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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일·전 북한 중등학교 교사
<내가 태어난 곳은 함경남도 함흥이다. 거기서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함흥 성천강고등중학교에서 교원 생활을 했다. 부모님이 일본에 사시다가 북한의 허위선전에 속아 입북했으나 다행히 일본 친척들의 도움으로 가정 형편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었다.
<P>이런 평범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난 내가 평소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일 때문이었다.
<P>주변의 친한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다가 남한 방송을 듣게 됐고, 얼마 뒤에는 남한영화를 보고 나중에는 남한의 드라마 테이프까지 돌려보다가 국가안전보위부의 그물망에 걸려든 것이다.
<P>1995년부터 북한에선 대기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1990년대 후반은 기아와 아사가 전국적으로 보편화돼 함흥시 곳곳에서 굶어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눈에 띄었다. 그때부터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북한에 대한 환상을 다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위부가 나를 잡자고 수사망을 좁혀오니 앉아서 잡혀 죽느니 탈출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P>피눈물을 머금고 1998년 10월 부모ㆍ형제를 뒤로 하고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만 가면 살길이 열리겠지 생각했지만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국경을 넘은지 1주일쯤 지나 좀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吉林(지린)성 허룽(和龍)의 버스터미널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
<P>중국공안은 나를 허룽시 공안국에 유치시켰다가 다시 북-중 국경지역인 난핑(南平)에 위치한 중국 변방부대로 호송했다가 그 다음날 함북 무산군 칠성세관을 통해 다른 탈북자 15명과 함께 북송시켜 버렸다. 나는 두려움과 공포에 정신이 나간 상태였고, 주변 대부분 탈북자들도 사시나무 떨듯 공포에 질려있었다.
<P>무산군 보위부 유치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에게 「민족반역자 새끼」ㆍ「죽어야할 새끼」로 불려졌고 잠도 안 재우고 각목과 각종 고문기구를 동원한 매질 신문이 시작됐다. 무산군 보위부에서의 조사는 그나마 나은 편이였다. 이틀간의 조사를 마치고 15일 후에 함북 도보위부(청진)에서의 한달은 죽음과 삶의 경계선을 넘나들게 하는 지옥중의 지옥 경험이었다.
<P>여기서 7일간의 조사는 차라리 목숨이 끊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감방 계호원(간수)들이 구둣발과 각목으로 뭇매를 안겼다. 북한 인민군 군화는 워낙 단단하게 만들어져 그것에 차이면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느낀다.
<P>구둣발과 각목으로 얼마나 맞았는지 처음엔 살이 찢겨나가는 듯이 아프다가 나중에는 정신이 몽롱해지더니 각목에 맞는 부위에 퉁퉁 소리만 날뿐 감각조차 없어졌다. 이때 매 앞에선 장사가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온몸이 피멍으로 얼룩졌고 살점이 뜯겨 옷이 피범벅으로 변했다.
<P>초죽음 상태에서 신체검사라는 것을 하는데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길 때마다 좋은 옷을 입었다며 또 매질을 했다. 팬티까지 다 벗긴 후 감옥 구석에 무릎을 꿇려 앉히더니 또 구둣발로 나를 짓이기기 시작했다.
<P>조사관에게 제때에 대답을 못한다고 매질하고, 정신을 잃으면 물통에 머리를 처넣고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하곤 했다. 너무 맞아 온몸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P>이렇게 맞아도 제대로 불지않는다고 그들은 두 팔과 두 다리를 뒤로 비틀어 묶어놓고 조사실 천정에 거꾸로 매단 뒤 또 고문을 하기 시작했다.
<P>피가 머리로 쏠려 괴로워 버둥거리면 묶인 팔다리가 조여와 더 고통스러웠다. 짐승처럼 매달려 있자니 매 맞는 고통보다 짐승이 된 것 같은 모멸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이렇게 7일이 지나가니 인간이 아닌 진짜 짐승 같은 폐인이 되고 말았다.
<P>11월 초겨울의 날씨라고는 하지만 북쪽의 추위는 무척 매섭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만신창이 몸에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까지 찾아오니, 젊고 건장했던 내 몸은 말라 비틀어지고 죽기 직전까지 내몰리게 됐다.
<P>도보위부에서 30일간 조사를 마치고 나는 함북 농포집결소에 이송돼 28일간을 구류됐다. 내가 정치범수용소로 가지 않고 단순 경제범으로 취급돼 비교적 가볍다는 농포에 간 것은 예전 남한 비디오를 함께 봤던 친구들이 함남도 안전국장 아들, 도당 행정부장 아들 등 고위층 자녀들로 이들이 함께 연루됐기 때문이었다. 간부들이 자신들의 아들을 살리려고 나의 정치범수용소로 행을 면하게 해준 것이었다.
<P>농포집결소에는 남자 60명, 여자 70명의 탈북자들이 수감돼 강제노동을 하는 곳이었다. 오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강제노동을 해야 했고 먹는 것이라고 콩찌꺼기로 만든 주먹밥이 고작이었다.
<P>보위부 감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왔지만 매일 두세 명의 탈북동포들이 시체가 돼 가마니에 둘둘 말려나가 땅속에 묻혔다. 강제노역장 역시 사람 죽이는 도살장일 뿐이었다.
<P>나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여서 집결소 구석에 앉아 죽을 날만 기다렸다. 오죽했으면 수감돼 있는 사람들조차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은가 혀를 찰 정도였다.
<P>그러던 어느날 집결소 요원들이 사람들을 모두 앞 마당으로 불러세웠다. 나까지 모두 끌고 갈 정도니 무슨 큰일이 난 듯싶었다. 그때가 아마 그해 12월 초순 정도 됐다고 생각된다.
<P>그런데 한 대의 지프차가 오더니 차에서 임신한 5명의 여성들이 내렸다. 내 처지도 짐승처럼 됐지만 임신부라 그랬는지 그들이 더 불쌍해 보였다.
<P>그런데 농포집결소 소장이란 자의 변태적 야만행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해 나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P>그는 여성들에게 『조국을 배반한 것도 모자라 중국 씨종자까지 배왔으니 이런 배은망덕한 행위가 어디있겠는가』라며 어떤 심판을 받는지 똑바로 보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남북한 모두 소꿉 시절 즐겨하던 놀이인 말뚝박기(북한에서는 말 타기라고 함)를 여성들에게 시키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자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임신한 여자들을 허리 굽혀 늘어서게 하고 거기에 남자들이 차례로 올라타 마치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하듯 두 발로 여성의 배를 힘껏 걷어차게 하는 것이었다.
<P>이는 농포집결소 소장의 개인적인 지시인지 아니면 상부의 지시인지는 알수 없지만 이런 일들은 어디가나 비일비재한 것 같았다. 북한 당국도 이런 야만행위를 모르는 척 눈감아주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탈북자는 잡혀오는 순간부터 인간이 아니니까. 남자들의 발길에 배를 차인 여성들은 그 자리에서 하혈하며 쓰러졌고 어떤 여성은 기절한 채로 질질 끌려갔다.
<P>정말 북조선이 갈 데까지 가는구나, 아무리 죽여야 할 적이라도 최소한 지켜야할 인간의 존엄성이 있지 않은가. 김정일정권은 이젠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전히 부패타락했으며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히 말살했기 때문에 이제 종말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P>나는 정말 기적같이 농포집결소에서 풀려났고, 다시 탈북해 지금은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현재 서울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민족사에 이렇게 슬픈 역사가 언제 또 있었던가? 동족에 의해 무참히 유린당하는 또 다른 우리 형제의 참상을 과연 외면해도 괜찮은가? 남북한 간의 평화공존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정신 나간 반인륜적인 독재권력과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P>나는 얼마 전에 어느 정당 관계자들이 탈북 실태조사라는 것을 하고 돌아와 발표한 내용을 보고 정말 격분을 넘어 허탈한 심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탈북자는 경제적 이유든, 정치적 이유든 탈북하는 순간부터 「민족반역자」로 낙인된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내부규정에 의해 처벌의 강도는 달라질 수 있어도 그들이 겪는 야만적인 고문과 학대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반인륜적이다.
<P>일부 학자들과 소위 진보단체에서 떠드는 「경제적 유민」이니 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외국에 이민간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도 모자라 이들을 돕는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들을 조그마한 이익을 좇는 브로커로 매도하는 것은 김정일이 아무리 사람을 죽이고 억압해도 참고 견디라는 말밖에 안된다. 다행히도 남한 형제들이 외면하는 동안 외국의 양심적인 인사들이 탈북자문제에 관심을 가져줘 그나마 위안이 된다.
<P>탈북자들에 대한 외면은 인권에 대한 외면이며, 이 죄악은 고스란히 남한 형제들에 되돌려지게 될 것이다. 역사는 악랄한 독재자를 반드시 정의의 심판대에 세울 것이다.
덧글에 답글 달다가 실수로 날아가서 다시 올림.
<내가 태어난 곳은 함경남도 함흥이다. 거기서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함흥 성천강고등중학교에서 교원 생활을 했다. 부모님이 일본에 사시다가 북한의 허위선전에 속아 입북했으나 다행히 일본 친척들의 도움으로 가정 형편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었다.
<P>이런 평범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난 내가 평소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일 때문이었다.
<P>주변의 친한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다가 남한 방송을 듣게 됐고, 얼마 뒤에는 남한영화를 보고 나중에는 남한의 드라마 테이프까지 돌려보다가 국가안전보위부의 그물망에 걸려든 것이다.
<P>1995년부터 북한에선 대기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1990년대 후반은 기아와 아사가 전국적으로 보편화돼 함흥시 곳곳에서 굶어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눈에 띄었다. 그때부터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북한에 대한 환상을 다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보위부가 나를 잡자고 수사망을 좁혀오니 앉아서 잡혀 죽느니 탈출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P>피눈물을 머금고 1998년 10월 부모ㆍ형제를 뒤로 하고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만 가면 살길이 열리겠지 생각했지만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국경을 넘은지 1주일쯤 지나 좀더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吉林(지린)성 허룽(和龍)의 버스터미널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
<P>중국공안은 나를 허룽시 공안국에 유치시켰다가 다시 북-중 국경지역인 난핑(南平)에 위치한 중국 변방부대로 호송했다가 그 다음날 함북 무산군 칠성세관을 통해 다른 탈북자 15명과 함께 북송시켜 버렸다. 나는 두려움과 공포에 정신이 나간 상태였고, 주변 대부분 탈북자들도 사시나무 떨듯 공포에 질려있었다.
<P>무산군 보위부 유치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에게 「민족반역자 새끼」ㆍ「죽어야할 새끼」로 불려졌고 잠도 안 재우고 각목과 각종 고문기구를 동원한 매질 신문이 시작됐다. 무산군 보위부에서의 조사는 그나마 나은 편이였다. 이틀간의 조사를 마치고 15일 후에 함북 도보위부(청진)에서의 한달은 죽음과 삶의 경계선을 넘나들게 하는 지옥중의 지옥 경험이었다.
<P>여기서 7일간의 조사는 차라리 목숨이 끊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감방 계호원(간수)들이 구둣발과 각목으로 뭇매를 안겼다. 북한 인민군 군화는 워낙 단단하게 만들어져 그것에 차이면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느낀다.
<P>구둣발과 각목으로 얼마나 맞았는지 처음엔 살이 찢겨나가는 듯이 아프다가 나중에는 정신이 몽롱해지더니 각목에 맞는 부위에 퉁퉁 소리만 날뿐 감각조차 없어졌다. 이때 매 앞에선 장사가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온몸이 피멍으로 얼룩졌고 살점이 뜯겨 옷이 피범벅으로 변했다.
<P>초죽음 상태에서 신체검사라는 것을 하는데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길 때마다 좋은 옷을 입었다며 또 매질을 했다. 팬티까지 다 벗긴 후 감옥 구석에 무릎을 꿇려 앉히더니 또 구둣발로 나를 짓이기기 시작했다.
<P>조사관에게 제때에 대답을 못한다고 매질하고, 정신을 잃으면 물통에 머리를 처넣고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하곤 했다. 너무 맞아 온몸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P>이렇게 맞아도 제대로 불지않는다고 그들은 두 팔과 두 다리를 뒤로 비틀어 묶어놓고 조사실 천정에 거꾸로 매단 뒤 또 고문을 하기 시작했다.
<P>피가 머리로 쏠려 괴로워 버둥거리면 묶인 팔다리가 조여와 더 고통스러웠다. 짐승처럼 매달려 있자니 매 맞는 고통보다 짐승이 된 것 같은 모멸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이렇게 7일이 지나가니 인간이 아닌 진짜 짐승 같은 폐인이 되고 말았다.
<P>11월 초겨울의 날씨라고는 하지만 북쪽의 추위는 무척 매섭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만신창이 몸에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까지 찾아오니, 젊고 건장했던 내 몸은 말라 비틀어지고 죽기 직전까지 내몰리게 됐다.
<P>도보위부에서 30일간 조사를 마치고 나는 함북 농포집결소에 이송돼 28일간을 구류됐다. 내가 정치범수용소로 가지 않고 단순 경제범으로 취급돼 비교적 가볍다는 농포에 간 것은 예전 남한 비디오를 함께 봤던 친구들이 함남도 안전국장 아들, 도당 행정부장 아들 등 고위층 자녀들로 이들이 함께 연루됐기 때문이었다. 간부들이 자신들의 아들을 살리려고 나의 정치범수용소로 행을 면하게 해준 것이었다.
<P>농포집결소에는 남자 60명, 여자 70명의 탈북자들이 수감돼 강제노동을 하는 곳이었다. 오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강제노동을 해야 했고 먹는 것이라고 콩찌꺼기로 만든 주먹밥이 고작이었다.
<P>보위부 감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왔지만 매일 두세 명의 탈북동포들이 시체가 돼 가마니에 둘둘 말려나가 땅속에 묻혔다. 강제노역장 역시 사람 죽이는 도살장일 뿐이었다.
<P>나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여서 집결소 구석에 앉아 죽을 날만 기다렸다. 오죽했으면 수감돼 있는 사람들조차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은가 혀를 찰 정도였다.
<P>그러던 어느날 집결소 요원들이 사람들을 모두 앞 마당으로 불러세웠다. 나까지 모두 끌고 갈 정도니 무슨 큰일이 난 듯싶었다. 그때가 아마 그해 12월 초순 정도 됐다고 생각된다.
<P>그런데 한 대의 지프차가 오더니 차에서 임신한 5명의 여성들이 내렸다. 내 처지도 짐승처럼 됐지만 임신부라 그랬는지 그들이 더 불쌍해 보였다.
<P>그런데 농포집결소 소장이란 자의 변태적 야만행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해 나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P>그는 여성들에게 『조국을 배반한 것도 모자라 중국 씨종자까지 배왔으니 이런 배은망덕한 행위가 어디있겠는가』라며 어떤 심판을 받는지 똑바로 보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남북한 모두 소꿉 시절 즐겨하던 놀이인 말뚝박기(북한에서는 말 타기라고 함)를 여성들에게 시키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자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임신한 여자들을 허리 굽혀 늘어서게 하고 거기에 남자들이 차례로 올라타 마치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하듯 두 발로 여성의 배를 힘껏 걷어차게 하는 것이었다.
<P>이는 농포집결소 소장의 개인적인 지시인지 아니면 상부의 지시인지는 알수 없지만 이런 일들은 어디가나 비일비재한 것 같았다. 북한 당국도 이런 야만행위를 모르는 척 눈감아주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탈북자는 잡혀오는 순간부터 인간이 아니니까. 남자들의 발길에 배를 차인 여성들은 그 자리에서 하혈하며 쓰러졌고 어떤 여성은 기절한 채로 질질 끌려갔다.
<P>정말 북조선이 갈 데까지 가는구나, 아무리 죽여야 할 적이라도 최소한 지켜야할 인간의 존엄성이 있지 않은가. 김정일정권은 이젠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완전히 부패타락했으며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히 말살했기 때문에 이제 종말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P>나는 정말 기적같이 농포집결소에서 풀려났고, 다시 탈북해 지금은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현재 서울의 한 교회에서 전도사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민족사에 이렇게 슬픈 역사가 언제 또 있었던가? 동족에 의해 무참히 유린당하는 또 다른 우리 형제의 참상을 과연 외면해도 괜찮은가? 남북한 간의 평화공존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정신 나간 반인륜적인 독재권력과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P>나는 얼마 전에 어느 정당 관계자들이 탈북 실태조사라는 것을 하고 돌아와 발표한 내용을 보고 정말 격분을 넘어 허탈한 심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탈북자는 경제적 이유든, 정치적 이유든 탈북하는 순간부터 「민족반역자」로 낙인된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내부규정에 의해 처벌의 강도는 달라질 수 있어도 그들이 겪는 야만적인 고문과 학대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반인륜적이다.
<P>일부 학자들과 소위 진보단체에서 떠드는 「경제적 유민」이니 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외국에 이민간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도 모자라 이들을 돕는 탈북자 지원단체 관계자들을 조그마한 이익을 좇는 브로커로 매도하는 것은 김정일이 아무리 사람을 죽이고 억압해도 참고 견디라는 말밖에 안된다. 다행히도 남한 형제들이 외면하는 동안 외국의 양심적인 인사들이 탈북자문제에 관심을 가져줘 그나마 위안이 된다.
<P>탈북자들에 대한 외면은 인권에 대한 외면이며, 이 죄악은 고스란히 남한 형제들에 되돌려지게 될 것이다. 역사는 악랄한 독재자를 반드시 정의의 심판대에 세울 것이다.
덧글에 답글 달다가 실수로 날아가서 다시 올림.
2004.11.14 13:25:31 (*.69.185.91)
출처라?? 기사가 아니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탈북자의 수기 같은데요..
이런 종류의 수기는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에서 부정적인 기운이 느껴진다는 의미가 거짓된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동토의 어둠의 현실이 참담하다는 의미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자의 의미로 쓴 말이라면 현실 인식을
잘 못하시는 분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실은 수많은 아사자들의 현실과
정치수용소의 실상들이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보입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서는
그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이나 우리의 대응책을 지혜롭게
계획하고 설계해 나가는데 장애가 될 뿐이지요. 그릇된 대응책이 나올 수도 있고..
저는 북한의 이런 현실이 대북정책의 핵심중 하나로 자리잡아야 된다고 느끼는데,
그 이유는 영성적 관점에서 지구상의 어둠이 거의 완전히 제거되지 못한다면
지구와 인류의 상승이란 헛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행성그룹이 세계의 주도적 위치에 있는 어둠의 정부의 행보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것이 해결되면 모든 일이 종료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지는
몰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북한과 같은 어둠의 영역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빛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면, 그들의 어둠은
누가 어떻게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북한의 현실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느끼는데, 그것이
그들의 어둠의 행위를 견제하고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악행을 견제하는데 외국의 압력과
감시가 여러번 효과를 보았습니다. 심지어 동네 깡패라도 주민들의 시선이
집중되면 악행을 꺼려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 대북정책은
지금 보이는 바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유감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극심한 어둠의 경우 그것을 타파하는 데에는 두가지의 접근법을 생각합니다.
스스로 변형되는 경우와 외부의 힘으로 깨지는 경우...그런데 우주법칙의 자유의지는
스스로 변형되기까지는 갖가지 카르마의 장치 속에서 자각을 얻을 때까지
어둠과 고통속에서 헤메이는 것이 반복되는 일이 흔합니다.
그래서 부처도 어쩔수 없는 중생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요지는, 있는 그대로의 북한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지혜로운 접근법을
고안하는데 반드시 참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수기는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에서 부정적인 기운이 느껴진다는 의미가 거짓된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동토의 어둠의 현실이 참담하다는 의미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자의 의미로 쓴 말이라면 현실 인식을
잘 못하시는 분으로 보입니다. 이런 사실은 수많은 아사자들의 현실과
정치수용소의 실상들이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보입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서는
그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이나 우리의 대응책을 지혜롭게
계획하고 설계해 나가는데 장애가 될 뿐이지요. 그릇된 대응책이 나올 수도 있고..
저는 북한의 이런 현실이 대북정책의 핵심중 하나로 자리잡아야 된다고 느끼는데,
그 이유는 영성적 관점에서 지구상의 어둠이 거의 완전히 제거되지 못한다면
지구와 인류의 상승이란 헛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행성그룹이 세계의 주도적 위치에 있는 어둠의 정부의 행보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것이 해결되면 모든 일이 종료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지는
몰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북한과 같은 어둠의 영역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빛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면, 그들의 어둠은
누가 어떻게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북한의 현실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느끼는데, 그것이
그들의 어둠의 행위를 견제하고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우에도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악행을 견제하는데 외국의 압력과
감시가 여러번 효과를 보았습니다. 심지어 동네 깡패라도 주민들의 시선이
집중되면 악행을 꺼려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 대북정책은
지금 보이는 바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유감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극심한 어둠의 경우 그것을 타파하는 데에는 두가지의 접근법을 생각합니다.
스스로 변형되는 경우와 외부의 힘으로 깨지는 경우...그런데 우주법칙의 자유의지는
스스로 변형되기까지는 갖가지 카르마의 장치 속에서 자각을 얻을 때까지
어둠과 고통속에서 헤메이는 것이 반복되는 일이 흔합니다.
그래서 부처도 어쩔수 없는 중생이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요지는, 있는 그대로의 북한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지혜로운 접근법을
고안하는데 반드시 참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04.11.14 14:49:02 (*.207.93.66)
부정적인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씀드린 점 우선 사과드립니다. 제가 올린 글에 누군가 그렇게 답변을 달았다면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같으면 무척 화가 났을 것 같더군요. 님처럼 이렇게 차분히 대답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실수는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오해의 소지가 충분한 저의 댓글에 대해 해명드리겠습니다. 부정적인 기운이라는 것은 아쉽게도 논리적으로 해명을 못하겠습니다.
그건 북한동포의 어려움에 관한 내용에 관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님께서 퍼온 글이니 님께서 느낀 것도 아니고, 아마 그 기사를 작성한 사람에게서 느껴진 것일 겁니다. 그리고 저의 현실 인식 문제는 정확히 님과 같은 편입니다. 북한 동포의 어려움을 접할 때면, 가슴이 너무나 아프고, 현실세계의 어두움을 우리의 힘으로 우선 치유하려는 노력 없이는, 개인적인 영성의 발전은 허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실세계의 어려움이나, 정치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지만 이 사이트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 것이라 자제하고 있습니다. 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현정권은 과거 독재정권과는 다른 지혜로운 접근법을 선택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님께서 말씀하신 외부의 힘도 끊임없이 쏟아 붓고 있는 겉 같습니다. 바로 햇볕이지요. 비록 무력이나 강압을 띈 것은 아니지만
어떤 힘보다도 강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빨리 북한이 시장경제제도로 흡수되어 저와 님이 바라는 대로 북한동포도 하루 속히 어둠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시다.
화이팅~
그리고, 출처에 대한 요구인데요. 제가 접한 많은 사이트에서, 퍼온 글에 대해서는 엄격히 출처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실례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네티켓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궁금하니 기사의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앞으로는 이런 실수는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오해의 소지가 충분한 저의 댓글에 대해 해명드리겠습니다. 부정적인 기운이라는 것은 아쉽게도 논리적으로 해명을 못하겠습니다.
그건 북한동포의 어려움에 관한 내용에 관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님께서 퍼온 글이니 님께서 느낀 것도 아니고, 아마 그 기사를 작성한 사람에게서 느껴진 것일 겁니다. 그리고 저의 현실 인식 문제는 정확히 님과 같은 편입니다. 북한 동포의 어려움을 접할 때면, 가슴이 너무나 아프고, 현실세계의 어두움을 우리의 힘으로 우선 치유하려는 노력 없이는, 개인적인 영성의 발전은 허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실세계의 어려움이나, 정치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지만 이 사이트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 것이라 자제하고 있습니다. 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현정권은 과거 독재정권과는 다른 지혜로운 접근법을 선택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님께서 말씀하신 외부의 힘도 끊임없이 쏟아 붓고 있는 겉 같습니다. 바로 햇볕이지요. 비록 무력이나 강압을 띈 것은 아니지만
어떤 힘보다도 강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빨리 북한이 시장경제제도로 흡수되어 저와 님이 바라는 대로 북한동포도 하루 속히 어둠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랍시다.
화이팅~
그리고, 출처에 대한 요구인데요. 제가 접한 많은 사이트에서, 퍼온 글에 대해서는 엄격히 출처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실례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네티켓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궁금하니 기사의 출처를 알 수 있을까요?
2004.11.14 15:01:19 (*.69.185.91)
햇볕정책의 허실에 대해서는 님과는 약간 다른 느낌의 일단을 답글에
간접적으로 피력했으니 그만두고, 출처라는 것은 어느 탈북자이겠지요.
그리고 좌파 우파로 서로 공격하며 논쟁하는 여러 사이트 중에서도 우파로
불리는 곳에서 돌아다녔을 것으로 추정이 되고, 윗 글은 제가 가끔 가는
주식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인데, 주식 사이트라는 곳은 벼라별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니,
그곳이 어느 사이트라는 것이냐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간접적으로 피력했으니 그만두고, 출처라는 것은 어느 탈북자이겠지요.
그리고 좌파 우파로 서로 공격하며 논쟁하는 여러 사이트 중에서도 우파로
불리는 곳에서 돌아다녔을 것으로 추정이 되고, 윗 글은 제가 가끔 가는
주식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인데, 주식 사이트라는 곳은 벼라별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니,
그곳이 어느 사이트라는 것이냐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04.11.14 23:09:40 (*.69.185.87)
개인적으로 북한이 바뀌는 시나리오를 가능성 별로 나열하면,
1. 일인/일당 독재정권이 한계에 봉착하면, 가장 먼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과거 남한의 경우와 비슷한 형태로 새로운 군사정권이 들어서서 과도기를 가진다.
2. 김정일이 끝까지 맞장 뜨자고 나올 때, 부시가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북한을 치게 되면, 말릴 수 있는 자가 별로 없다. 이것은 중국과 약간의
교감만 있으면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며, 천상의 처리방식이 될 수도 있다 - 이독제독
3. 김정일이 사고나 질병으로 갑작스럽게 급사하거나 중태에 빠지는 경우도
천상의 집행 방식이 될 수 있다. 시간이 급할 경우에...
4. 마지막으로 북한 내부 권력이 스스로 자유민주적 정권으로 변화하는 것은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체제가 자유민주와는 거리가 18만리나 멀어서...
1. 일인/일당 독재정권이 한계에 봉착하면, 가장 먼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다.
과거 남한의 경우와 비슷한 형태로 새로운 군사정권이 들어서서 과도기를 가진다.
2. 김정일이 끝까지 맞장 뜨자고 나올 때, 부시가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북한을 치게 되면, 말릴 수 있는 자가 별로 없다. 이것은 중국과 약간의
교감만 있으면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며, 천상의 처리방식이 될 수도 있다 - 이독제독
3. 김정일이 사고나 질병으로 갑작스럽게 급사하거나 중태에 빠지는 경우도
천상의 집행 방식이 될 수 있다. 시간이 급할 경우에...
4. 마지막으로 북한 내부 권력이 스스로 자유민주적 정권으로 변화하는 것은
가능성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체제가 자유민주와는 거리가 18만리나 멀어서...
현 정권의 끊임없는 노력이 북한 동포들에게 언젠가는 빛이 되길 기원합시다.
그런데, 퍼온 기사는 출처를 밝혔으면 합니다.
기사에서 부정적인 기운이 느껴져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