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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이게 과거에 했던 방식이에요.
근데 재미있는 사건 하나가 지금 일어나고 있어요. 에너지의 진동수를 낮춰서 물질을 얻을 때까지 단계적으로 내릴 수 있다면,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키기만 한다면 진동수를 다시 올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죠. 이는, 우리가 딱딱하고 차가운 물리적 우주를 이 아래서 일단 창조한 다음에는, 그걸 높은 진동수의 차원으로 다시 끌어올리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생명의 나무(그림 1)을 살짝 다시 보면, 말쿠드를 예소드(그 다음에는 예소드를 티파레드)로 다시 끌어올리는 과정으로 묘사되죠. 어려운 과정이지만, 이루어질 수 있어요.
이건 흥미로운 현상이죠. 우리가 여러 차원을 거쳐서 물질의 진동수를 높이는데 성공할수록, 물질은 우리의 창조적 의도에 쉽게 반응해요. 물론, 이건 파이프를 자르려고 쇠톱을 쓴다는 것 같은 얘기는 아니죠. 원자의 물리적 배열을 바꿔서, 마치 우리가 진동수가 높은 영역에서 하듯이, 우리의 심원한 창조적 의도가 물질에 쉽게 반영되도록 한다는 얘기죠. 그러니까, 이 우주가 다음 진동수 단계(그리고 나서는 그 다음 단계)로 차원상승하면서, 우리는 훨씬 더 빠르고, 쉽고 우아하게 우리의 생각을 현실로 실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뜻해요. 여기서 좋은 점은, 우리가 물질의 진동수를 올리면서 이 낮은 단계에서 이룬 창조의 가장 중요한 혜택들을 잃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즉, 물리 세계의 지속성과 밀도, 그리고 아름다움을 계속 가지게 된다는 거죠.
아무튼, 물질성의 진동수를 올린다는 게 목표랍니다. 대부분의 종교들은 이에 대해서 뭔가 할 말들이 있을 것이고, 그걸 보다 분명하게 또는 흐릿하게 말할 거에요. 지상에 천국을 창조하는 거라고 부르거나, 또는 정신으로 물질을 되돌리는 것이라고 하거나, 샴발라의 등장이라고 하기도 하죠. 하느님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표현되기도 하구요. 뭐라고 불리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죠. 개념은 다 같으니까요. 물질이 차원의 단계들을 뛰어넘도록 끌어올려서 우리의 창조적 의도가 쉽게 실현되도록 하자는 거죠. 이런 식으로, 우리는 물리적 세계를 정신세계로 되돌리는 거에요.
흥분되는 이야기 아닌가요?
우리가 왜 이걸 하고 싶은 지는 말 안 해도 뻔하죠.
이건 재미있을 거에요.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겁나거나 위험한 일이기도 하죠.
물론 당신의 소울한테는 이게 전혀 위험하지 않아요. 소울은 불멸하고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단, 몸에는 꽤나 위험할 수도 있죠. 만약 당신이 세계와 소통하는 지배적인 방식이 부정적이라면, 그러니까 당신이 증오, 분노, 질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 안에서 존재하거나, 균형이 깨어진 상태로 존재한다면, 상승되는 우주와 함께 가면서 이 부정성과 불균형을 당신 바로 주변과 몸 안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현실로 실현하게 될 테니까요. 이는 당신이 만약 병을 갖고 있다면, 그것이 더 빨리 진행되고 활성화될 수 있다는 걸 뜻하죠. 또한,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을 정리하지 않으면, 당신의 삶이 스스로 현실화한 혼란과 혼동, 병, 그리고 마침내 죽음의 끊임없는 연속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에요.*
이게 겁나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그건 당신 몸이 지닌 엄청난 능력에 당신이 접근하는 걸 막기 위한 목적으로 당신 안에 박혀있는 신념들 때문이죠. 나중 장에서 알게 되듯이, 당신을 두려움과 환상 속에 남아있도록 하려는 조직적인 노력이 존재했거든요. 일단 당신이 여기서 육신을 얻게 된 이유에 대한 진실에 눈뜨고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당신은 당신 안의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거에요. 당신을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묶어놓기 위해서 고안된 시스템에 의해서 당신 안에 놓여진 두려움을 말이에요. 당신 스스로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을 극복해서, 이 물리적 우주의 공동 창조자로서의 지위를 다시 찾아야 해요.
이게 많은 이들에게는 쉽지 않을 거에요. 당신이 걸어서 지나가야 할 두려움은 꽤나 깊거든요. 반면에,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자부심은 당신이 지구에 온 첫날부터 항상 공격을 받아왔죠.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은근하게, 당신은 끊임없는 보호와 지도가 필요한 어린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어요.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런 지도는 당신 삶에 권위를 가진 인물(사제, 보스, 또는 부모)한테서 나온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죠. 당신은 또 권위적 존재가 내리는 심판에 대해서 경고 받아 왔어요. 당신이 일을 하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고, 공부하지 않으면 실패할 것이고, 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란 소리를 들어왔어요. 그동안 당신한테 주입된 이 모든 말도 안되는 소리는 당신이 스스로를 쳐다보는 걸 겁내게 만들 정도로 두려움을 켜켜이 쌓아왔어요.
불행히도, 당신이 스스로를 안 쳐다보면, 당신은 당신이 진짜로 누구인지를, 당신이 얼마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빛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볼 수 없어요. 슬프게도, 당신은 스스로의 빛을 겁내도록 교육 받았기에, 스스로의 빛을 접할 때마다 완전히 공포에 질려서 피하곤 했죠. 당신을 영적인 구속에 처하도록 하는 이유가 만약 신적으로 허용된 것이 아니었다면, 이런 상태는 신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거에요. 당신이 영적으로 스스로를 거세하는 것이 어째서 신적으로 허용되었는지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지금으로는, 차원상승이 진행될수록,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깊이 새겨진 두려움과 잘못된 개념들을 극복해야만 한다는 걸 알아두는 게 필요해요. 우린 더 이상 이 문제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사랑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해 보고 또 글로 써보고 하는 게 공포를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신은 사랑이기에, 신은 심판하지 않고, 저주하지 않고, 명령하지 않고, 무슨 정신 나간 고문 게임 같은 걸 위해서 노예 같은 존재를 창조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아무튼, 얘기하던 걸로 돌아가자면, 먼저 말했듯이, 이 물리적 우주에서 우리의 목표는, 물질의 진동수를 올려서 그걸 높은 차원의 진동으로 되돌리는 것이라는 거에요.
우린 이걸 차원상승이라고 불러요.
자, 차원상승은 개념적으로는 복잡하지 않은데, 실제로는 좀 미묘한 데가 있어요.
예를 들어, 창조된 것이 금방 사라질 정도로 유동적인 고차원에서도 창조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들어요. 생명의 나무를 따라 아래 차원으로 내려갈수록, 필요한 에너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요. 이 아래에서는, (수소나 헬륨 따위의) 가벼운 물리적 원소를 창조하는 것 같은 가장 간단한 일마저도 많은 양의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창조하는데 드는 에너지와 노력은 원소의 주기율표를 따라 올라갈수록 더 커져요. (우라늄처럼) 무거운 원소들은 간단한 수소 원자를 창조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훨씬 더 조직적인 영적 의도가 필요하지요. 사실은, 지금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원소보다 더 무겁고 복잡한 원소는 만들래야 만들 만한 충분한 에너지가 남아돌지 않아요. 우라늄 같은 높은 원소들은 불안정해서, 그들을 하나로 묶는데 쓰인 에너지가 방출되면서 안정된 형태로 분해 되죠. 이런 에너지적 요구사항에다, 진화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창조한 것을 계속 유지하는 추가적 어려움이 더해지죠. 단순한 생명체는 에너지와 의도가 적게 필요하지만, (어떤 형태든) 복잡한 생명체를 만날 때쯤에 이르러서 필요한 에너지의 수준은 정말 엄청나거든요.
이미 언급했듯이, 창조에 필요한 에너지는 차원상승이 이루어지는 경계선상에서 더 많아져요. 이런 경계선상은 창조된 것이 내려가고(descension, 하강) 올라가는(ascension, 상승) 과정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양자 단계와 같은 것이에요. 경계선은 창조를 진행하는데 일종의 저항선으로 작용하죠. 마치 물 잔의 표면장력을 깨야 하는 것처럼요. 장막을 투과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일단 통과한 다음에는, 최소한 그 다음 장막을 만날 때까지는 일단 순항이 계속되죠. 또, 일단 장막을 통과한 다음에는 (일종의 운동에너지가 쌓여있어서) 약간의 추가적인 에너지를 얻게 되죠.
이제는 우리가 무엇을 이루려고 지구에 육신을 얻어서 왔는지 명백할 거에요. 우리 앞에 놓인 기본적인 영적 문제가 뭐였냐 하면, 물질을 차원상승의 지점까지 끌어올릴만한 에너지를 어떻게 발생시키느냐 하는 거죠. 이 우주가 다음 단계의 높은 진동수로 진동하는 것을 막고 있는 양자적 경계선을 통과하는데 필요한 바로 그 에너지 말이에요. 다르게 표현하자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보편적인 에너지 덩어리로부터 에너지를 충분히 끌어와서 크라이스트의 몸(그러니까 여기 있는 이 세계 전체, 민달팽이를 포함한 모두)를 차원상승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죠.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즐기기 위해서 이렇게나 지겹도록 힘들게 일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물론, 불멸의 정신이자, 단일자의 불꽃들(Sparks of The One)인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이미 알고 있어요. 어려운 건 그걸 실행하는 세부적인 사항에 있었죠. 하지만, 이것이 실행되는 역학과 우리가 맞닥뜨린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창조적 에너지의 보편적 덩어리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좀 더 자세히 알아 볼 필요가 있지요.
에너지의 음과 양
The Yin and the Yang of It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이거에요. 어떻게 하면 물리적 창조를 양자적 경계막을 통과해서 차원상승 시킬 에너지를 끌어 모을 것인가? 답은 꽤 간단해요. 우린 창조 에너지의 양극성을 증가시켜서 그렇게 하지요. 이미 언급했듯이, 창조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해요. 이만큼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건 단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죠. 창조 에너지의 성격과,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서 에너지가 쓰이는 방식에 대해서 아직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더 완전하게 이야기하려면, 에너지가 통합된 이원성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짚어줘야 하죠. 아시아 문화에서는 에너지의 이런 측면을 음양이란 상징으로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음양의 이미지를 잠시 생각해 보죠. 원 전체는 창조의 에너지를 표상하고 있어요. 그건 구할 수 있는 에너지 자원의 전부죠. 사용되지 않고 있는 동안 에너지는 중립적이거나 균형이 잡혀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창조의 에너지를 중립적인 형태로 사용하지 않아요. 우린 그걸 양적인 측면과 음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사용하죠. 이런 에너지가 구체화되면, 우리는 창조의 양극성을 갖게 되요. 암수, 부모, 양성자와 전자, 항성과 행성, 흑백, 주야를 비롯한 거의 무한한 수의 대립하는 쌍을 갖게 되죠. 즉, 이원성을 갖게 되요.
이런 이원성은 아주 중요해요. 왜냐하면 대립하는 것들이 갈라지고 합쳐지는 데서만 창조가 구체화되니까요. 단순화시킨 것이긴 하지만, 우린 양적인 요소를 “앞으로 나아가고 팽창하는” 에너지적 원동력 또는 스파크로 사용한다고 말할 수 있겠죠. 음적인 요소는 그런 스파크를 잡아서 뭔가 흥미로운 것으로 형태를 갖추게 하는 형성의 틀로 사용해요. 이 두 에너지를 함께 모으는 것이 바로 에너지가 구체화되는 길이죠. 이런 생각은 음양이란 기호에 상징적 형태로 잘 드러나 있어요.
우리가 차원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창조는 진동수가 다른 단계마다 각기 다른 성격을 갖는다는 이야기를 기억할 거에요. 낮은 단계는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하죠. 높은 차원은 적게 필요하구요. 낮은 단계에서 현실화된 것은 오래 가요. 높은 단계에서 현실화된 것은 곧 사라져요. 높은 차원에서는, 우리의 의도가 에너지를 보다 균형 있게 사용해서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가장 높은 단계에서는, 에너지가 근원에 가깝고, 빨리 진동하고, 생각에 대한 반응이 빨라요. 작은 양의 양적 에너지로 작업을 시작하고, 같은 양의 음적 에너지로 형태를 만들면 되죠. 하지만, 필요한 양극성은 부차적이에요. 우리가 쓰는 에너지는 음과 양이 대충 비슷한 에너지 공간을 차지하는 균형 잡힌 것이죠.
알다시피, 물리적으로 창조하기 위한 조건은 창조의 단계를 내려가면서 달라지죠. 진동이 느려지고 창조가 갈수록 단단한 형태를 취하면서, 창조에는 전체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지고, 그 중에서도 음에너지보다 양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해지죠. 이건 직관적으로 말이 되는 얘기에요. 물 위로 배를 밀려면, 많은 힘이 필요 없어요. 하지만, 똑같은 배를 땅 위에 놓고 밀려면, 즉각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죠. 우리가 하는 창조도 마찬가지에요. 진동수가 낮은 차원으로 이동할수록, 점점 땅에서 배를 미는 것처럼 되는 거죠.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많은 힘이 필요해요. 갈수록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배를 미는데 필요한 추가적 힘을 얻기 위해서, 우린 에너지의 균형을 조정해야만 해요. 음에너지보다 양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우린 추가적인 힘을 발생시키죠.
우리가 에너지를 구체화시킬 때 어떻게 균형을 잡는가 하는 건 각 차원마다, 그리고 창조의 각 단계마다 다른 요구사항에 따라서 결정되죠. (낮은 차원에서 그러하듯이) 양적인 추동력이 좀 더 필요하다면, 우린 남성적인 쪽을 더 많이 올릴 것이죠. (예를 들어, 양에너지를 더 많이 쓰고 난 다음, 에너지를 전체적으로 다시 균형 잡을 때처럼) 여성적인 쪽이 더 많이 필요하다면, 우린 여성적인 에너지 비중을 올리죠. 균형 잡힌 양극성만으로도 충분하다면, 그냥 그렇게 하구요.
간단하죠?
또 하나 주목할만한 점은, 에너지의 균형을 바꿀 수 있기는 하지만, 쓸 수 있는 전체 양은 바꿀 수 없다는 거죠. 끌어 올 수 있는 전체 에너지는 정해져 있어요. 그러니까, 정해진 양의 에너지에서, 음과 양의 비율은 달라질 수 있지만, 원래 있던 전체량 이상으로는 늘어나지 않는다는 말이죠. 따라서, 양 쪽을 높이면, 음 쪽을 낮출 수밖에 없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나오죠. 총량은 여전히 같지만요. 음양 상징에서 이건 완벽하게 묘사되어 있죠. 양 쪽(추동력이 되는 쪽)이 강해질수록, 음 쪽은 작아지죠. 하지만 음양의 총량은 여전히 같아요.
이게 처음에는 좀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사용하는 에너지 총량이 큰 물통에 담겨있다고 상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에요. (흰색, 검은색 아니면 회색 같이) 물통 안에 든 물의 색깔은 상대적인 에너지 균형을 나타내요. 양을 강화하고 싶으면, 흰색 물감을 물에 더하고 물 색깔(또는 균형)이 바뀌죠. 음으로 균형을 잡고 싶으면, 검은색 물감을 더해요. 물통 안 물의 총량은 변하지 않지만, 물의 색깔은 변하죠.
한가지 중요한 첨언을 하자면, 물통과 음양 상징의 비유를 생각해본다면, 에너지를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거나,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식으로) 위계질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에너지 그 자체는 그냥 에너지이고, 그걸 어떤 식으로 균형 잡든 간에, 에너지는 동일한 뿌리의 부분이에요. 흑백, 암수, 부모, 이건 모두 똑같은 에너지에요. 인종주의자와 성차별주의자들은, 이걸 귀담아들으세요. 다 똑같은 에너지라구요!
알아들으셨나요?
이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거에요. 이 차원에서 우리의 영적 숙제는, 차원상승의 경계를 뚫고 넘어갈 추동력을 충분히 발생시켜서 물질을 생명의 나무 위로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것이죠. 이제 우리가 그걸 어떻게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우리는 양에너지를 높여요. 그렇게 하면, 과도하게 많아진 양에너지가 발생시킨 추가적인 힘으로 인해 우리의 영적인 손끝에서 말 그대로 스파크가 튀게 되죠.
불행히도, 문제가 있어요. 창조의 에너지는 하찮게 볼 것이 아니어서,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치우치게 에너지를 사용하다간 깜짝 놀랄 만큼 어려운 상황을 낳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에너지 균형을 조정할 때 우리는 조심스러워야 해요. 에너지의 균형을 다시 바로잡는 것이 갖는 보다 넓은 함의는 3장에서 다루게 될 거에요.
결론
Conclusion
자, 이제 당신은 삶의 의미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함께, 차원상승 과정의 물리적 역학에 대한 개념적 요점을 알게 되었을 거에요. 창조란 단순히 양자 에너지 층 차를 거쳐서 높은 진동수 상태에서 낮은 진동수 상태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에너지적 과정이란 걸 알았죠. 진동수 단계를 내려가는 것(descension, 하강)의 혜택은 우리 의도를 갈수록 물리적으로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죠. 반면, 그런 만큼 창조에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우리가 실현하고자 하는 현실이 우리 의도에 전처럼 편하고 신속하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죠.
다행히, 우린 이 낮은 차원에서 물리성이 보이는 느린 반응과 관성에 영원히 묶여있지는 않아요. 제대로 노력하면, 우린 우리가 물리적으로 창조한 것을 차원의 계단 위쪽으로 올릴 수 있어요. 물리적으로 창조된 것의 진동수를 올려서 차원 사이를 나누고 있는 양자적 경계를 통과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만든 창조물에 더 많은 에너지를 돌리면 되요. 이게 차원상승이지요. 차원상승의 혜택은, 물질이 단단한 물리적 성격은 유지하면서도, 현실화하는데 전처럼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에요. 차원상승이 진행되면서, 우린 높은 차원에서 창조할 때의 혜택과 낮은 차원에서 창조할 때의 혜택을 동시에 누리게 되는 거죠.
우린 두 세계의 장점만을 취하게 되요.
케�을 먹어도 케�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황을 즐기는 거죠.
기술적으로는, 이러한 차원상승의 과정은 이미 일어났어요. 물리성을 자극해서 가장 낮은 양자적 경계를 넘어서게 하는데 이미 성공했어요. 당신의 의도가 현실화되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증거를 당신 주위 어디서나 볼 수 있어요. 이걸 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시간의 물리적 차원을 고려해보는 것이죠.
시간이 빨라진 것 같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어요. 전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일들이 생기고, 많은 발견이 이루어지고, 많은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시간이 압축되었다고 사람들은 말하죠. 이런 압축은 꽤나 현실적인 것이고, 지금 우리의 물리적 우주가 전보다 더 빨리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의 증상이에요. 시간은 앞으로 좀 더 압축될 거에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상승하는 지구를 따라잡으면서, 사는 게 전보다 힘이 덜 든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면, 우리가 시간에 대해서 갖는 느낌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거에요.
지금 우리에게 진짜 큰 도전은 차원상승이 아니라 깨어나는 거에요. 차원상승이 진행되면서, 당신의 무지와 공포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요. 당신에게 왜 무지와 공포가 부과되었는가 하는 이유는, 우리가 과거의 차원상승 시도들과 연관된 문제들을 이야기할 때 자세히 다루어질 거에요.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당신은 자신이 정말 누군지 기억하는 걸 방해해온 공포와 환상을 하나씩 없애는 작업을 시작하는 게 소중해요. 다른 이유는 고사하고서라도, 만약 공포와 환상을 없애지 않는다면, 차원상승하고 있는 우주의 새로운 상황에서는, 당신의 환상과 공포가 물리적으로 빠르고 상당히 강력하게 현실 속에서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에요. 만약 당신이 이 영광에 참여해서 공포와 부정적 결과 없이 차원상승하고 싶다면, 앞으로 나가세요.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당신의 의도를 말로 표현하시기만 하면 되요. 다음과 같은 간단한 긍정을 하루에 여러 번씩 반복해서 말하세요.
“난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난 생명을 선택한다. 난 차원상승을 선택한다.”
그러면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화끈하고 영광스러운 경험이 시작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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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크리스탈 상태로 전환하고 있는 사람들 중 다수가 신체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여러분들 중 다수가 이미 5차원 상태에 도달한 동시에 3차원과 4차원에 공존해 있기 때문에 차원간의 끌어댕김 현상으로 인해 불안과 같은 정신적 현상이나 현기증, 피곤과 같은 육체적 현상을 느끼게 됩니다.
만일, 5차원 내지 6차원 상태에 완전히 머무르게 된다면, 완벽한 고요와 균형 그리고 평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Q: 고차원 상태에서 물질에 대한 의존도는 어떻습니까? 가령 돈 같은 것들?
A: 고차원 상태에서 돈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질화 기법을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즉, 어떤 것을 원한다면 그것을 요청하기만 하면 됩니다. 필요한 모든 것들이 여러분에게 물질로 "현현"될 것입니다.
Q: 하모닉 컨커던스(Harmonic Concordance)가 예견되는 시점인 11월 8일에 어떤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까?
A: "11월 8일과 12일에 걸친 은하적 정렬이 있은 후 5차원 상승을 위한 모든 작업들이 "완결"됩니다."
지난 8월 이후 인류의 5차원으로의 여정에 있어 집단 의식의 상승을 위한 강력한 활동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3차원과 4차원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기에 이러한 활동속에 트러블이 있었지만, "어머니 지구 가이아 여신"은 5차원으로 굳건히 나아갈 것을 선택했고 이미 그렇게 되었습니다.
빛의 일꾼 여러분들은 상승 과정을 촉진시키기 위해 고차원 에너지를
유지하느라 상당한 수고를 감수해야 했습니다.
만일, 빛의 일꾼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지구상에서 사멸할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 자명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빛의 일꾼들의 노고 덕택에 인류는 5차원과 6차원으로 상승함으로써 "육체적 천사로서 탈바꿈"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빛의 일꾼들은 평상시에도 많은 일을 했고 심지어 잠을 자는 중에도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여러분들 중 다수가 피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작업들이 조만간 끝날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사실상 완료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이룩한 것에 대해 "자축"할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Q: 빛의 일꾼들 중 일부는 어머니 지구의 상승을 돕고자 다른 누구보다도 오랜 기간동안 상승 과정을 도와왔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A: 공을 굴리기 시작한 사람들은 소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상승 과정이 가속화될 수 있도록 공헌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상승의 세 물결이 작업을 완료하는 것이 2012년이었지만 첫 번째 물결의 빛의 일꾼들이 다른 이들을 계속 돕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진전이 있었으며, "2003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새로운 지구, 5차원 파동의 지구가 현실로 드러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빛의 일꾼들 다수가 지금 이 순간 현실을 지탱하는 주춧돌이 되었으며 다른 이들이 빛을 발견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빛의 전사로서 존경합니다.
여러분들은 상승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완수하고자 우리와 함께 오랜 길을 같이 걸어왔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5차원, 6차원의 육체적 천사로서 바라다봅니다.
Q: 3차원과 4차원에 머물기를 원하는 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A: 그들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단계적인 과정을 겪게 될 것입니다. 3차 대전은 없습니다.
사실 변화는 대다수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를 정도로 미묘한 상태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특정 시점에 이르러 모든 이들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간단합니다. 3차원과 4차원에 머무르려는 사람은 점점 불편해질 것이고, 5차원 이상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은 점점 더 편안해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진실과 빛을 찾기 위한 일환으로 무엇이 적절한 것인지 타당한 것인지 의문을 갖고 탐구하게 될 것입니다.
Q: 지구의 대격변에 대해 말해주십시오.
A: 파국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온은 정상화될 것이고 균형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하늘은 그 어떤 때보다 청명해지고 높아져 보일 것입니다.
Q: 그렇다면 새로운 지구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가지게 됩니까?
A: 삶은 보다 단순해질 것입니다. 마치, 태고적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양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인스턴트 음식은 사라질 것이고 자연식을 선호하게 됩니다. 점차적으로 신선한 과일, 야채류를 선호하게 됩니다.
자연과 인류 사이에 새로운 조화가 형성될 것입니다. 더 이상 사람이 자연을 정복하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물건이나 자원을 공유하는 습관을 가지게 됩니다.
동물과 식물을 세계의 한 부분으로 존중하게 됩니다. 그들 또한 5차원으로의 상승을 성취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동물들이 매우 온순해진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가슴의 사랑을 통해 대화할 수 있게 됩니다.
마침내, 여러분은 "가슴의 언어"로 말하게 됩니다.
그것은 천성적으로 알고 있는 언어이기 때문에 따로 배울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Q: 크리스탈 아이들이 상승 프로젝트에서 맡은 일은 무엇입니까?
크리스탈 아이들은 공동체 형태로 미래에 이 땅을 거닐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인류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5차원으로의 상승 과정을 가속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그들의 임무입니다. 크리스탈 아이들은 자신의 특별한 방식대로 에너지를 유지하고 순수함을 잃지 않음으로써 상승의 전반적인 과정에 여러모로 공헌하는 중입니다.
그들은 6차원의 존재입니다.
사람들 다수가 6차원에 머물기 힘들기 때문에 3차원이나 4차원으로 내려가려는 경향이 있지만, 크리스탈 아이들은 6차원의 에너지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3차원 파동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부모를 상태로 다툼을 벌이지 않는 것도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Q: 사람들이 5차원 내지 6차원에 머물 수 있도록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A: "11월 이후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감지하지 못하겠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러 "차원간의 베일이 벗겨지는 순간" 그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고차원 영역의 존재와 소리'를 듣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즈음에 외계와의 접촉이 있을 것입니다. 빛의 일꾼들은 사람들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Q: 빛의 일꾼들이 새로운 지구에 대해 어떤 것을 이야기 해주어야 할까요?
A: 사람들은 두려움, 탐욕에서 균형, 이해, 공유의 세계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인류 모두가 하나됨의 원칙에 근거하여 삶을 향유하게 될 것입니다. 빛의 일꾼 여러분은 새로운 원칙과 법칙을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가령 물질화의 법칙이 그것입니다.
물질화의 소스는 8차원에 존재합니다.
어떤 것을 원하는 순간 8차원의 보텍스를 통해 그것을 원한 사람 앞에 물질로 "현현"하게 됩니다.
심상화의 새로운 방식은 8차원 영역에 원하는 것이 존재하며, 그것이 보텍스를 통해 8차원에서 5차원으로 하강하는 것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차원 간 심상화 과정에 익숙해지면서, 즉각적인 물질화가 가능한 환경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법칙들은 그룹 형태로 배우게 될 것이고,그리고 "차원의 심상화"는 그 결과가 엄청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될 것입니다.
빛과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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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몸 (스리 오르빈도)
스리 오르빈도는 인류의 신성한 변형의 위대함을 올바르게 이해한 몇 안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인도의 푼디트들과 정통 종교지도자들이 육체는 불멸한다는 싯다들의 글을 상상의 산물로 간주했던 반면에 스리 오르빈도는 40년 동안 싯다들의 상태를 깨닫기 위해서 노력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오르빈도는 전통적인 18인의 싯다의 반열에 들어서기를 원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티루물라와 라마링가와 오르빈도와 마더(오르빈도의 수제자)가 경험한 변형은 같은 성격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으리라 본다. 그러므로 오르빈도가 당시에 이야기한 것은 18인의 싯다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평가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스리 오르빈도가 영감을 통해 비젼을 경험하는 과정은 <신성한 삶(The Life Divine)>과 <요가의 통합(The Synthesis of Yoga)>에 잘 나타나 있고 자아가 변형되어가는 과정은 <요가에 대해서(Letters on Yoga)>와 서사시 <사비트리(Savitri)>에 드러나 있다.
특히 <요가에 대해서>와 <사비트리>는 여러 단계의 변형과 그러한 변형의 과정에 따르는 어려움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오르빈도는 육체의 불멸을 인간 진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 중에서 거쳐가야 할 다음 단계로 보았다. 영원불멸은 영적인 변형의 결과였다.
영적인 변형의 과정에서 최고의 절정은 하나의 신성한 초월의식이 의식의 낮은 단계로 하강하여 심지어 물질의 비의식 단계까지 하강하는 것이다.
이 경험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오르빈도가 묘사해 놓은 것을 보면 18인의 싯다와 라마링가가 앞장에서 적어놓은 경험과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 특히 “황금의 가루”와 “황금의 몸”에 관한 언급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인류에 대한 오르빈도의 깊은 사랑, 물질세계에 제시한 방향과 행동도 싯다들과 비슷하다.
요기 렐레와의 만남
1907년 12월 30일 정치 활동을 하는 와중에 오르빈도는 요기 비쉬누 바스카 렐레와 만났다. 오르빈도가 요가 수행자를 만나고자 했던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렐레를 만난 오르빈도는 이렇게 말했다. “요가수행을 하고자 하는 것은 제가 해야 할 일과 독립을 위해서입니다. 결코 산야사(세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나 니르바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두 사람은 3일을 한 곳에서 같이 지냈다. 렐레가 오르빈도에게 말했다. “앉아서 명상을 하면서 생각은 하지 말고 그저 당신의 마음을 바라만 보시오. 바라보고 있노라면 생각이 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 생각이 들어오면 마음에서 멀리 내던져 버려 마음이 완전히 고요해질 수 있게 하십시오.”
후에 오르빈도는 이때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처음엔 굉장히 강렬한 경험과 의식의 빠른 변화가 되풀이되었다.
그 의식은 내가 결코 의도하지 않았고 평소 가지고 있던 개념과는 정반대의 의식이었다. 그 의식으로 아주 투명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세상은 절대자 브라흐마의 초월적인 편재성 속에 있는 텅 빈 형상이 영화의 화면처럼 펼쳐진 것이었다.”
“자아(self)가 스며들어 있는 광대한 공간 속에서 보면 육체는 단지 떠도는 껍질처럼 느껴진다.”
“나는 갑자기 생각을 초월하여 정신활동이나 생명활동에 물들지 않은 상태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에고도 없으며 소위 실제라는 세계도 없었다. 이러한 상태는 인지되는 것을 오직 부동의 감각으로 주시했을 때 그리고 참된 실체 없이 물현된 그림자들의 텅 빈 형상의 세계를 순수한 고요로 채웠을 때 다다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분리된 다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통합된 '하나‘도 없다.
여기에는 형상도 없으며 관계성도 없으며 투명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생각할 수도 없으며 완전무결하며 최상의 실제이며 유일한 실제인 바로 ”그것“이 절대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것은 결코 머리로 깨닫는 것도 아니며 저 위 어디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추상적인 관념의 세계가 아니다. 이것은 실재한다. 실재하는 유일한 실체이다. 공간으로 이루어진 물질세계는 아니지만 이 물질세계의 외관에 스며들어 있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넘쳐나고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하게 존재한다.
그 자체 외에는 어떠한 실체도 들어설 여지가 없이 실질적이고 실재적이고 실체적인 것 외에는 허용하지 않는다. 이 경험으로 인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와 침묵과 무한한 해방감과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오르빈도는 “니르비칼파 사마디” 상태에 들어갔다. 이 상태는 베단타와 힌두의 경전에서 말하는 “그것”과도 같은 상태이며 불교에서 말하는 “니르바나”나 “해방”, 그리고 전 세계의 신비전통에서 추구하는 목적지이다. 또한 이 상태는 오랜 시간동안 끈질긴 노력을 하더라도 도달하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좀더 고차원의 경험을 하기 위한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다.
오르빈도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니르바나 상태가 완화되기 전까지 나는 밤낮으로 그 상태 속에서 살았다.
결국 그것은 위로부터 오는 더욱 위대한 상위의 거대한 의식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세상을 환영이라는 측면으로 바라보게 되면 환영이라는 것은 단지 작은 표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작은 표면 이면에는 광대한 신성의 실체가 있고 표면을 넘어서면 지고한 신성의 실체가 있으며, 처음에는 그저 영화의 화면이나 그림자처럼 보이는 모든 것의 핵심에는 강렬한 신성의 실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해서 다시 속박되거나 지고한 경험으로부터 추락해서 축소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진리가 끊임없이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유로워진 나의 의식 안의 니르바나는 나의 깨달음의 시작, 즉 완전한 것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니르바나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이루어야 할 유일한 깨달음도 궁극의 목표도 아니다.” “니르바나는 더 이상 추구할 것이 없는 궁극이 아니다. 인류가 하위의 본성을 통과하는 진화의 길이 끝나고 상위차원의 진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신비”를 추구하며
알리포르 감옥에서 석방되고 난 오르빈도는 다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알리포르 감옥에서 겪은 경험을 통해 오르빈도는 “마음을 넘어선 의식”에 도달해서 존재의 여러 측면인 각각의 진실(평화, 사랑, 아름다움, 권능, 지식, 의지 등)을 전체적으로 경험했다.
그러나 그 각각은 또한 서로 독립적이었다. 그러나 이 의식의 한 역시 뚜렷하게 보였다. 이 의식 안에서는 진실을 경험하되 한 번에 한 가지만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관점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마음을 넘어선 의식은 자체의 한계로 인하여 존재를 여러 측면으로 나눌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존재가 하위 멘탈계로 하강하면 할수록 존재의 측면은 더욱 세분화된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영혼과 천국에 대한 진실이 아니라 육체와 이 땅에 대한 진실이다. 그리고 인간이 필요로 하는 힘이 하나 더 있다. 인간의 속성을 지배하는, 아래의 차원으로 하강하여 존재를 세분하는 힘에 대항할 수 있는 권능이다.오르빈도는 이 아래에서 진실한 삶을 살 수 있는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저 너머 침묵의 세계나 고상한 환희가 넘치는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삶도 요가의 한 분야이다.”
오르빈도는 말했다. “마음이 인간속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마음의 작용으로 인간의 제도를 무한히 변화시켜 나가지만 제도를 통해서 결함이 표출될 뿐이다... 아래로 잡아당기는 것을 저항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극복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힘이 필요하다.” 오르빈도는 이 숨겨진 힘을 “비전” 또는 “지고한 의식”이라고 표현했다.
1910년 오르빈도는 칸데르나고르에서 그동안 찾아오던 “비전”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발견을 할 수 있었던 상황에 대해서 말한 적은 없다. 그러나 후일 오르빈도가 쓴 바에 따르면 그와 같은 여건은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었다. 오르빈도는 지옥과 같은 상황을 겪어 지나와야 했다. 왜냐하면 아래로 추락해 보지 않으면 결코 높이 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각자가 이룬 영적인 진화의 단계에서 지고한 의식의 권능과 빛을 하위의 속성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활동 속으로 불어넣어야 한다.”
신성이 인간 본성을 변화시키면서 우리에게 하강한다 해도 인간 본성은 상위차원으로 힘들게 올라가면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진화를 막는 모든 장애를 제거하면서 변하는 것이다.
공포와 욕망과 고통과 왜곡으로 물들어 있는 잠재의식을 정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인간 의식의 가장 낮은 단계는 잠재의식이다. 이 잠재의식은 물질계에서 삶을 살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물질계의 삶에는 질병과 죽음을 비롯한 일상의 습관도 포함하고 있다.
칸데르나고르에서 스리 오르빈도는 물질적인 잠재의식의 가장 깊은 단계에 도달했다. “엠프리레나(신성)에 몰두하고자 했었지만 길은 거기에 없었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 펼쳐진 모든 것들(고통, 슬픔, 좌절, 욕망...)을 철저하게 경험해서 그 반대의 극에 다다라야만 했다.” (그때 신성의 상태에 있게 된다)
“동시에 오르빈도는 ‘거대한 색깔의 파도’가 흰빛과 뒤섞여 있는, 마음을 넘어선 영역의 한계까지 다다랐다.” 또한 여기에 대응하는 아래에 있는 검은 바위에도 닿았다.
“쓰레기와 진창의 공포 한가운데서
나는 깊고 그리고 길게 파헤치고 있었다.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라.
아무도 파헤친 적이 없는 곳을 깊이 파라.
그대가 굳건한 주춧돌을 발견할 때까지.
그리하여 열쇠가 없는 문을 두드릴 때까지“
오르빈도는 소멸하지 않는 물질 의식의 심연의 밑바닥을 발견했을 때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는 다른 시간과 공간 속으로 뚫고 들어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 놀라우리만치 장엄한 빛의 장관을 가렸다.” “밤과 낮의 원대한 반전. 세상은 그와 같은 변화를 소중히 생각한다.” “하나의 계획안에서 높은 것은 낮은 것과 만난다.”
오르빈도는 몸의 모든 세포의 빛을 경험하면서 모든 물질의 토대인 지고의 빛을 뚫고 들어갔다. 변형의 “비밀”은 이것이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상위에 있는 의식은 하위에 있는 의식의 또 다른 면이다. “만약 무한의 궁극에 다다르고 싶다면 유한의 궁극을 지나가야 한다.”
“황홀감에 넘치는 천국은 완벽한 지상을 꿈꾼다.
슬픔에 차 있는 땅은 완벽한 천국을 꿈꾼다.
공포심으로 최면이 걸린 그 둘은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
황금의 지고함
지고함에 대해서 묘사해 놓은 것을 보면 18인의 싯다가 소루바 사마디에 대해서 묘사한 회상록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황금의 몸”을 가지고 “황금의 사마디”에 대해서 이야기한 라마링가의 경험과도 비슷하다. 오르빈도의 수제자인 마더는 처음으로 이를 경험하고 다음과 같이 적었다.
“권능과 따뜻함과 황금이 이 경험에 대한 인상이다. 이것은 액체처럼 유동적인 것이 아니라 작열하는 황금빛 가루와 같다. 이것들 각각은 (입자로 불릴 수도 없으며 또한 조각으로도 불릴 수 없으며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수학적인 개념의 ‘점’이 아니라면 점이라고 할 수도 없다) 생동감 있게 살아 있는 금이다. 따뜻한 금가루, 이것은 빛난다고 할 수도 없으며 어둡다고 할 수도 없으며 우리가 이해하는 것처럼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저 아주 작은 금가루가 무수히 많을 뿐이다. 금가루들이 내 눈과 내 얼굴에 닿았다. 그리고 엄청난 힘과 충만감과 모든 힘의 완벽한 균형을 통한 절대적인 평정을 느꼈다. 금가루는 풍부하고 충만했으며 굉장히 빠르게 움직였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한정 빨랐다. 동시에 평화와 완벽한 균형 그 자체였다.”
“... 그것은 완전한 부동심을 준다. 그것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지상의 모든 진화의 최초의 근원이고 진화를 유지시킨다... 그 의식 상태에서는 (황금빛 금가루의) 활동력이 육체의 세포들을 개개의 형태로 형성하도록 집중시키는 힘을 능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와 같은 묘사는 다음에 나오는, 싯다의 가장 함축성 있는 문장을 상기시킨다.“고요하라. 그리고 깨달으라. 내가 신이라는 것을.” 부동성은 초월적 힘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1910년 프랑스 작가 폴 리차드가 폰디체리에 왔다. 그는 1914년 다시 방문해서 오르빈도에게 철학적인 내용의 월간지를 2개 국어로 출간해 보자고 제안했다. 월간지의 제목은 ‘아르야(Arya)'나 ’위대한 통합에 대한 재고(Review of the Grand Synthesis)'가 어떻겠느냐고 덧붙였다. 1914년에서 1920년 사이에 오르빈도는 이 월간지를 발행하면서도 거의 5천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저술했다. 오르빈도는 쉬지 않고 몇 권의 책을 저술했다. 이러한 책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르빈도에게 인간 진화에 관한 철학적인 비전의 토대를 제공한 <신성한 삶(The Life Divine)>과 자신이 체험한 통합적인 요가에 대해 묘사하고 다른 요가 수행과 비교한 <요가의 통합(The synthesis of Yoga)>. 이와 함께 <기타에 관한 에세이(Essays on the Gita)>는 지고한 의식의 하강에 관해서 오르빈도가 체험한 비전의 빛으로 바가바드를 해석해 놓은 것이다. <베다의 비전(The Secret of the Veda)>, <인간 단일성의 이상(The Ideal of Human Unity)>, <인간의 주기(The Human Cycle)>는 다가올 미래의 인간사회를 예측해서 쓴 글이다.
오르빈도는 쏟아지는 영감 속에서 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쉽게 떠오른다고 했다.
“나는 애써서 글을 쓰지는 않는다. 단지 상위의 권능이 나를 통해 글을 쓰도록 맡긴다. 그리고 그 상위의 권능이 그처럼 나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지 않을 때는 글을 쓰지 않는다. 예전에 머리를 위주로 살던 시절, 요가를 알게 되어 시와 산문을 쓰기 전에는 무언가를 억지로 하려고 했었다. 다시 한번 상기시키면 ‘아르야’를 저술할 때나 편지를 쓸 때나 답장을 쓸 때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요한 마음에서 나온다. 나는 상위에서 내려와 형상화될 준비가 된 것은 무엇이든지 글로 옮긴다.”
1920년 오르빈도는 펜을 내려 놓았다. 아르야의 마지막 판이 출간되었다. 그 후 30년 동안 쓴 글은 어마어마한 양의 편지와 23813행에 달하는 서사시 <사비트리(Savitri)>가 거의 전부다. 서사시 <사비트리>는 인간의 진화에 대한 오르빈도의 비전과 잠재의식과 비의식으로 인해 겪은 고통, 그리고 의식의 높은 영역의 경험에 대해서 생생하게 옮겨 놓은 것이다.
변형의 기로
오르빈도는 인류가 진화의 기로에 있는 것을 보았다. “만약 지상에서 영적으로 펼쳐지는 것이 우리가 물질계에 탄생하는 진정한 이유라면, 그리고 본질적으로 자연계에서 전개되어 온 것이 의식의 진화라면 현재의 인간은 진화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다. 현재의 인간은 너무나 부족하게 스피리트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그 자체는 굉장히 제한된 형태와 수단이다. 마음이란 의식의 중간 영역이기 때문에 정신적 존재는 단지 과도기적 존재일 뿐이다. 마음 작용은 단지 과도기적 작용일 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류가 마음 작용을 넘어설 수 없다면 인류는 마음 작용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마음을 넘어선 초인(superman)들이 나타나서 창조를 이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인류가 자신의 마음을 초월할 수 있다면 마음을 넘어선 초인의 상태에 도달하거나 적어도 마음 작용과 삶과 몸을 통해 자연에 현현해 있는 스피리트의 진화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르빈도의 말에 따른다면 우리는 “변형의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기로인데 “질료 안에서 생명이 나타나듯이, 생명 안에서 마음이 나타나는 것과 같은 중대한 기로인 것이다.” 그러나 질료 안에 생명이 나타날 때와는 다르게 인간은 “우리 자신의 진화를 위해 협력”할 수 있다.
그러나 오르빈도는 인간의 의지로 변형을 가져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점점 더 상위의 신성한 의지에 내맡겨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의 마음과 활력과 물질적인 본성이 지니고 있는 한계는 너무나 크다
육체에 관해서 오르빈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적인 전통에서는 육체를 영적으로 승화하거나 변형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로 여겼고 영혼을 세속적인 본성에 묶고 신성 속에서 영적인 달성을 이루거나 개개의 존재가 신성 속으로 녹아 들어가서 승화하는 것을 막고 있는 무거운 추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육체의 역할에 대한 개념이 이 지장을 무지의 영역으로 보거나 지상에서의 삶이 결국에는 구원을 받아서 철수할 것으로 본다면 사드하나(영적훈련)를 설명하는데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지상에서 신성한 삶을 성취하고 세속적인 본성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자체를 지상에서 스피리트를 구체화시키는 통합적인 목표의 일부분으로 본다면 사드하나를 설명하는 데는 부적절한 표현이다.
만약 우리 존재가 완전히 변형되고자 한다면 우리 몸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몸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 지상에서 신성한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고한 빛으로 변형된 질료(물질)는 의식적인 의지에 반응을 하게 되고 스피리트의 특성들을 현현시킬 것이다. 즉, 영속성, 유연성(순응성), 부드러움(온화), 아름다움, 밝음의 정도, 지복, 이와 더불어 육체의 중요한 생리학적인 변화도 있을 수 있다.
“변형이라 함은 오로지 물질적으로만 배열된 모든 신체조직이 각각의 다양한 진동을 가지는 집중된 에너지로 대체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신체 기관을 대신해서 의식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의식의 에너지 센터들이 생긴다. 더 이상 위장, 심장, 폐, 그리고 혈액의 순환도 없어진다. 이런 모든 것은 사라지고 이러한 기관을 상징하는 진동의 작용이 이를 대신한다.”
육체는 “영혼을 운반하는 보잘것없는 체”가 아니라 “의지에 따른 집중된 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의식의 변화는 가장 중요한 요소 즉, 원인이 되며 육체의 변형은 종속적인 요소 즉, 결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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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호흡식을 배우셔야 합니다. 그 누구도 칠년치 음식을 준비하지는 못할꺼 아니에요? 사실 호흡식은 별거 아니에요. 내가 음식을 먹어야 살고 못먹으면 죽는 다는 생각이 사람을 죽게하지요. 그냥 산소를 들이마시면서 머리속으로 나는 이 산소에서 에너지를 빨아드려 내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채운다 생각하시면 되요. 호흡식가들은 이미 우리 몸이 호흡식하는 방법을 보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생각으로 그 방법을 깨우면 그만이에요. 아무튼 여러분이 죽더라도 다시 여러분에게 맞는 행성으로 가겠지만, 그래도 아직 인간의 몸이라 걱정이 되네요. 다들 신에 축복이 있기를 빌겠습니다.
앞으로 그 무엇이 일어나는 짭게 생각하시면 안되요.칠년에서 팔년입니다.사실상 이스라엘하고 이란하고 전쟁이 나면 모든것은 마비 상태가 될거에요. 그냥 모든것이 혼돈일거에요. 오월달 중순부터는 정말 시작할지는 모르나 일루미나티들이 전쟁을 부추기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빛의 시대에도 관련자료 중에 일루미나티 마지막카드 가짜외계인 동영상을 보셔요. 마지막 카드입니다. 얼마나 긴박한지 아시겠지요? 아무튼 중요한것은 식량인데요. 기름한방울 안나오는 우리나라에서는 중동 전쟁에 나라가 마비 될겁니다. 그러니까 식량을 구할래야 구할 수가 없을 거에요. 사실상 칠년에서 팔년치에 식량을 구한다는 것도 힘들고요.http://www.suprememastertv.com/kr/ 로 가셔서 특집모음에 호흡식가 편들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는 필수입니다. 무슨수로 칠년에서 팔년치를 먹고 사실 수 있겠어요? 그러나 먹지않고 사는 것이 가능하다면 가뿐한겁니다. 명상을 하실줄 아시면 조금 쉬울거에요. 기를 운용 하실줄 아실테니까요. 단순히 숨을 들이 마실때 나는 에너지를 흡수한다. 생각하면서 깊게 들이마시세요. 그러면 제 경험으로는 머리쪽이 닭살돋는 느낌? 미세진동? 을 느낌니다. 에너지를 느끼시고 숨을 내 뱉을때 그 에너지들이 온몸으로 퍼진다고 생각을 하셔요. 100프로 믿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것이.전부에요. 몸은 이미 호흡식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열쇠로 따시면 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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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야 센터 / 신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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