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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나는 누구한테 접고들어간다든가 논리가 통하지 않을때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물론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는 부분이 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화를 해보면 상대방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지식수준이 어떤지 대략 짐작이 된다.
하지만 이런 나의 판단은 인성과 상황이라는 변수때문에 결단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
같은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일까?
세상을 사는 지혜라고 사람들이 내뱉는다. 세상에 자기 적을 만들지 말라.
그래. 자기 적이 없다는건 맘 편하고 좋은일이다.
그런데 왜 나에게는 적이 많은걸까?
누구와 싸우고 나면 내내 마음이 편치못하다. 논리적으로 싸우는걸 좋아하지만 그런것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가르쳐주고 싶다. 이런건 이런거라고..
내 주위엔 적이 많지만 동료도 존재한다.
나는 나의 논리가 그래도 상황적으로나마 통하는 그들에게 둘러쌓여 있으니 안심이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어떤 충돌이라든지 그 충돌을 일으킨 당사자들끼리의 대화가 갈등 해결의 핵심이라고 본다.
갈등은 사소한 오해로 발생한다. 그것은 겉잡을수 없이 제삼자에게 퍼져서 다시 당사자에게로 돌고
또다시 삼자에게 퍼진다. 오래 싸우다보면 왜 싸우는지 이유를 모를때도 있다.
나에겐 적이 많다. 그래서 나는 힘들다. 또한 거기에서 나의 가치를 발견한다. 나의 그릇은 어느정도
인가 가늠해본다.
타인과 나의 인간적인 가치는 같다. 하지만 논리의 이해구조는 차이가 난다. 환경적인 차이 유전적인 차이 인류학적인 차이 자연순화적인 차이.
그러한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 그 상황이 닥치면 나는 도저히 벗어날수없다. 화에서
그래서 나에겐 적이 많다.
그런 적들에게서 줄곳 인생의 회의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한가지 바램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잘못된 부분을 타인에게 말하고 논리적인 오류는 고치고 발전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부터가 그러한 갈등을 회피하고 있으니..
적어도 적과 나에대한 고찰정도는 필요하지않을까?
나는 누구한테 접고들어간다든가 논리가 통하지 않을때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물론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는 부분이 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화를 해보면 상대방이 어떤 가치관을 갖고 지식수준이 어떤지 대략 짐작이 된다.
하지만 이런 나의 판단은 인성과 상황이라는 변수때문에 결단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
같은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일까?
세상을 사는 지혜라고 사람들이 내뱉는다. 세상에 자기 적을 만들지 말라.
그래. 자기 적이 없다는건 맘 편하고 좋은일이다.
그런데 왜 나에게는 적이 많은걸까?
누구와 싸우고 나면 내내 마음이 편치못하다. 논리적으로 싸우는걸 좋아하지만 그런것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가르쳐주고 싶다. 이런건 이런거라고..
내 주위엔 적이 많지만 동료도 존재한다.
나는 나의 논리가 그래도 상황적으로나마 통하는 그들에게 둘러쌓여 있으니 안심이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어떤 충돌이라든지 그 충돌을 일으킨 당사자들끼리의 대화가 갈등 해결의 핵심이라고 본다.
갈등은 사소한 오해로 발생한다. 그것은 겉잡을수 없이 제삼자에게 퍼져서 다시 당사자에게로 돌고
또다시 삼자에게 퍼진다. 오래 싸우다보면 왜 싸우는지 이유를 모를때도 있다.
나에겐 적이 많다. 그래서 나는 힘들다. 또한 거기에서 나의 가치를 발견한다. 나의 그릇은 어느정도
인가 가늠해본다.
타인과 나의 인간적인 가치는 같다. 하지만 논리의 이해구조는 차이가 난다. 환경적인 차이 유전적인 차이 인류학적인 차이 자연순화적인 차이.
그러한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 그 상황이 닥치면 나는 도저히 벗어날수없다. 화에서
그래서 나에겐 적이 많다.
그런 적들에게서 줄곳 인생의 회의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한가지 바램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잘못된 부분을 타인에게 말하고 논리적인 오류는 고치고 발전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부터가 그러한 갈등을 회피하고 있으니..
적어도 적과 나에대한 고찰정도는 필요하지않을까?
2004.08.24 10:17:43 (*.144.22.208)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남이 나와 같기를 바람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
다른이의 생각에 회의를느끼고 그오류를 고쳐주어야 한다는
열망!.
그리하여 만드는 불화부동(不和不同) 즉 긴장과 갈등입니다.
사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남을 얇잡아보는 속성이 있습니다.
다수나 대세의 힘이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에 대한 소극적 접근으로
화근을 만들지 않겠다는 발상이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상대의 주장에 옳은면에 편승하고, 오류에 한발작 떼는것 입니다.
상대에 기분에 편승하지만 당신편은 아니라는것 입니다.
그러나 전투적 기질의 존재나 자기존재를 찾는 분들은 이와는 다를 지 모릅니다.
유니크(unique), 다른이가 나와 같아서는 않됩니다.
글자 그대로 자신의 존재감은 독자성과 유일성으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상대들로 부터 고독하길 바라며, 거기서 무었인가를 얻기를 바랍니다.
바로 여기서 이중성을 발견하게 되는것 입니다.
상대가 내생각과 같아야 하면서, 상대는 나와 달라야 한다는 모순 입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모습이 지배자의 모습 아닌가요?
사실 다른이들... 그들의 생각까지도 지배하고 싶은 모습의 괴물이
속 마음안에서 꿈틀대는 것입니다.
아니면 이른바 지적유희....
너희는 그래?. 이런생각이잖아?....
그렇지만 난 안그래.. 이것이 너희의문제야.....
사실 너희가 틀렸잖아...
내가 짜증난건 너희가 이래서 그런거야..
너희가 이렇게 않했으면 나도 저렇게 않했다? 응..
제기랄 글을 쓰고 있다보니
나의 사이코 드라마가 되는 군요... 쩝
남이 나와 같기를 바람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
다른이의 생각에 회의를느끼고 그오류를 고쳐주어야 한다는
열망!.
그리하여 만드는 불화부동(不和不同) 즉 긴장과 갈등입니다.
사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남을 얇잡아보는 속성이 있습니다.
다수나 대세의 힘이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에 대한 소극적 접근으로
화근을 만들지 않겠다는 발상이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상대의 주장에 옳은면에 편승하고, 오류에 한발작 떼는것 입니다.
상대에 기분에 편승하지만 당신편은 아니라는것 입니다.
그러나 전투적 기질의 존재나 자기존재를 찾는 분들은 이와는 다를 지 모릅니다.
유니크(unique), 다른이가 나와 같아서는 않됩니다.
글자 그대로 자신의 존재감은 독자성과 유일성으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상대들로 부터 고독하길 바라며, 거기서 무었인가를 얻기를 바랍니다.
바로 여기서 이중성을 발견하게 되는것 입니다.
상대가 내생각과 같아야 하면서, 상대는 나와 달라야 한다는 모순 입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모습이 지배자의 모습 아닌가요?
사실 다른이들... 그들의 생각까지도 지배하고 싶은 모습의 괴물이
속 마음안에서 꿈틀대는 것입니다.
아니면 이른바 지적유희....
너희는 그래?. 이런생각이잖아?....
그렇지만 난 안그래.. 이것이 너희의문제야.....
사실 너희가 틀렸잖아...
내가 짜증난건 너희가 이래서 그런거야..
너희가 이렇게 않했으면 나도 저렇게 않했다? 응..
제기랄 글을 쓰고 있다보니
나의 사이코 드라마가 되는 군요... 쩝
2004.08.25 00:08:56 (*.124.242.151)
세상에는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있고 개성이 있는 것 같다. 단지 나와 생각을 달리한다고 해서 그것은 악이고 적이라고 단정내릴 수는 없다.
각자는 자신의 특성에 따라 진화를 거듭해 가니까.
그리고 주관적인 관념을 뛰어넘어서 참다운 객관적 판단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물론 아니다. 판단을 내리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주관적인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이니까.
자신이 무조건 옳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뜯어고치려는 사람들.... 그들은 자기오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길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그 모양도 각양각색으로 나 있다. 좁은 길도 있고 넓은 길도 있으며 울퉁불퉁한 길도 있으며 평평한 길도 있다.
그러나 길은 모두 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우리의 인생을 길에다 비유한다면
우리는 각자 자신만이 걸어가야만 하는 길을 걷고 있다. 그 길이 어떤 길이든 말이다.
어떤 이는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좁고 돌아가야 하는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 좁은 길을 걷는다고 해서 결코 잘못된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반드시 거치고 겪어야만 하는 길을 착실히 걷고 있는 경우도 많으니까.
이 때문에 우리는 어떤 길이 좋다고 판단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남의 잘못만 꼬집어서 충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대다수는 자신의 판단이 옳아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지배욕구와 인정받고 싶어하는 자기자신의 에고를 은밀히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옳다고 말하는 판단들은 과거에 비추어볼 때 시간에 따라 변해왔고 앞으로 변할 것이다.
굳이 타인에게 충고를 하고 싶거든 먼저 침묵하고 한숨을 돌린다음 그 상대방에게 잔잔한 미소를 보내는 것이 훨씬 값진 것이 아닐까.
각자는 자신의 특성에 따라 진화를 거듭해 가니까.
그리고 주관적인 관념을 뛰어넘어서 참다운 객관적 판단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물론 아니다. 판단을 내리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주관적인 사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이니까.
자신이 무조건 옳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뜯어고치려는 사람들.... 그들은 자기오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길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그 모양도 각양각색으로 나 있다. 좁은 길도 있고 넓은 길도 있으며 울퉁불퉁한 길도 있으며 평평한 길도 있다.
그러나 길은 모두 다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우리의 인생을 길에다 비유한다면
우리는 각자 자신만이 걸어가야만 하는 길을 걷고 있다. 그 길이 어떤 길이든 말이다.
어떤 이는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좁고 돌아가야 하는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 좁은 길을 걷는다고 해서 결코 잘못된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반드시 거치고 겪어야만 하는 길을 착실히 걷고 있는 경우도 많으니까.
이 때문에 우리는 어떤 길이 좋다고 판단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남의 잘못만 꼬집어서 충고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대다수는 자신의 판단이 옳아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지배욕구와 인정받고 싶어하는 자기자신의 에고를 은밀히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옳다고 말하는 판단들은 과거에 비추어볼 때 시간에 따라 변해왔고 앞으로 변할 것이다.
굳이 타인에게 충고를 하고 싶거든 먼저 침묵하고 한숨을 돌린다음 그 상대방에게 잔잔한 미소를 보내는 것이 훨씬 값진 것이 아닐까.
- 소리 고래고래 지르는 사람 --- 스트레스가 자동 상승
- 교활한 사람 --- 알 것 다 알면서 자신의 에고나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타인에게 해를 주기에
- 비열한 사람 --- 약자에는 강하고 강자에는 약한
- 무식하면서 억지 부리는 사람 --- 내용도 모르면서 자기 머리만의 얼토당토한 논리로 억지를 부리며 똥고집을 부리기에 너무 답답.
그러나 적은 아닙니다. 그저 싫을 뿐인데 그려려니 하지요. 인간 군상들은 매우 다양하니까요. 그네들을 사랑하라는 것은 현재로선 역부족이나 언젠가는 달성해야 할 고지라는 것을 아는 정도입니다.