향을 좁혀보면, 우주 법칙이나 생명 현상이 우연이냐 필연이냐, 필연이라면 어떤 의지가 작용했느냐가 되겠죠. 지적설계론까지 포함해서요.
김재수 : 창조의 의도, 방향성이 바로 신성이겠죠. 그 방향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신의 개념이 좁아질 수도 넓어질 수도 있습니다. 신의 인격을 얘기하다가는 자칫 신을 인간적 차원에서만 헤아리게 된다는 거죠.
임종호 : 개별적인 현상들도 실제 차원에서는 다 연결돼 있지요. 네트워크가 그런 얘기죠. 어떤 것들이 서로 연결되려면 필연적 의지가 있어야 해요. 그게 없으면 자기조직화가 안 됩니다. 따라서 법칙은 의지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 거대한 의지를 지금의 내가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내가 머무는 차원의 수준만큼 아는 것이기 때문에.
임종록 : 저는 그 의지가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펼치는 것일 수도, 어떤 법칙으로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는 저항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자연현상을 움직이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것이 의지가 아닌가 싶어요. 어떤 거대한 존재에 그 의지를 부여하는 것이 종교이고요.
제원호 : 우주의 역사는 카오스에서 시작해 코스모스로 바뀌어가는 과정입니다. 저도 여기에 의지나 목적, 방향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성빈) 선생님이 얘기하신,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을 통해 깨닫게 되고 인간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장갑 속에 손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 것처럼 인간 안에 창조주가 들어설 공간이 있습니다. 개나 돼지에게는 없지만. 그 안에 들어오는 방향성이 뭔가. 저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신은 무한한 사랑과 지혜의 존재입니다.
신은 어디에나 깃들여 있다
임종호 : 도킨스처럼 과학적으로 보면 창조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어야 토론이 더 재미있을 텐데…. 과학으로 재단하면 신이 나올 리 없죠. 신이 주신 과학이라는 이성의 도구는 사람 치료에도 쓰이는 등 좋은 점이 많아요. 그런데 환자가 낫는 건 의지 때문이에요. 리처드 파인만(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 얘기한 대로 과학은 현상을 잘 이해하는 전략이지 진리를 찾는 수단은 아니죠. 저는 과학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신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활용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봐요. 도가 어디에든 있는 것처럼 신도 어디에든 깃들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원호 : 자연의 법칙 속에 나타난 신에는 주관적 요소와 객관적 요소가 다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접근하든 전체가 아닌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임종호 : 신이 여러 군데 편재하시는 거죠.
임성빈 : 카프라 박사처럼 신과학에 접어든 사람들 중에는 신이나 영성을 부정하는 사람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런데 생물학 쪽에선 아직도 근대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신을 부정하는 것 같아요.
제원호 : 개나 돼지에게는 과거나 미래, 역사나 문화라는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인간이 창조의 방향성에서 정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종착역이 인간의 몸이라는 생각입니다. 시공간의 접점을 천국과 지옥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몸 안과 밖은 전혀 다르죠. 속은 영의 세계이고 밖은 물질의 세계입니다. 영이 없는 동물과 흙이 없는 천사와는 다르게 인간 몸에는 영혼의 접점이 있습니다.
임종록 : 제 교수님 말씀 중에 영혼과 몸이 나왔는데요.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그 중간에 마음을 넣으면 어떻겠습니까. 영혼은 마음의 상위 개념으로 이해되거든요. 그러니까 몸의 차원을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는, 시공간을 넘어서는 도구가 마음인 셈이죠.
제원호 : 저는 우주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종합 상황이라고 봅니다. 인간은 소우주이고. 보이는 흙과 보이지 않는 영혼이 합쳐진 것이죠. 몸을 통해 의식이나 영이―그것을 마음이라 해도 좋고요―TV스크린처럼 나타납니다.
천사와 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