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덕 규범의 근거는 무엇인가? ]
1. 의무론과 목적론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에 옳고 그름에 대한 자기 나름의 도덕 판단을 내리고, 이에 대해서 갖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여기서는 이유를 제시하는 여러 형태 중에서 대표적인 것 두 가지를 골라, 그것이 가지는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유를 제시하는 두 가지 방식이 서로 상충하는 결론에 이르게 될 때에 생기는 도덕적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어떤 행위가 옳고 그르다는 판단에 대한 이유나 근거를 물었을 때, 우리는 흔히 어떤 도덕 규칙에 의해 대답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행위가 바른 말을 하고 약속을 지키라는 규칙을 어긴 행위이므로, 그르다는 판단을 내린다고 한다. 이유는 제시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어떤 행위가 가져올 결과가 좋거나 나쁘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거절하는 행위가 그르다고 판단하는 것은, 그로 인해 그 사람은 더 없는 고통과 불행을 당하는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한다.
그런데, 도덕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유를 제시하는 한두 가지 방식이 서로 상충(相衝)할 때에 생겨난다. 앞에 나온 "도덕적 상황"에서 밝힌 바와 같이, 도덕적 딜레마는 대체로 이러한 상충의 경우에 생겨나게 된다. 플라톤이 든 예에서는, 무기를 돌려 주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도덕 규칙과 무기를 돌려주었을 때에 예상되는 나쁜 결과가 서로 상충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도덕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의무를 가지는 한편,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행위를 해야 한다는 요구도 가지게 된다. 어떤 것을 택해야 할지 분명하지가 않을 뿐만 아니라,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러한 사례들에 있어서, 도덕 철학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최선의 결과를 위해 도덕 규칙을 양보해야 할 경우는 언제이며, 도덕 규칙을 준수하기 위해 최선의 결과를 희생해야 할 경우는 언제인가?
이 문제를 달리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어떤 사람은 결과가 다소 나쁠지라도 규칙을 고수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은 보다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규칙을 어기는 것이 옳다는, 다시 말하면 보다 좋은 결과가 예상되면 그 규칙에 예외를 두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위의 문제는 ‘어떤 조건 아래에서 도덕 규칙에 예외를 둘 수 있는가’ 라는 물음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는 도덕 철학에 있어서 또 다른 중요한 문제이다.
전통적인 도덕 철학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두 가지 입장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의무론자(deontologist)들은 도덕 규칙에 일치하는 행위는 옳으며, 이러한 규칙에 어긋나는 행위는 그르다고 한다. 이들의 입장에 따르면, 우리는 언제나 도덕 규칙에 따라야 하며, 그에 따르는 행위가 다소 나쁜 결과를 가져올지라도 이를 무시하려고 한다. 이러한 입장은 도덕 규칙에 예외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쪽이다.
이에 반해서, 목적론(teleologist)들은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는 옳고, 그렇지 못한 행위는 그르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우리는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해야 하고, 따라서 도덕 규칙을 지키고 어기는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본다. 이는 행위 결과에 비추어 언제라도 도덕 규칙에 예외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음을 말한다.
의무론적 윤리설이나 목적론적 윤리설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고전적으로, 칸트의 도덕 이론은 의무론을, 공리주의(功利主義)는 목적론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각각 의무론이나 목적론에 있어서 지극히 단순하고 극단적인 입장으로서, 그 이후의 윤리학설들은 보다 체계적이고 세련된 이론으로 발전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보다 단순한 유형들에 대해 제기되는 갖가지 문제를 우선 살펴본 다음, 이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발전된 새로운 유형의 이론에로 나아가기로 한다.
의무론적 윤리설은 우선 해결해야 할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의무론적 입장에 따르면 올바른 도덕 규칙에 따르는 행위는 옳고, 그것을 어기는 행위는 그르다고 한다. 그러나, 가능한 수많은 도덕 규칙 중에서 어떤 것이 옳은 도덕 규칙인가를 가려 줄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둘째, 의무론적 입장은 엄격한 도덕 규칙들에 대해서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 입장으로 수정될 수 있는가? 칸트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두고 고심한 듯하다.
칸트는 사람들의 행위 지침이 되는 도덕 규칙 중에서 어떤 것이 올바른 도덕 규칙인가를 결정하는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어떠한 도덕 규칙이 모든 사람이 따를 수 있는 행위의 보편적인 법칙이 될 수 있을 때, 그것은 올바른 도덕 규칙이 된다고 한다.
또, 칸트는 ‘약속을 지키고 바른 말을 하는 것과 같은 도덕 규칙을 어김으로써 보다 유익한 결과가 생길 때에 그러한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진정한 도덕 체계에 있어서는 이러한 예외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비록 결과가 나쁠지라도 도덕 규칙에 따른 행위라면 도덕적으로 나쁜 행위로 볼 수 없다는 도덕적 엄격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칸트가 다루지는 않았으나, 의무론자가 당면하게 될 셋째 번의 문제가 있다. 흔히 지적되듯이, 도덕 문제는 두 가지의 다른 도덕 규칙이 상충할 때에 생겨난다. 만일, 칸트가 이 문제를 고려했다면, 그는 둘째 번 문제를 다시 생각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갑과의 약속을 지키자니 을에게 거짓말을 해야겠고, 을에게 바른말을 하자니 갑과의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와 같이 상충하는 규칙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의무론자의 답변은 무엇일까?
상충하는 도덕 규칙의 문제와 더불어 도덕 규칙에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무론을 비판하고 목적론적 윤리설을 옹호하게 했다. 목적론적 윤리설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공리주의이다. 우리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공리주의의 기본 원리라고 알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어떤 상황에서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최대의 행복을 가져오는 행위가 옳다고 한다.
이러한 입장이 의무론적 윤리설의 난점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도덕 규칙에 따르는 것보다 그것을 어기는 것이 보다 많은 행복을 결과적으로 가져올 때, 공리주의자는 그 도덕 규칙을 어겨도 좋다고 말한다. 따라서, 공리주의적 입장은 의무론적 입장과는 달리, 정당한 예외라면 그것을 허용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도덕 규칙이나 의무가 상충할 때, 공리주의자는 그에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가장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줄 규칙이나 의무에 따르라고 가르친다. 의무론적 입장과는 달리, 공리주의는 어떤 상황에서 도덕 규칙들이 상충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말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공리주의적 입장이 의무론의 난점을 피할 수 있는 이유 또한 쉽게 알 수 있다. 공리주의는 도덕 규칙보다 그 결과에 의해 행위들을 평가함으로써, 상충하는 도덕 규칙보다 우리가 의거할 수 있는 보다 기본적인 공리의 원리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적인 기준으로 인해 예외가 인정될 수 있고, 상충하는 도덕 규칙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예외를 인정한다 해서 전통적인 도덕 규칙들이 소홀히 취급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공리주의자들은 전통적인 도덕 규칙들이 대체로 사람들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지침으로서, 오랜 세월을 거쳐 정선된 것임을 인정한다. 단지 규칙에 따름으로써 가장 큰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명백할 때에만 그것을 어겨도 좋다고 한다. 따라서, 공리주의는 보기만큼 그렇게 극단적인 입장은 아니다.
공리주의가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나, 철학자들은 그 속에서 심각한 결점들을 발견해 내었다.
첫째, 공리주의는 인간의 행복을 최대로 도모하는 것이 도덕에 있어서 유일한 의무라고 하며, 어떤 사람의 행복도 모두 똑같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때, 공리주의자는 우리의 부모나 형제, 민족 등과 같이 우리와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 가지는 특정한 도덕적 의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둘째, 우리의 의무로 생각되는 행위에는 행복과 직결되지 않는 것도 있다. 선거에 있어서, 우리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후보가 있다. 그런데,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나의 한 표는 선거 결과에 있어서 그 영향을 무시해도 좋으며, 따라서 투표를 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한다는 이유로 나의 의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고전적 공리주의자는 이런 종류의 도덕적 의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신중한 공리주의자라면 이와 같은 두 가지 반론에 대하여 방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다 심각한 문제는, 공리주의적 입장은 우리의 도덕 규칙에 대해서 지나치게 많은 예외를 허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공리주의에 있어서는, 규칙을 어기는 것이 그에 따르는 것보다 전체 행복에 보탬이 된다면, 미련 없이 규칙을 어기라고 한다. 물론, 행복을 위해 규칙을 어겨야 할 경우가 가끔 있다는 것이 우리의 도덕적 상식이기는 하나, 이런 경우는 상당한 행복이 걸려 있을 때에만 한한다. 예를 들어,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약속을 어기는 것이 좋겠으나, 사소한 행복이나 편의를 위해서 약속을 어길 수는 없지 않은가?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때때로 도덕 규칙에 따르는 것과 최선의 결과, 즉 최대의 행복을 가져오는 일은 상충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때로는 최대 행복을 결과하는 행위를 택해야 하고, 때로는 규칙에 따라 행위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소박한 형태의 의무론은 언제나 규칙만을 고수하는 점에서, 그리고 단순한 공리주의는 최선의 결과를 위해 지나친 예외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극단적인 의무론이나 소박한 공리주의의 난점을 피할 수 있는 보다 합당한 윤리설은 없을까? 이러한 이론에 대한 연구는 20세기 도덕 철학자의 주요한 관심사였다. 현대 윤리학자들은 의무론자가 도덕 규칙을 강조하는 점과 목적론자가 행위 결과를 강조하는 점을 모두 존중하는 윤리설을 구상해 왔다. 그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로스(Ross, W.D.)의 조건부 의무론과 규칙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는 이른바 규칙 공리주의이다.
2. 칸트와 로스의 의무론
칸트가 말한 것과 같이, 우리가 도덕적인 행위를 할 경우, 우리는 나름대로의 지침이나 규칙에 따라 행위한다. 즉,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행위 하라."는 규칙에 따라 행위하게 된다. 그런데, 칸트에 따르면, 우리가 이러한 행위의 규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바랄 수 있다면, 그러한 규칙은 곧 도덕 법칙의 자격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칸트는 도덕 법칙에 있어서 보편화할 수 있다는 특성을 강조하고 있다. 행위에 앞서 우리는 나의 행위 규칙이 보편화되기를 바랄 수 있는가? 즉,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이 행위해도 좋은가를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우리를 가르칠 때에도 이러한 마음에서 "친구에게 못 살게 굴지 마라. 그 애가 너에게 못 살게 굴어도 좋겠니?"라고 말했을 것이며, 성경에서 "남이 베풀기를 바라거든, 그대로 남에게 베풀어라."라고 한 말도 같은 정신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이러한 원리가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은 수없이 많다. 우리가 편한 대로 약속을 어긴다면, 우리는 "편한 대로 약속을 어겨라."라는 규칙에 따라 행위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이 보편화 될 때, 다른 사람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편한 대로 약속을 어기게 될 것이고, 그럴 경우에 결국 우리 사회에 있어서 약속이라는 제도가 더 이상 무의미한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편한 대로 약속을 어기는 일은 보편화될 수 없으며, 그러므로 그것은 도덕 법칙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칸트의 윤리설은 도덕 규칙들의 상충 문제와 예외의 문제를 합당하게 처리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다. 나아가, 보편화 가능성의 기준이 도덕 원칙을 가려내는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이라는 데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비록 그것이 도덕 원칙의 대체적인 윤곽을 정해 주는 것은 사실이나, 엄밀히 따지면 보편화 가능성이 있는 규칙이라 해서 모두 도덕 원칙이 되는 것은 아니며, 보편화되기 어렵다고 해서 반드시 도덕 원칙이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정직은 최상의 방도이다."라는 규칙은, 모든 사람이 그에 따라서 살아도 좋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것이 보편화되기를 바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은 이해 타산을 위한 처세술일 수도 있으며, 반드시 도덕 원칙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돕지 말아라."는 규칙이 보편화되기를 바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규칙이 도덕 원칙이 될 수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국의 윤리학자 로스는, 칸트가 남긴 상충하는 도덕 규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동시에, 때로는 공리주의자와 같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도덕 규칙을 어기는 것이 옳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윤리설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공리주의의 타당성을 일부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가지는 문제점을 비판함으로써 칸트의 윤리설을 수정하고 발전시키는 의무론적 윤리설을 제시했다.
우선, 로스는 인간의 도덕적 의무를 최선의 결과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의해 설명하려는 공리주의를 두 가지 점에서 비판하였다.
첫째, 도덕적 의무는 공리주의가 생각하는 것에 비해서 보다 사적이고 개인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우리는 모든 사람의 보편적 행복을 증진해야 할 의무도 가지지만, 우리와 특정한 관계를 가지는 사람에게 특수한 의무를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부모나 처자 또는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는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
둘째, 의무는 미래와 관련된 것도 있으나, 과거와 상관된 것도 있다. 어떤 의무는 미래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에 일어난 행위로 말미암아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은 앞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내가 과거에 행한 약속의 사실로 인한 것이라는 것이다. 약속을 지킴으로써 다소 나쁜 결과가 생긴다 하더라도, 나는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로스는 공리주의적 윤리설을 비판하면서 의무론의 진영에 속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는 극단적인 의무론자인 칸트의 입장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수정을 가하고자 하였다. 칸트에 있어서는 어떤 종류의 행위, 즉 사람을 죽이고,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어기는 행위는 언제나 나쁘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도덕적 현실과 전혀 다르며, 다음과 같은 단점은 어떤 식으로든지 극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그러한 행위에 정당한 예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칸트는 모든 도덕 규칙을 무조건적 규칙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둘째, 그는 의무가 상충하는 상황에서는 난관에 부닥치게 된다는 점이다. 칸트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의무, 즉 언제나 행해야 하는 의무와 상대적인 조건부 의무 사이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이 로스의 비판이다.
로스에 의하면, 조건부 의무는 이보다 더 중요한 다른 의무가 없는 한 절대적 의무가 되는 행위이다. 즉, 나는 약속을 지킬 조건부 의무와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조건부 의무를 가진다. 어떤 하나가 다른 것과 상충하지 않는 한 그것은 우리의 절대적 의무가 된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 상충할 때에 우리는 그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도덕적 갈등의 상황이 된다.
로스에 따르면, 우리는 바른 말을 해야 할 절대적 의무나 약속을 지켜야 할 절대적 의무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바른 말을 하거나 약속을 지켜야 할 조건부 의무, 즉 이보다 더 중대한 의무가 없다는 조건 아래 바른 말을 하고 약속을 지켜야 하며, 그런 한에서 이들은 절대적 의무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함으로써 상충하는 의무나 규칙의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며, 이것이 해결될 경우에 예외에 대한 문제도 사라지게 된다. 우리가 규칙에 따르는 일과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일 사이의 상충에 직면할 때, 로스에 있어서는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하나의 조건부 의무이므로 2개의 조건부 의무가 상충하는 셈이며, 이 때에도 다른 규칙들이 상충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로스는 여기서 또 다른 문제를 남기고 있다. 왜냐하면, 규칙이나 의무가 상충할 때, 어떤 조건부 의무가 더 중요한 것인지를 어떻게 가릴 것인가? 로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아무런 일반 원리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나,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며, 어떤 것이 더 중요한 조건부 의무인가에 대해서는 단지 우리의 직관이나 식견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직관이나 식견에 있어서 서로 불일치하며, 그런 한에서 이와 같이 모호한 기준에 호소한다는 것은 엄밀한 의미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로스가 말한 대로 규칙의 상충 문제와 예외의 문제를 보다 근원적으로 해결해 줄 원칙이 발견될 수 없는가? 어떤 도덕 철학자들은 이러한 일반 원리가 제시될 수 있다고 보는데, 그것이 가능하다면 로스의 입장은 다시 비판받지 않을 수 없다.
3. 공리주의
칸트의 의무론이 로스에 의해 발전되고 계승되듯이, 공리주의에 있어서도 전통적 공리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변화되고 발전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규칙 공리주의이다. 이에 비하여, 전통적 공리주의는 행위 공리주의라고 불린다.
규칙 공리주의는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이 그 개별 행위의 결과에 의해서 평가될 것이 아니라, 그 행위가 보편적으로 수행된 결과, 즉 그 행위와 관련된 규칙이 모든 사람에게 통용된 결과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의무론자인 칸트의 보편성을 공리주의가 받아들인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돗물이 부족해서 정원에 물주는 일을 삼가라는 지침이 공표되었을 때, 한 시민이 그 규칙을 어겼다고 할지라도 그리 나쁜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전체적인 수돗물 사정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정원은 수목이 물을 듬뿍 머금어 푸르고 싱싱해져서 보는 이로 하여금 즐겁게 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에 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므로, 그가 그러한 행위를 삼가야 할 별다른 이유가 없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정원에 물을 줄 때, 그 도시의 사람들은 먹을 물조차 귀하게 될 것이다. 정원에 물을 뿌리는 나의 행위는 그것만의 결과로 인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나와 동일한 행위를 하는 결과에 의해 그릇된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 규칙 공리주의의 주장이다. 잔디를 밟는 일이나 투표일에 기권을 하는 일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그릇된 행위가 된다. 개별 행위만을 두고 생각한다면 그 영향력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사소한 것이지만, 그러한 행위가 보편화될 때에 잔디는 황폐하게 되고, 유능한 후보자가 낙선하게 되는 불행이 초래될 것이다.
전통적인 행위 공리주의는 가능한 행위 중에서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최대의 행복을 가져오는 행위가 옳다고 하여 개별적 행위의 결과에만 주목한다. 그러나, 규칙 공리주의는 어떤 유사한 종류의 행위에 적용되는 규칙이나 의무가 많은 사람에 의해 준수될 경우, 다른 종류의 행위들에 적용되는 규칙이나 의무가 준수될 때보다 관련된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행복을 가져오면 그러한 종류의 행위들이 옳은 행위라 한다. 이런 식으로 상충하는 규칙이나 의무를 보다 기본적인 기준에 의해 조정함으로써 규칙 공리주의는 로스의 조건부 이론에 대한 강력한 하나의 대안이 된다.
그리고, 규칙 공리주의는 보다 중요한 또 하나의 문제, 즉 예외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게 되는가? 특히, 규칙 공리주의는 결과가 조금이라도 좋으면 언제라도 규칙의 위반을 허용하는 행위 공리주의의 난점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규칙 공리주의는 이러한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규칙 공리주의는 모든 사람이 어떤 유형의 행위를 했을 때, 즉 어떤 규칙에 따랐을 때에 어떤 결과가 생겨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사소한 행복을 위해서 약속을 쉽사리 어기게 되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모든 사람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게 되면, 사회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세워진 약속이라는 관행은 무너지게 될 것이므로 불행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약속을 어기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약속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일반 규칙을 택하게 된다. 보다 중대한 문제로 인해 불가피하게 약속을 어겨야 할 경우는 아주 드물며, 또 이렇게 제한된 경우에 한해서 약속을 어기는 일을 허용한다 해도 약속이라는 제도가 큰 위협을 받지는 않는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철학자들이 규칙 공리주의는 의무론적 윤리설과 목적론적 윤리설과의 유력한 조정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규칙 공리주의가 고전적인 행위 공리주의에 비하여 반드시 발전된 형태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행위 공리주의를 그대로 고수하면서 규칙 공리주의는 규칙에 대한 지나친 숭배로 인해 비합리적일 수가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규칙에 따르는 것이 좋은 것일 수는 있으나, 구체적인 상황에서 규칙을 어기는 행위가 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올 특수한 경우에까지 그대로 규칙에 따른다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고전적인 공리주의자들처럼 단순히 "언제나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를 하라."는 원칙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고찰한 여러 입장 중에서 어떤 것이 도덕적 상황, 즉 도덕 규칙에 따르는 행위와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행위가 상충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합당한 해답인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논의에 있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러한 물음이 옳고 그름의 성격에 대한 궁극적 문제를 제기하며, 이러한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행위해야 할지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소홍렬 외 철 학)
문제1) 자기 판단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도덕 규범 열 가지를 우선 순위로 적어 보자. 그리고, 각각의 도덕 규범에 대하여 그것이 중요한 이유를 제시해 보라.
문제2) 의무론과 목적론의 주장은 무엇이며, 각각의 장단점은 어떤 것인가?
문제3) 로스의 의무론이 갖는 강점을 칸트의 의무론과 비교하여 논술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